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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진도초등학교 총동문회 원문보기 글쓴이: 56이세진
1. 송라산 헬기장에서 바라본 천마산, 맨 왼쪽은 된봉, 그 오른쪽은 관음봉
정상에서는 바위 위에 걸터앉아 한잔 술도 달다. 그러나 하산 길은 뜻밖에 애가 쓰인다. 마석으로 내려서는 직
골 쪽 능선길보다 호평리 쪽 내리막길이 사뭇 깎아질렀다. 나무뿌리를 잡고 바위 틈서리에 엉겨 붙고 하면서
굴러 내리다시피 편편한 등성이로 내려서면, 오뉴월에는 거기서 더덕냄새가 코를 찔렀다. 보송보송 파랗게 잎
이 돋아나는 낙엽송지대로 들어서기 전 하늘아래 첫물이라 이름한 골짜기 안에서 여름날에는 벗고 땀도 닦았
다.
―― 김장호(金長好, 1929~1999), 『韓國名山記』의 ‘천마산’에서
주) 김장호는 1960년대 초반에 천마산을 오르고 이글을 썼다고 한다.
▶ 산행일시 : 2021년 3월 13일(토), 흐림, 미세먼지 아주 나쁨
▶ 산행인원 : 4명
▶ 산행시간 : 9시간 8분
▶ 산행거리 : 오룩스 맵 도상 16.6km
▶ 갈 때 : 상봉역에서 전철 타고 평내호평역으로 감
▶ 올 때 : 마석역에서 전철 타고 상봉역으로 옴
▶ 구간별 시간
06 : 53 - 상봉역 출발
07 : 17 - 평내호평역, 산행시작
08 : 07 - 360.7m봉
08 : 23 - 된봉(△430.5m)
09 : 18 - 관음봉(△556.9m)
10 : 14 - 477.4m봉
10 : 33 - ┣자 갈림길 안부
11 : 45 - 천마산(天摩山, △810.3m)
12 : 02 ~ 12 : 55 - 689.0m봉, 점심
13 : 21 - ┣자 갈림길 안부, 오른쪽은 관리사무소 가는 길
13 : 45 - 암릉 암봉, 502.8m봉
14 : 25 - 묵현리, 삼거리
15 : 13 - 주릉 안부, 왼쪽은 무선중계소, 오른쪽은 정상 0.22km
15 : 22 - 송라산(松羅山, 497.7m)
16 : 16 - 심석초등학교
16 : 42 - 마석역, 산행종료
17 : 28 - 상봉역
2-1. 산행지도(된봉, 관음봉,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성동 1/25,000)
2-2. 산행지도(천마산,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양수 1/25,000)
2-3. 산행지도(송라산,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양수 1/25,000)
▶ 된봉(△430.5m), 관음봉(△556.9m)
지도를 읽어 된봉 오르는 길을 예단했다. 평내호평역에 내려 역사를 나오자마자 왼쪽 대로를 가다가 사릉천(思
陵川)을 궁평교에 이어 호만6교로 건너고 주평강교회 근처에서 대로를 건너서 산자락에 붙으면 호평터널 위의
산릉을 오르게 되리라. 딱 들어맞았다. 주평강교회 앞에서 왼쪽 대로를 건너고 허름한 계단 오르자 조용한 산길
이 이어진다. 남들 눈도 나와 같았다.
그러나 내 시야가 좁았다. 지도를 조금만 더 아래쪽으로 이동하여 살피면 ‘바로건너산(258.2m)’이 있다. 까맣게
몰랐다. 바로건너산부터 산행을 시작하려면 금곡역에 내렸어야 했다. 그래서 사릉1교를 바로 건너 산인데 퍽
아쉽다. 된봉이나 관음봉은 국토지리정보원의 지형도에 명기되지 않은 지자체에서 정한 산 이름이지만, 바로건
너산은 비록 표고가 낮지만 국토지리정보원의 지형도에 명기된 산이다. 즉 ‘브랜드가 있는 산’(제임스 님 버전
이다)이다.
이른 아침 호젓한 산책길이다. 대기가 제법 쌀쌀하여 움츠리고 종종걸음 한다. 나지막하지만 봉봉마다 쉼터로
장의자를 놓았다. 무덤가 진달래는 무리지어 새 세상을 열고 있는 중이다. 등로는 사방에서 모여들었다가 흩어
지곤 한다. 우리는 더 높은 곳을 향하여 일로직등 한다. 여태 느슨하다 큰 바위 옆 사면을 한 피치 바짝 오르면
360.7m봉이다. 바로건너산 쪽으로도 등로가 잘 났다.
미세먼지가 아주 나쁨이다. 나무 숲속 길이라 조망이 수렴에 가렸지만 경점일 바위를 등로 벗어나 올라보지만
지척도 흐릿하다. 펑퍼짐한 안부 지나고 고도 100m를 높이는 가파른 오르막을 되게 오르면 그에 이름 붙은 된
봉이다. ╋자 방위표시만 알아볼 수 있는 삼각점은 안내판에 ‘성동 307’이다. 메여사 님과 함께 오는 메아리 님
은 사릉 자택에서 곧장 된봉 서릉을 올랐다. 그들 역시 되게 올랐다.
된봉 한쪽 안내판에 오토바이와 자전거를 다니지 못하도록 등로 한복판에 일부러 통나무를 놓아두었으니 양해
해달라고 한다. 나는 물길인 줄로만 알았다. 오토바이가 다녀 등로 오르내리막이 깊게 파였다. 관음봉 가는 길
도 숲속 길이다. 한 차례 뚝 떨어졌다가 길게 오른다. 예전에 영희언니가 관음봉에서 덕순이를 보았다고 하기에
주변의 풀숲 사면을 예의 살피며 간다. 웬걸, 생강나무 꽃향기가 코를 찌른다.
관음봉 오르기가 된봉보다 더 되다. 관음봉 정상에는 전에 못 보던 데크전망대를 설치했다. 하지만 오늘은 무망
이다. 삼각점은 ‘성동 426, 1994 재설’이다. 나는 독도(讀圖)도 그렇고 관음(觀音)이란 말도 좋아한다. 어의로는
‘소리를 본다’는 말이다. 관음은 관세음보살의 준말로 세상의 소리를 들어 알 수 있는 보살이므로 중생이 고통
가운데 열심히 이 이름을 외면 도움을 받게 된다고 한다.
한편, 관세음보살은 아미타불의 왼편에서 교화를 돕는 보살이라고 하니, 이 산의 앉음새가 그와 같아서 관음봉
이라 이름 하지 않았을까 한다. 물론 아미타불 격은 천마산이다. 관음봉을 넘으면 봉봉 오르고 내리고가 잠시
소강상태다. 이따금 나뭇가지 사이로 천마산이 희끄무레한 장벽으로 보인다. 아직 풀꽃은 피지 않았다. 그래도
자연공부하면서 간다. 근육질 서어나무, 부스럼딱지 물박달나무, 층층 가지 뻗은 층층나무, 얼룩이 물푸레나무,
괴불 주렁주렁 달린 올괴불나무, 늘씬 매끈한 쪽동백나무 …….
3. 올괴불나무(Lonicera praeflorens Batalin)
4. 왼쪽 멀리는 철마산과 내마산(오른쪽)
5. 가운데는 관음봉, 그 왼쪽은 된봉
6. 멀리 가운데는 백봉
7. 송라산, 앞은 502.8m봉
8. 예전에 주금산에서 바라본 천마산과 송라산(왼쪽 중간쯤에 뾰족하니 솟았다)
▶ 천마산(天摩山, △810.3m)
477.4m봉을 내리면 임도 종점인 안부다. 거기는 오가는 등산객이 많을 것이라 탁주 마시기에 껄끄럽다. 안부로
내리기 전에 휴식한다. 우리 일행 중 컨디션이 좋은 사람은 메아리 님 뿐이다. 나는 전에 없이 속이 더부룩하고
매스껍고 입맛이 없고 땀은 찔찔 흘리고, 메여사 님은 등산화 볼이 좁은지 발이 아프고, 제임스 님은 등산화 밑
창이 너덜너덜하여 걷기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제임스 님은 그도 그럴 것이 4년 동안인가 5년 동안인가 신지
않고 가만 둔 등산화를 꺼냈는데 겉은 멀쩡하기에 신고 나왔더란다.
평내호평역에 내리자 등산화의 삭은 밑창 고무가 부스러져 걸을 때마다 그 조각이 우수수 쏟아지고 덜렁거리
기 시작했다. 이에 임시방편은 훌륭했다. 아직 배낭 속에 넣어 둔 아이젠은 치우지 않았다. 아이젠을 매서 밑창
을 붙잡을 수밖에 없다. 산행 중에 등산화 밑창이 나간 예는 여럿 있으니 그리 분해 할 것 없다고 다독거려 준
다. 나는 예미산을 가다가 그랬고, 신가이버 님은 방태산을 가다가 그랬다. 물론 많은 등산객들이 오르내리는
천마산을 철 지난 아이젠을 매고 가다 보면 영문 모르는 그들의 수군거림은 감내해야 할 것이다.
임도 종점인 안부를 지나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진다. 고도 400m 남짓을 올라야 한다. 천마산은 이른 봄에 야생
화를 찍으려고 경향각지에서 사진가들이 몰려드는 곳이다. 나도 풀꽃을 볼 수 있을까 하고 사면 깊숙이 눈을
던져보지만 삭막하다. 야생화가 핀다는 그곳은 훨씬 아래 산골짝이라고 한다. 데크계단 오른다. 오가는 등산객
들이 많다. 대부분 마스크를 썼다. 수인사 삼가고 마주칠 때는 얼굴 돌린다.
임꺽정굴 오른쪽의 길고 가파른 데크계단 오르면 전망대다. 날이 좋으면 도봉산과 북한산 연봉이 그림처럼 보
이는데 오늘은 아무리 눈을 부릅떠도 건너편 백봉과 발아래 관음봉조차 흐릿하다. 전망대 나와 805m봉을 왼쪽
산허리로 돌아 넘고 바윗길을 잠깐 지나면 천마산 정상이다. 사방 조망은 가렸고 몰려든 많은 젊은 등산객들이
볼거리다. 정상 표지석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등산객들이 길게 줄 섰다.
천마산을 내리는 데도 길게 줄 선다. 데크계단에 이어 돌길 내리고 가파름이 잠깐 멈칫한 689.0m봉을 등로 따
라 사면 돌아 내렸다가 거슬러 올라 외진 공터에서 점심자리 편다. 오늘 메뉴는 맵지 않은 주꾸미 매운탕이고
그 국물에 라면 끓인다. 나는 여전히 속이 거북하여 도시락도 주꾸미도 라면도 미적거리다 만다. 내내 아깝다.
신작로 같은 등로와 줄 이은 등산객은 천마산역 갈림길을 지나 바닥 친 안부인 관리사무소 갈림길까지 계속된다.
한적한 산길이다. 502.8m봉이 다가갈수록 첨봉이다. 암릉과 맞닥뜨린다. 한 피치 손맛을 보고나서 오른쪽 암벽
밑 테라스로 길게 돌아간다. 암봉은 들른다. 일대경점이다. 천마산이 의외로 넓고 푸짐한 품을 가졌다. 502.8m
봉 정상도 경점이다. 절벽 위에 다가가서면 문암산 고래산 쪽으로 조망이 트인다. 502.8m봉 정상에는 잔돌로
쌓은 돌탑 5기가 있다. 하루아침에 쌓은 돌탑이 아니다. 대단한 정성이다.
암릉은 계속 이어진다. 양쪽 사면은 깎아지른 듯 가파르다. 고만고만한 높이의 암봉을 3개를 넘는다. 그 마지막
암봉은 우회하여 내리다 절벽과 만난다. 외길이다. 줄이 달려 있지만 조심스럽다. 그리고 낙엽 깔린 숲속 길이
다. 쭉쭉 내린다. 산자락에 다다라서는 잘 다듬은 성묫길 따라 내린다. 묵현리 대로와 만나고 삼거리에서 대로
건너면 공설공동묘지 입구에 커다란 송라산 등산안내도가 있다. 사실 송라산 정상에는 멀리서 바라볼 때 군부
대 시설이 보여 순탄하게 오를 수 있을지 은근히 걱정했다.
9. 천마산 북릉 멸도봉
10. 어느 해 봄날의 멸도봉
11. 멀리 가운데는 철마산과 내마산
12. 송라산, 앞은 502.8m봉
13. 천마산
14. 502.8m봉에서 메아리 님
15. 502.8m봉 암벽을 내리는 중, 메여사님과 메아리 님
▶ 송라산(松羅山, 497.7m)
그런데 비록 색이 벗겨지고 바라기는 했지만 등산로 안내도가 있다니 할 말이 생겼다. 그리고 군부대로 알았던
시설은 무선중계소다. 송라산 정상 1.24km. 그 절반은 임도를 오른다. 이때는 따분한 산행이다. 임도가 왼쪽으
로 방향 틀어 돌아가고 송라산 가는 길은 옹벽 계단 오르고 사면 살짝 돌아 엷은 능선으로 간다. 무선중계소 가
는 임도는 철조망 문을 굳게 닫아걸었다.
가파른 데는 굵은 밧줄의 핸드레일을 놓았다. 그 버팀목 밑둥이 더러 썩었고 넘어진 걸 보니 꽤 오래된 등산로
다. 잡석 깔린 곧추 선 오르막이다. 땀난다. 숫제 기어서 안부에 오른다. 왼쪽 444.1m봉은 철조망 둘러 출입을
막은 무선중계소다. 송라산 정상은 오른쪽 0.22km다. 내쳐 간다. 내 깐에는 막판 스퍼트 낸다. ┣자 갈림길 오른
쪽은 심석초 1.8km라는 이정표 지나고 곧 송라산 정상이다.
송라산 정상. 너른 암반에 태극기를 꽂아놓았다. 사방에 키 큰 나무숲 둘러 아무 조망이 없다. 몇 해를 두고 오
르기를 벼른 송라산이다. 주금산이나 축령산에서 바라볼 때 올망졸망 산 중 특히 도드라진 송라산이었다. 오늘
산행의 된봉은 송라산의 들머리였다. 송라산이란 작명을 생각해 보면 소나무가 볼만해서가 아닐까? 바위 섞인
등로에 노송이 약간 늘어서긴 했다. 바위에 걸터앉아 배낭 털어 먹고 마신다.
이정표의 심석초 가는 길로 간다. 바위 돌아내리고 남진한다. 헬기장이 경점이다. 천마산을 중심하여 왼쪽으로
관음봉과 된봉이, 오른쪽은 철마산과 내마산이 하늘금이다. 뒤로 돌면 수암광업 채석장 위로 두리봉 연릉이 이
어지고 그 너머로 화야산과 뾰루봉이 환영인 듯 흐릿하다. 잘난 등로 따라 내린다. 갈림길이 나오면 더 긴 등로
를 골라 내린다. 산양삼과 산더덕 등 산약초 재배한다고 철조망과 그물 둘러친 능선 오른쪽을 간다.
그 골짝이 아래 파이프 타고 졸졸 흐르는 약수로 목 축이고 낙엽송 숲 돌아내리면 동네고 심석초 앞이다. 마석
역으로 간다. 산행 뒤풀이 할 마땅한 음식점을 찾지 못했다. 아니 아무 것도 먹지 못할 나 때문에 시간이 이르다
는 핑계를 더하여 각자 집으로 가기로 한다. 미안하다. 이튿날 산행기를 정리하던 중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송라산을 찾아보았다. 언뜻 보기에 뜬금없이 ‘抒情으로 되새기는 조지훈(趙芝薰)’이라는 제하의 기사가 나왔다
(1998년 4월 30일, 조선일보).
조지훈의 묘소가 송라산 기슭에 있었다.
“「우리 언어가 갖고 있는 본질적인 서정성을 살려 광복 후 한국시의 주류를 이끈 서정시인」으로 다시 보려는
것이다. 그간 민족 전통이나 불교적 선미(禪味), 뒤틀린 현실에 대한 지사적(志士的) 발언을 담아낸 민족시인이
란 관점에 쏠려 기존평가가 소홀히 했던 시미학적 관점의 조명”이라며, 한편 조지훈(1920~1968) 시인의 30주
기 추모행사가 마석 송라산 기슭의 묘소에서 열린다고 한다.
조지훈의 묘소는 마석역 위쪽으로 640m 떨어진 산자락에 있다. 이래저래 오늘 산행은 부실했다. 바로건너산을
알아보지 못했고 가까운 조지훈의 묘소도 알아보지 못했다. 술 한 잔 올릴 것을 후회막급이다. 그의 시 「낙화
(落花)」를 읊어 조상한다.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어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16. 앞은 502.8m봉, 뒤가 천마산
17. 천마산, 오른쪽 뒤는 철마산
18. 오른쪽 뒤 흐릿한 산은 화야산, 중간은 두리봉
19. 생강나무(Lindera obtusiloba Blume)
20. 매화(Prunus mume (Siebold) Siebold & Zucc.)
21. 매화(Prunus mume (Siebold) Siebold & Zuc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