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을 어떻게 꽃피울 것인가
아득한 지구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인간은 한 포기 갈대나 한 방울의 이슬과도 같은 하찮은 존재이다. 온 천지가 얼음으로 얼어붙은 빙하기와 빙하기 사이의 몹시 짧은 따
뜻한 시기에 우연히 발생하여 오늘날 생물 중 가장 큰 힘을 과시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인간이다.
눈을 들어서 우주를 바라보고 다시 인간을 바라보자. 태양계와 태양계가 모여 우주를 이루고 우주들이 모여 다시 대우주를 이룬다. 우주에 비하여 지구라는 땅덩어리는 조그만 먼지도 안될 터인데 하물며 인간은 어떻겠는가?
기나긴 역사를 알고 또 넓디넓은 우주를 쳐다본다면 인간은 자신을 옳게 바라보고 성실한 삶을 색칠할 수 있을 것이다. ㄱ러나 대체로 인간은 '우물 안의 개구리'로 지내다가 죽음이 다가올 순간에야 비로소 자기가 얼마나 무가치하고 무의미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된다.
특히 물질만능의 풍조는 인간을,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창 나이의 청소년을 혼란에 빠뜨린다. 청소년 시절에 자연과 역사와 우주를 볼 줄 모르고 돈과 권력의 우물에 갇혀버리게 되면, 그러한 젊은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사람됨을 제대로 갖출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어른들이 모인 사회는 숨막히는 닫힌 사회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들은 참으로 슬프게 하는 것은 어른의 얼굴과 눈빛을 가진 청소년이다. 많은 수의 청소년들이 황금만능주의의 야릇한 색깔과 향기에 도취되어 주름진 얼굴에 희미한 눈빛을 하고 있다. 학교 주변에서 학생들의 좋은 옷이나 신발 그리고 금전까지 협박과 공갈로 탈취해가는 청소년들을 보면 세상이 온통 깜깜해지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황금만능주의의 우물 안에 갇힌 청소년들은 그 안에서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행동하는가? 그들의 미래는 어떤 흉칙한 모습이 입을 커다랗게 딱 벌리고 그들을 삼켜버리려고 하고 있을까?
돈과 함께 오늘날 우리들 인간을 위협하는 또 하나의 두려운 것은 기계문명이다. 황금만능주의와 함께 기계만늠주의가 인간의 삶을 질식할 정도로 억누르고 있으며 그 두 가지는 제멋대로 인간을 허수아비와도 같이 이리저리 끌고 다닌다. 기계만능주의는 우리들이 인생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는 것을 무가치하게 만든다.
컴퓨터를 모르면 바보라는 말이 머지않아 등장할 것 같다. 길거리의 늘비한 자동차는 쉽사리 우리를 목적지까지 실어다준다. 세탁기가 빨래를 해주고 진공청소기는 쓰레질을 해준다. 머리 아프게 계산하는 대신 계산기가 척척 계산해준다.
돈과 기계만 있으면 안되는 것이 없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일까?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며 존경하고 용서해주는 인간의 따뜻한 사람됨은 이젠 이 세상에 더이상 없는 것일까?
'우물 안의 개구리'가 우물을 뛰쳐나와 신선한 샘과 넓은 들을 마음껏 돌아다닐 때 기분은 어떤 것일까?
청소년은 젊음의 힘이 지나치게 강하기 때문에 자칫하면 극단적인 이기주의자가 되기 쉽다. 청소년의 비뚤어진 행동은 우선은 돈과 권력과 기계를 으뜸으로 여기는 사회풍조에 원인이 있고, 다음으로는 넓게 보지 못하고 방향감각을 상실한 젊음의 힘에도 원인이 있다.
만일 청소년들이 자기들이 지닌 무궁무진한 젊음의 힘을 옳게 사용할 줄 안다면, 그들은 축복받은 열린 삶을 이끌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청소년들은 어떻게 그들의 힘을 옳게 사용할 수 있을까?
청소년들은 아직 성장과정에 있기 때문에 넓게 밖을 내다볼 줄 모르고 자기라는 우물 안에 갇혀 있다. 따라서 그들은 독단적이며 이기적인 경향을 띠고 그들의 생각과 다른 것은 모두 부정하고자 한다.
중.고등학생의 연령층에 있는 청소년들은 우선 간섭이 싫다. 그러면서도 자기들이 멋대로 행동해서 좋지 않은 결과가 생기면 그 책임은 어른이나 사회 또는 부모에게 돌린다. 청소년을 가리켜소 고삐 풀린 망아지라고 하는 것도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청소년들은 부모가 관심을 가져주지 않으면 무관심한 부모를 원망한다. 공부해라, 방 청소해라, 늦게 귀가하지 말아라, 연애는 스무 살이 넘으면 해라..등등 부모의 말이 청소년들에게는 모두 쓸모없는 귀찮은 간섭으로 생각된다.
"얘, 공부좀 해라, 배워야 남보다 낫게 살고 버젓한 직장도 가질 수 있지 않니?"
"왜 공부, 공부 머리 아프게 말씀하게요? 공부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훌륭하게 된 사람들도 있어요. 엄마 아빠는 공부를 잘했나요?"
젊음의 힘은 참을 줄 모르고 아무 것에나 반항하기 마련이다.
"그래? 그렇다면 매일 놀아라. 아예 책은 집어치우고 잠도 자지 말고 놀아라. 아니, 에라 모르겠다. 네 마음대로 하려무나."
"엄마는 매사가 저렇다니까. 제가 아무렇게나 되어도 좋단말이군요. 엄마는 자식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을 벌써 다 알고 있어요."
어쩌자는 말인가? 젊음은 멋대로 부는 바람과도 같으며 끝없이 타오르는 화산과도 같다. 그러나 청소년도 역시 인간이다. 냉정하게 자기 자신을 바라볼 수 있을 때, 그 젊은이는 비로소 성숙한 청소년이 될 것이다.
한 술 밥에 배 부를 수 없다. 이글이글 타오르던 불꽃이 저절로 순식간에 사그러질 수 없다. 세차게 불던 바람도 눈 깜짝할 순간에 잠잠해질 수 없다.
청소년들은 남과 사회와 세계에 대하여 불평과 불만을 터뜨리면서 동시에 자기자신에 대해서도 울분을 토하지 않을수 없는데, 이렇게 청소년들은 성장의 고통을 체험하면서 한인간으로 성숙하게 된다. 그러면서 청소년들이 삶의 조화롭고 아름다운 면을 볼 줄 알게 될 때, 그들은 열린 사회를 구성하는 참여자가 될 수 있다.
요사이 신문이나 텔레비전에 청소년들의 끔찍한 행동이 부쩍 많이 보도되어 가슴을 섬뜩하게 한다.
황금만능주의와 기계중심의 산업사회가 한편으로는 삶을 풍요롭게 해주지만, 또 한편으로는 가치관을 1차원적으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에 가치관의 혼란이 사회를 지배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이 극단으로 치달리면 단지 개인의 욕망만을 채우려는 이기주의가 널리 퍼진다. 그 결과는 어떤 것일까? 개인끼리의 갈등, 미래가 보이지 않는 어두운 사회 그리고 인간 스스로가 가져오게 될 인류의 멸망. 이런 것들을 상상하기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들 인간은 한번 살지 두 번, 세 번 또는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인간이라는 존재는 우주의 역사에서 지극히 짧은 순간 자신의 삶을
장식하다가 자연적으로 소멸할 존재라는 것도 분명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우리가 해야만 할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들에게 주어진 삶을 최대한으로 노력하여 보람차게 만드는 일이다. 개인은 사람됨을 찾고 사회는 개방되게하고 나라와 나라가 우호관계를 가지게 하는 것이 바로 우리들의 진정한 의무이다.
젊음의 힘을 밖으로 뻗으면서 문학과 예술과 종교를 직접접하고 남과 가능한 한 많은 대화를 함으로써 청소년들은 자기들만의 좁은 우물에서 뛰쳐나올 수 있을 것이다.
남과 대화하고, 나아가서 자연과 예술, 종교와 대화하기를 거부하는 젊은이가 있다면 그러한 젊은이는 삶을 마구 살아갈 뿐이다. 대화 속에서 우리들은 믿음의 관계를 익혀갈 수 있다. 나만 믿는 것이 아니라 남과 자연과 예술 그리고 종교를 믿을 때 비로소 내 안에서 사랑의 감정이 싹트기 시작한다.
방황하는 청소년들은 아직 믿음의 사랑을 모르는 젊은이들이다. 참고 기다리며 믿을 줄 아는 청소년들과 그렇지 못한 청소년들을 비교해 보자.
빈 그릇만이 물을 가득 채울 수 있다. 이기심으로 가득 찬 마음을 비울 줄 아는 젊은이만이 미래의 꿈과 챠망을, 그리고 아름답고 찬란한 사랑의 샘물을 가득 채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