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신불(三身佛)을 보는 시각
부처님을 법신(法身) 보신(報身) 응신(應身, 化身)인 삼신(三身)으로 구분하는데, 이것을 삼신불(三身佛)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삼신불(三身佛)로 설명하는 것은 표현 상의 차이일 뿐, 불타(佛陀)의 몸이 세 가지가 있는 것이 아니다.
불교(佛敎)에서 삼신(三神)은 부처님에 대한 사상(思想)으로서, 대승(大乘) 불교시대(佛敎時代)로 접어들면서, 삼신설(三身說)이 우리나라 불교(佛敎) 교학사상(敎學史上)에서 중요(重要)한 위치(位置)를 차지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주요 사찰에서는 청정법신(淸淨法身)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원만보신(圓滿報身) 노사나불(盧舍那佛), 천백억화신(千百億化身)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의 삼신불(三身佛)을 봉안(奉安)하여 숭앙(崇仰)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삼신설(三身說)은 천태종(天台宗)의 설(設)을 선종(禪宗)에서 채택(採擇)하여 고려(高麗) 중기(中期) 이후(以後)부터, 조선시대(朝鮮時代)를 거쳐 오면서 보편화(普遍化)하게 되었다.
① 법신(法身) - 청정법신(淸淨法身)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법신(法身)은 우주만법(宇宙萬法)의 현상으로 볼 때, 만법(萬法)이 곧 나(我)요, 내가 곧 만법(萬法)이니, 우주만법(宇宙萬法)의 당체(當體)에 부합하는 진리(眞理) 자체(自體)를 인격적으로 표현(表現)한 것이다.
법신(法身)은 사람 마음의 본체(本體)를 지적(指摘)한 것이다. 부처님(釋迦, 佛陀)의 본신(本身)을 나타낸 것이다. 즉 법신(法身)은 시간(時間)과 공간(空間)이 끊어지고 말 길이 끊어진, 즉 우주(宇宙)가 생기기 전(前)의 본래(本來) 면목(面目)이요, 우주(宇宙)의 핵심체(核心體)를 말한 것이다.
진리(眞理)를 인격화(人格化)한 진리불(眞理佛)로서 마음의 본체(本體)인 진여실상(眞如實相)을 의미(意味)한 것이다. 청정법신(淸淨法身)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이나 대일여래(大日如來)가 이에 해당(該當)한다.
② 보신(報身) - 원만보신(圓滿報身) 노사나불(盧舍那佛)
보신(報身)은 개개인(個個人)의 뚜렷한 부처님의 마음 광명(光明)이 나타난 것이다. 다시 말하면, 태양 광명(光明)보다 더 밝은 마음 광명이 나타난 것을 보신(報身)이라고 한다. 보신(報身)이란 법신(法身)의 영원성(永遠性)과 화신(化身)의 유한성(有限性)을 매개(媒介)하는 불신(佛身)이라고 말할 수 있다.
보신(報身)은 시방삼세(十方三世)에 걸쳐 보편적(普遍的)으로 존재(存在)하는 완전(完全)하고 원만(圓滿)한 이상적(理想的)인 불신(佛身)을 나타낸 것으로서 수행(修行) 공덕(功德)의 과보(果報)로 얻어진 이상적(理想的)인 부처님이다.
원만(圓滿) 무궁(無窮)한 부처님의 무량공덕(無量功德)을 상징(象徵)하기 때문에 원만보신(圓滿報身) 노사나불(盧舍那佛)이라고 한다. 대표적(代表的)인 보신불(報身佛)에는 아미타불(阿彌陀佛)과 약사여래(藥師如來) 등이 있다.
③ 화신(化身) - 천백억화신(千百億化身)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화신(化身)은 마음의 그림자에 비유할 수 있다. 법신(法身)이 석가(釋迦)의 본체(本體)라고 하면 석가(釋迦)는 법신(法身)의 영상(影像)인 것이다. 화신은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과 같이 특정(特定)한 시대(時代)에 따라 출현(出現)하기도 하며, 일체존재(一切存在)가 모두 다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이라 하여, 천백억화신(千百億化身)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이라고도 표현한다.
화신(化身)은 응신(應身) 또는 응화신(應化身)이라고도 한다. 교화(敎化)의 대상(對象)에 따라 일시적(一時的)으로 적절(適切)한 모습으로 변화(變化)하여 세간에 출현하는 불신(佛身)이라는 뜻이다. 특정(特定)한 시대(時代)와 지역(地域)에 따라 특정(特定)한 중생(衆生)들을 구제(救濟)하기 위하여 출현(出現)하시는 부처님이다.
불경(佛經)의 내용상에서 보면,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전체가 화신(化身)의 소설(所說)이고, 범망경(梵網經)이 법신(法身)의 소설(所說)이다.
삼신불(三身佛)을 달에 비유한다면, 하늘에 떠있는 본래(本來)의 달은 법신(法身)이요, 우주(宇宙)에 가득한 달의 광명(光明)은 보신(報身)이요, 강물에 무수하게 떠 있는 달은 화신(化身)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석가모니 부처님께 세상에 출현하셨다고 하거나, 열반하셨다고 한다면 물 그릇에 비친 달을 보고 진실한 달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물 그릇에 비친 달을 본래의 달이라고 여긴다면, 온 곳이 있으니, 가는 곳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법신(法身)인 본래의 달은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다. 가고 오는 것이 없는 까닭으로 고금(古今)이 없고, 피아(彼我)가 없고, 생사(生死)가 없는 것이다. 그러한 까닭으로 실상(實相) 면에서 볼 때, 부처님이 이 세상에 왔다고 보는 것은 물 그릇에 비친 달을 본래 하늘에 떠 있는 달로 잘못 알고 있는 어리석은 중생이 되는 것이다.
부처님의 무량공덕(無量功德)이 산(山)에 있으면 산신(山神)이고, 물에 있으면 용왕(龍王)이고, 별에 있으면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라고 한다. 따라서 우리가 근기(根氣)에 따라 산신(山神) 불공(佛供)을 하더라도, 바로 보면 모두가 천백억화신(千百億化身)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인 것이다. '산(山)은 산(山)이요, 물은 물이라' 할 때에도 바로 불성(佛性)의 산(山), 불성(佛性)의 물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