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절
이스라엘에서 사는 삶의 가장 큰 매력은 성경의 삼대 축제를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지금도 초막절, 과월절(파스카), 주간절이 되면 온 이스라엘이 잔치 분위기에 휩싸입니다. 이 셋은 기본적으로 이집트 탈출을 기념하지만 농사 절기이기도 해서, 농민 주일에 떠올리게 되는 명절입니다.
농민 주일과 시기적으로 가장 가까운 절기는 5-6월에 지내는 주간절(週間節)입니다. 햇밀을 주님께 바치며 감사드리는 명절이기에, 구약 성경에서는 “맏물의 날”(민수 28,26), “맏물을 바치는 수확절”(탈출 23,16)이라 칭하였습니다. ‘주간절’이라는 이름은 파스카로부터 50일, 곧 파스카 이후 ‘한 주를 구성하는 이레’가 ‘일곱 번’ 지나 기념하는 축제라 붙여졌습니다. 옛 이스라엘에서는 파스카 때 보리를, 주간절에는 밀을 수확하기 시작하였는데요, 파스카 때 햇보리 첫 단을 하느님께 바친 뒤로 50일을 센 것입니다(레위 23,15-16; 신명 16,9). 그래서 주간절은 보리 수확을 마친 다음, 밀을 수확할 준비까지 모두 끝내면 맞게 되는 명절입니다(탈출 34,22).
파스카가 끝난 뒤 완전수인 7을 일곱 번 헤아리는 행위에는 복을 비는 의미가 담겨 있었습니다. 이 50일 동안 혹시라도 비가 내리면 농사를 망칠 수 있고(1사무 12,17) 광야에서 불어오는 동풍, 곧 샛바람도 위협이 되었던 까닭입니다. 동풍은 4월에서 6월까지 중 50일가량 부는데, 갑작스러운 온도 상승을 야기해 식물을 말라 죽게 하고(호세 13,15; 요나 4,8 등) 사람에게도 피해를 주었습니다(2열왕 4,18-20). 그래서 농부들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날수를 헤아리며 이 위험한 50일이 무사히 지나가기를 빌었습니다.
다만 초막절은 광야 방랑기와, 파스카는 이집트 맏배에게 내린 재앙과 관련되지만, 주간절에는 그 역사적 의미를 풀이해주는 성경 구절이 따로 없습니다. 오직 신명 16,12에 ‘이스라엘이 이집트의 종이었음을 기억하고 이 명절을 지켜야 한다.’라는 기록이 나올 뿐입니다. 그러다가 바빌론 유배 이후에 비로소 모세가 십계명을 받아온 날이라는 전승이 생겨납니다(구약외경 『희년서』 6,1-21; 『바빌로니아 탈무드』 메길라 31ㄱ). 오순절(五旬節)이라는 새 이름도 얻고요(2마카 12,31-32; 토빗 2,1; 사도 2,1).
그도 그럴 것이, 탈출기에 따르면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시나이산에서 계약을 맺은 때는 “셋째 달”(19,1)인데, 이집트를 탈출한 “첫째 달” 중순부터(탈출 12,2-3) 대략 50일 뒤가 되기에, 아주 근거 없는 전통이라고 할 순 없습니다. 그렇다면, 구약 시대 주간절에는 모세가 십계명을 받고, 신약 시대 같은 날 오순절에는 사도들이 성령 강림을 받은 셈입니다(사도 2,1-13). 오순절에 사도들은 성령을 받고 여러 민족 사람들에게 말씀을 선포해 요엘 3장의 예고를 실현하였습니다(사도 2,14-21). 그래서 주간절, 곧 오순절은 농민 주일을 떠올려 주는 동시에, 처음엔 이방인이던 우리 모두에게 의미 있는 절기이기도 합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 구약학과에서 공부하여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님성서연구소에서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며, 저서로는 <에제키엘서>와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 <구세사 산책; 에덴에서 약속의 땅까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