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머나먼 실크로드를 따라서 - 최종
2010년 8월 4일
05시 40분에 기차가 투루판역에 도착했다. 주섬주섬 배낭을 챙겨 기차에서 내렸다. 개찰구를 지나 역 광장으로 나갔다. 회원들이 한 객차 안에 있었던 것이 아니어서 한곳에 모이는데 시간이 걸렸다. 팀장이 인원파악을 했다. 그런데 회원 한 명이 없었다. 숫자를 세고 또 세어도 한 명이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야 여성 회원 한 명이 내리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었다. 처음에 우리가 끊은 기차표는 우루무치까지였는데 여행 일정상 투루판에서 내리기로 했다. 이것이 착오가 생긴 것 같다. 우리는 역 광장에서 서성거리며 내리지 않은 회원의 휴대폰으로 연결을 시도했고 그것이 여의치 않아 문자를 보냈다. 팀장이 우리 중 누군가가 택시라도 타고 우루무치역까지 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제안했다. 그러나 택시는 기차보다 느려서 현실적인 방법은 아닌 것 같았다. 결국 우리는 그 회원으로부터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우루무치까지는 기차로 2시간 남짓 걸린다.
투루판역.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아침나절에 위그르족으로 보이는 청년들이 모여 있었다.
나는 그 사이에 디카 배터리를 충전하려고 구멍가게로 갔다. 구멍가게 주인여자가 흔쾌히 허락했다. 그녀는 배터리 충전기 콘덴서를 꽂더니 손을 내밀었다. 나는 왜 이럴까 하고 그녀를 보았다. 손짓으로 하는 행동을 보니 충전시켜 주는 대신 그 값으로 5위안을 내라는 것이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멍하니 그녀를 보았다. 그러자 콘덴서를 빼는 시늉을 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손가락 세 개를 펴고 싼위안! 하고 외쳤다. 그녀 옆에 있던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하라고 했다. 여자주인이 너무 암팡졌다. 하긴 그렇게 해야 한 푼이라도 모으고 잘 살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내 입장에서 상황을 파악하기보다 상대방 입장에서 보려고 노력했다. 중국 땅이니까. 투루판의 아침 날씨는 조금 선선했다. 한국의 초가을 같았다. 역 광장에 한 무리의 위그르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 중 할머니가 아이를 안고 울먹이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들 일행 중에서 아이의 엄마가 기차에서 내리지 않은 것이다. 그 광경은 참 묘한 분위기였다. 우리는 언제까지 광장에 있을 수 없어서 위쪽으로 올라가 식당으로 들어갔다. 시간을 보니 어느새 07시가 되었다. 식당에서는 만두 1인분에 3위안을 받았다. 1인분에 작은 만두 10개를 주었다. 죽은 1그릇에 1위안이다. 나는 만두 1인분을 시켰다.
투푸판역 앞 광장. 영업용 승합차들이 주차하고 있었다. 나는 저쪽 붉은 간판 가게에서 배터리를 충전했다.
회원들이 식사를 끝낼 때쯤, 07시 40분에 우루무치까지 올라간 회원과 연락이 닿았다. 다행이 회원의 신변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이런 일은 여행중에 발생할 수 있는 많은 경우의 수 중에서 하나로 보여진다. 우리는 22시에 그 회원과 우루무치에서 만나기로 하고 다음 일정을 진행하기로 했다. 09시 30분에 투루판역 앞에 있는 버스터미널에서 대여한 승합차를 타고 고창에 소재한 고성을 향해 출발했다. 투루판은 <움푹 들어간 땅>이라는 뜻이다. 이곳은 실크로드 북쪽으로 가는 천산북로의 중심지로서 분지의 형태를 티고 있다. 이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위구르족이 7할이다. 한족이 2할이고 나머지는 후이족(Hui), 몽골족(Mongol), 카작족(Kazak)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11시 45분에 고성에 도착했다. 승합차에서 내리자 아이들 몇 명이 조악한 공예품을 들고 달려들었다. 아이들이 1달러라고 외쳤다. 고성 입구에 작은 마을이 있는데 그 동네에 사는 아이들 같았다. 고성 입구에 공예품을 파는 가게가 서너 군데 보였고 어른들도 많았다. 아이들은 아마도 그 어른들의 자녀인 듯싶었다. 그런데도 아이들의 상행위를 건너다보고만 있었다. 나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나 그들을 이해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고성 일대는 사막지대였다. 따라서 양식을 마련하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를 것 같았다.
고창 고성. 당나귀수레가 고성을 한바퀴 돌고 돌아오고 있다.
나는 가게에서 3위안을 주고 물 1병을 샀다. 그리고는 단숨에 다 마셔버렸다. 고성 입장료는 40위안이다. 우리는 일괄적으로 관광하지 않고 보고 싶은 사람만 들어가기로 했다. 나는 입장료를 내고 안으로 들어갔다. 한 소년이 내게 손짓했다. 소년은 당나귀가 끄는 수레에 앉아 있었다. 소년이 내게 손짓한 이유를 알아차렸다. 당나귀수레를 타라는 것이다. 고성은 흙으로 쌓아서 만든 촌락이었다. 이 사막에서 살아가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할 수 있었다. 성이라고 하기에는 뭣하지만 그래도 저 옛날에는 많은 인구가 살았을 거라는 것을 그 넓이를 보아 짐작이 되었다. 땡볕이 내리쪼이고 있었다. 불화살 같은 땡볕이다. 나는 고성 입구에서 왔다갔다하며 저쪽으로 이어진 흙집들을 보았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살았을까. 당나귀가 커엉커엉 킁! 하며 소리를 냈다.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지만 즐거워서 내는 소리는 아닌 것 같았다. 쇠라도 녹일 것 같은 그 햇볕 속에서 당나귀들은 아무 그늘도 없이 서 있었다. 당나귀가 너무 가여웠다. 내가 한 당나귀에게 다가가서 손을 내밀었다. 당나귀 어깨에 수레끈이 단단하게 조여 있고, 그 뒤로 사람 서너 명이 탈 수 있는 수레가 마치 운명의 기다란 혹처럼 무겁게 매달려 있었다. 당나귀가 내 손을 혀로 핥았다. 그게 무슨 뜻일까. 반갑다는 것은 아닐는지. 내가 머리를 쓰다듬자 수굿하게 서 있었다. 당나귀의 눈빛이 너무 외로워 보였다. 물이라도 한 바가지 떠다주고 싶었지만 그들 삶에 섣불리 끼어드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나는 당나귀 눈에 입을 맞추고 일어났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었다. 당나귀야 다음 생에는 꼭 인간으로 태어나렴!
나의 마음을 울적하게 움직인 당나귀. 커다란 눈동자가 슬퍼보였다.
고성 정문으로 나가자 다른 승합차 한 대가 주차장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서양인들이 차에서 내렸다. 그들에게 아이들이 또 달려가서 공예품을 내밀었다. 고성 정문 앞에는 신기하게도 샘물이 솟아나고 있었다. 그 샘물을 중심으로 나무가 있고 마을 사람들의 휴식처로 사용되고 있었다. 두 여인이 양고기 꼬치와 국수를 만들어 팔았다. 회원들이 양고기 꼬치를 구워먹고 있었다. 양꼬치가 3위안이고 오뎅꼬치는 1위안이다. 나는 두 가지 다 사 먹었다. 오뎅은 우리 것과 비슷했고 양고기는 짭짤했다.
고성 입구 쉼터에서 양꼬치를 굽는 여인. 저 뒤에 공예품을 팔던 소녀가 앉아 있다.
음식을 먹고 나서 고성 정문 앞에 있는 마을을 돌아보았다. 흙을 쌓아서 만든 집들을 보니 낮의 햇볕과 밤의 추위를 피할 수는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환경 여건이 워낙 열악하여 주거지역으로서는 적당하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혼잣말로 ‘이런 곳에서도 살 수 있는 것이구나’하며 중얼거렸다. 일행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걷고 있는데 한 여인이 아이를 안고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디카를 들어보이자 미소를 지으며 포즈를 취해 주었다. 이곳 사람들의 순박함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터벅터벅 걸으며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흙담집 앞에서 소녀가 포즈를 취해 주었다. 소녀의 해맑은 미소가 땡볕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12시 45분에 고성에서 출발했다. 승합차는 포도원으로 가던 중 화염산에서 멈췄다. 화염산 앞쪽에 무슨 건물이 있고 손오공에 관한 시설물이 보였다. 팀장이 화염산 관광지로 들어갈까요? 하고 물었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더위 탓이다. 사람들이 차에서 내려 화염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나도 한 장 찍었는데 그 사이에 땀이 주루룩 흘러내렸다. 지독한 햇볕이다. 13시 45분에 승합차가 포도원에 도착했다. 이곳은 민속촌과 함께 주변에 포도농장이 형성되어 있었다. 차 밖이 워낙 뜨거워서 우리는 걸어서 움직이는 것을 꺼리게 되었다. 논의 끝에 도로변에 있는 한 포도원 농장으로 들어갔다.
건포도와 포도주가 이 지방의 특산품이다. 이곳 사람들은 사막 같은 건조한 땅에 ‘카레즈’로 불리는 수로로 물을 공급받아서 농작물을 경작한다. 1100여 개의 카레즈 수로(Karez Irrigation)는 이미 2000여년 전부터 개척되어 삭막한 들판에 생명수를 공급하고 있다. 중국인의 저력과 강인한 생활력을 엿볼 수 있는 수로임에 틀림없다. 이곳 날씨를 살펴보면 여름에는 섭씨 40~50도까지 올라가고 겨울에는 섭씨 1~2도까지 내려간다. 일 년 강우량이 10mm 내외이니 거의 비가 내리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우리가 고성에 방문하던 날 기온은 섭씨 36도라고 한다. 이곳 주민들 입장에서는 그리 더운 것이 아니다. 우리가 들어간 포도원 농장은 일자형 가옥에 포도나무를 심어 마당에 그늘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마당 한켠에 건포도를 진열해 놓은 작은 수레가 있었고 포도나무그늘 아래에 평상이 하나 있었다. 우리는 포도 농장을 잠깐 돌아보고 평상에 앉았다. 풀빛님 정보로는 이곳에서 공연도 해 준다고 했다. 팀장은 그것이 생각났는지 통역 강성희 씨를 통해 공연을 볼 수 있냐고 물었다. 그러자 주인아저씨가 된다고 한다. 우리는 평상에 앉았다. 한 아가씨가 전통 의상을 입고 나타났다. 곧 음악소리가 났고 그녀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런데 춤사위가 그다지 세련되어 보이지는 않았다. 전문 무용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녀는 성심성의껏 춤을 추는 듯이 보였다. 춤을 춘 시간은 3분 정도로 길지 않았다. 음악이 끝나고 춤도 끝났을 때 우리는 뭔가가 미진하여 다시 춤을 추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녀가 기꺼이 춤을 추었다. 두 번이나 추었지만 그래도 우리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물론 흥이 나서 장단을 맞춰준 회원도 있었지만 대부분 회원들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잠시 후 주인아저씨가 사태를 파악했는지 우리에게 춤을 배우라고 권했다. 회원들이 마당으로 나갔다. 말이 통하지 않는 가운데 주인아저씨는 춤을 가르치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수염을 기른 주인아저씨는 40대 중반은 되어 보였다. 노력이 가상하다고 할 만큼 그가 열심히 춤을 가르쳤다.
좌측의 흰옷을 입은 포도농장 주인 아저씨가 회원들에게 춤을 가르치고 있다.
춤을 배우는 시간이 끝나자 우리는 더 이상 할 일이 없었다. 주인아저씨를 비롯해서 원주민 몇 명과 우리 사이에 잠시 계면쩍은 시간이 흘러갔다. 시끌벅적거리다가 갑자기 정적이 찾아온 느낌이었다. 관례상 이쯤 되면 건포도를 사 주어야 하는 것 같았다. 주인아저씨 얼굴에 실망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내가 잘못 판단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몹시 서슬퍼보였다. 하지만 우리 회원은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나는 그때 한국에 있는 지인들에게 나누어 줄 선물로 건포도가 적당하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강성희 씨를 통해 건포도 값을 물어보았다. 건포도마다 가격이 달랐는데 내가 가리킨 건포도는 1봉지 500g에 50위안이란다. 가격을 흥정하여 3봉지 1500g을 100위안에 샀다. 이런 광경을 바라보던 회원들이 건포도 진열대로 왔다. 이건 얼마예요. 깎아주세요. 회원들이 이것저것 주문을 했다. 얼마 후 건포도 진열대는 절반 이상이 비게 되었고 비로소 주인아저씨 표정도 밝아졌다. 나는 주인아저씨에게 사진을 찍겠다고 했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진을 찍고 나서 강성희 씨를 통해 나이를 물어보았다. 그러자 회원 모두가 깜짝 놀랐다. 그의 나이가 28살이라는 것이다. 세상에. 우리는 모두 속은 기분이 들었다. 40대 중반으로 보았던 사람이 28살이라니. 더 놀란 것은 그 옆에 머리가 벗겨지고 순한 할아버지처럼 생긴 사람이 33살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대머리아저씨가 주인아저씨의 아버지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었다. 이마을 사람들은 나이보다 훨씬 더 늙어 보였다. 열악한 환경 여건 때문일 것이다.
포도농장 가족들. 좌로부터 포도농장 주인아저씨의 부인, 주인아저씨, 춤을 공연했던 여동생, 형, 형수.
그들 가족사진을 찍을 때 춤추던 아가씨가 사진을 꼭 보내달라며 명함을 주었다.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고 명함을 받았다. 그런데 한국으로 돌아와 사진을 살펴보자 디카에 에러가 발생하여 많은 사진이 재생이 되지 않았다. 디카 센터에 가서 메모리카드를 복원했는데 겨우 몇 장만 건질 수 있었다. 하지만 포도원 가족사진은 거의 재생이 안 되거나 위 사진처럼 잘려 있었다. 이 사진을 보내 줄 수는 없는 것이다. 포도원 아저씨 약속 지키지 못해서 미안해요! 포도원을 떠나기 전에 물 1병을 2위안에 샀다.
15시 30분에 승합차가 투루판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우리는 투루판의 한 시장으로 갔다. 시장 사람들은 위그르족들이 대부분이었다. 이곳에서 군만두 3개를 2위안 주고 사먹었다. 조금 짭짤했는데 맛은 담백했다. 16시 50분에 투루판시외버스터미널에서 40위안씩 내고 우루무치행 버스를 탔다. 18시 35분에 버스가 휴게소에 정차했다. 그곳에서는 큰 콩, 작은 콩, 붉은 콩, 파란 콩 등의 콩 종류를 볶아놓고 판매하고 있었다. 맛을 보니 고소했다. 나는 볶은 푸른 콩을 10위안 주고 1봉지 샀다. 그리고 물 1병을 2위안 주고 샀다. 날씨 때문에 끊임없이 물을 마셔야만 했다.
우루무치버스터미널. 차와 사람이 뒤엉켜 매우 혼잡했다.
19시 40분에 버스가 우루무치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마침내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우루무치에 당도한 것이다. 팀장은 먼저 도착해 있는 회원을 만나기 위해 택시로 출발했고 우리는 20시 20분에 시내버스 104번을 타고 숙소로 향했다. 21시에 전신공사 앞에서 하차했다. 이곳에 백화림 유스호스텔이 있었다. 우리는 이틀 밤을 이곳에서 머물 예정이었다. 얼마 후 팀장이 헤어졌던 회원과 함께 나타났다. 천만다행이었다. 나는 유스호스텔 302호를 배정받았다. 다른 회원 3명과 함께 지내기로 되었다. 22시 50분에 유스호스텔의 같은 건물에 있는 식당에서 늦은 저녁식사를 했다. 나는 새우볶음을 시켰는데 값이 22위안이다. 새우보다는 콩이 더 많이 들어 있었다. 이런 음식보다는 시장 골목에서 파는 빵이 더 먹을 만하다. 숙소로 돌아와 반바지, 티셔츠, 속옷, 양말 등을 유스호스텔 데스크 옆에 있는 세탁실에서 빨았다. 단체로 여행할 때는 기회가 있을 때 빨래도 하고 샤워도 하는 것이다. 그런 시간이 별도로 주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빨래를 끝내고 옆에 있는 세탁기에서 탈수도 했다. 빨래하고 탈수까지 할 수 있다니. 정말 기분 좋게 빨래를 마쳤다. 그런데 다음날 직원으로부터 탈수를 하면 10위안을 내야 한다는 설명을 들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이다. 10위안이 굳었다는 것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진다.
1일 결산 : 만두 1인분 3위안. 죽 1위안. 배터리 충전 3위안. 고성 입장료 40위안. 물 3병 9위안. 양꼬치 3위안 오뎅 1위안. 건포도 1.5kg 100위안. 군만두 3개 2위안. 직행버스비 40위안. 콩 10위안 저녁식사비 22위안. 합계 234위안.
2010년 8월 5일
06시 40분에 일어났다. 오늘은 천산(天山)산맥의 천지로 가기로 했다. 07시 45분에 숙소를 출발하여 버스정류장에서 73번 시내버스를 탔다. 버스비는 1위안이다. 08시 10분에 어느 버스터미널에 도착했고 이곳에서 17번 승합차 버스를 탔다. 요금은 10,5위안. 버스에 사람이 가득차자 08시 40분에 출발했다. 특이한 것은 버스에 간이의자가 구비되어 있어서 승객이 많으면 통로에 간이의자를 놓고 앉아서 갔다. 한참 달려 나가던 버스가 어느 소도시에 다다랐다. 그런데 운전기사가 우리 일행에게 10위안을 더 내면 천산 입구까지 태워주겠다고 제안을 한다. 회원들이 그렇게 하기로 하고 추가요금 10위안을 냈다. 운전기사는 더 가야하는 승객에게 내리라고 하더니 방향을 돌려 천산으로 차를 몰았다. 이 버스는 개인 영업자가 운행하는 것이었고 필요하면 그렇게 노선을 바꿀 수도 있었다. 아무려나 이 도시의 문화인 것을 누가 뭐하라고 할 것인가. 덕분에 우리는 차를 갈아타는 수고를 덜고 천산 입구까지 갔다. 천산 천지(天池)는 우루무치 시 동북쪽으로 120km 떨어진 천산산맥 중턱(해발 1890m)에 있는 호수이다. 4.9㎦의 면적에 깊이가 100m에 이른다고 한다. 천지에 천산산맥의 만년설이 녹아 흘러들어 물이 깨끗하고 수량이 풍부하다.
천산천지 입구. 내 손에 물통이 들려 있다.
10시 35분에 버스가 천산천지 입구에 도착했다. 입장료는 100위안이다. 입장료는 내고 절차를 밟은 다음 버스가 다시 산 속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20여분 후에 버스가 최종 종점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천지까지 방법은 케이블카를 타는 것과 등산로를 따라 걸어가는 2가지가 있다. 우리는 걸어가기로 했다. 시간 여유가 있어서이기도 했지만 아름다운 산 속을 걸어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었다. 천지로 가는 동안 겔을 많이 보게 되었다. 원주민인 것 같았다. 등산로 중간에 한 가족이 살고 있는 겔이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가장인 듯한 남자가 막 잡은 양을 손질하고 있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그는 자그마한 양 머리와 발을 손칼로 다듬고 있었는데 내가 사진을 찍어도 제지하지는 않았다. 내가 생각하기에 양 몸통의 살코기는 구워서 관광객에게 팔고 상품이 되지 않는 머리와 다리는 그들이 먹는 것 같았다. 다른 회원들은 그 겔에서 사진을 찍지 말라고 해서 못 찍었다고 한다. 그런데 왜 그는 내가 사진 찍는 것에 대해서 아무 제지도 하지 않았을까.
갓 잡은 양의 머리와 발을 능숙하게 손질하는 원주민. 사진 좌측이 조금 잘렸다.
지금 내 집에 앉아 이 글을 쓰는 동안 그의 말간 눈빛과 수줍음 가득한 표정이 눈앞에서 어른거리고 있다. 그의 손에 들려 있던 자그마한 양의 머리와 조막만한 양의 발은 음식이 아닌 그 이상의 무엇인 것만 같다. 생존을 위한 그 무엇!
천산천지. 저 멀리 만년설 봉우리가 보인다. 사진 아랫부분이 조금 잘려나갔다.
12시 30분에 천지에 도착했다. 푸른 물이 넘실대고 있었다. 넋 놓고 천지를 바라보았다. 천지의 물이 흘러흘러 저 아랫동네에 사는 사람들의 생명수라고 생각하니 숭고한 어떤 기운이 전해져 온다. 그곳에서 사진 몇 장을 찍었다. 하산 하던 길에 원주민이 구워 파는 란(둥근 밀빵)을 5위안 주고 샀다. 그리고는 원주민을 디카에 담았는데 그 사진은 재생이 되지 않아 보지 못했다. 나중에 계산해 보니 천산천지의 왕복 버스비는 41위안이 되었다. 15시 5분에 천산 주차장에서 출발했다. 그리고는 중간 지점에서 큰 버스로 갈아타고 우루무치로 돌아갔다. 우루무치버스터미널에 도착한 시간은 16시 57분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시내버스 103번을 타고 홍산(紅山)공원으로 행했다. 버스비는 1위안이다. 버스에서 내린 후 한참 걸어서 홍산공원에 도달했다.
홍산 공원 탑에서 바라본 광경. 공원 일부와 시가지가 보인다.
공원 내에 임칙서(林則徐) 석고상이 있었다. 광동성에 흠차(欽差:全權)대신으로 파견된 임칙서는 아편금지 강경론자로서 영국 상인이 가져온 아편 2만 상자를 몰수하여 불에 태웠고 그로 인해 중국은 영국과 아편전쟁을 벌이게 되었다. 임칙서는 청나라 말기에 외세에 대항했던 사람으로서 널리 알려지긴 했지만 그가 왜 광동과는 먼 지방인 우루무치 홍산에 석고상으로 재현되어 있는지 못내 궁금했다. 홍산공원에 연못이 하나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연못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앉아 있었다. 바다에서 가장 먼 내륙지방에 사는 이들에게 낚시라니. 여행객의 눈에는 참으로 이색적인 광경이었다. 홍산공원에서 나가던 중 노인부부가 의자에 앉아 다정하게 대화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내가 디카를 들이대자 의외로 포즈를 취해 주었다. 그러더니 할머니가 뭐라도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홍산공원에서 만난 노부부.
재미있는 할머니였다. 나는 발길을 돌려 5위안짜리 지폐를 할머니에게 쥐어 주었다. 이것이 소통 아닐까. 이방인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라는 생각이 들었다. 홍산공원 입구에 있는 가판대에서 옥수수 1개를 샀다. 값이 2위안이었는데 맛은 밍밍했다. 19시 40분에 63번 버스를 타고 위족시장으로 갔다. 이곳에서 시장의 상품들은 양탄자, 건포도, 가방 등 다양했는데 품질이 우수해 보였다. 나는 한 가게에서 300위안 달라는 가방을 200위안에 샀다. 양가죽이라고 하는데 천같이 매우 부드러웠다. 쇼핑을 마치고 회원 한 분과 함께 한 식당으로 가서 저녁식사를 했다. 나는 14위안짜리 볶음밥을 시켰고 다른 회원은 국수를 시켰다. 볶음밥 맛은 괜찮았는데 기름이 듬뿍 들어가서 조금 니글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다른 회원이 주문한 국수는 양고기 국물에 말아온 것 같았다. 국물을 떠 먹어보니 역시 조금 니글거렸다. 이날 일정을 모두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104번 버스를 탔다. 22시 45분에 숙소로 돌아갔다.
1일 결산 : 버스비 45위안. 입장료 100위안. 란 1개 5위안. 물 2병 10위안. 시내버스비 2회 2위안. 옥수수 1개 2위안. 촬영비 5위안. 가방 200위안. 볶음밥 14위안. 합계 383위안.
2010년 8월 6일
08시에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세수를 하고 나서 09시에 숙소를 나섰다. 어제 부로 우리 팀의 공식 일정은 끝이 났다. 따라서 오늘은 각자 자유로이 여행을 하기로 했다. 천천히 걸어서 인근에 있는 장천보합시장으로 갔다. 아침시간이어서인지 거리가 분주하다. 시장으로 들어서자 손수레를 끌고 나온 상인들이 과일과 빵을 팔고 있었다. 나는 2위안을 두고 옥수수 1개를 샀다. 옥수수를 먹으며 한 여인이 밀가루 반죽을 넓게 밀어서 기름에 튀기는 광경을 구경했다. 사람들이 하나 둘씩 다가와 2위안을 내고 튀김빵을 사갔는데 튀김빵을 파는 여인이 불그스름한 소스를 발라 주었다. 옥수수를 다 먹고 나서 나도 튀김빵을 샀다. 막 튀겨서 고소했고 소스는 짭짤했다.
음식점 밖에 만들어놓은 화덕 앞에서 젊은 요리사들이 빵을 굽고 있다. 나는 2위안을 내고 1개를 샀다.
튀김빵을 씹으며 나는 아침 시장 풍경을 느긋이 구경하고 있었다. 그런데 저쪽에서 억양이 센 마이크 소리가 났다. 그러자 상인들이 주섬주섬 손수레를 챙기더니 위쪽 골목으로 올라갔다. 잠시 후 한국의 마티스처럼 작은 차가 나타났고 앞자리에 앉아 있는 여자가 상인들에게 더욱 큰소리를 질러댔다. 단속차량이었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눈에 익은 광경이다.
음식을 준비하는 한 가족. 나는 이곳에서 만두 2위안어치를 사 먹었다.
나는 시장 골목을 돌아다니며 구경했다. 그러다가 한 식당에서 만두를 찌고 있는 광경을 보았다. 뜨거운 김이 피어오르는 솥에서 만두가 꺼내질 때마다 군침이 돌았다. 결국 나는 2위안을 내고 만두 4개를 사 먹었다. 오후에는 신강위구르자치구박물관을 구경하기로 했다. 13시 10분에 회원 두 분과 함께 박물관을 찾았다. 박물관의 유물은 소박하고 규모가 작은 것들이었다. 특기할 만한 것은 고성에서 발굴했다는 미라였다.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미라는 서너 구가 되었는데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저 옛날 인간 원래의 모습을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어서 여행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신강자치구박물관 전경.
14시에 관람을 마쳤다. 걸어서 숙소로 귀가하던 중 옥 제품 시장에 들렀다. 그곳에서는 옥 제품만 전문으로 취급했는데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서 바로 발길을 돌렸다. 16시에 백화림 유스호스텔로 돌아갔다. 우리는 퇴소 절차를 마치고 17시에 그곳을 나왔다. 우리는 우루무치 남역으로 가기 위해 길 건너편으로 가서 537번 버스를 탔다. 남역에 도착한 시간은 17시 45분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정주까지 갈 예정이다. 장장 36시간 19분 동안 기차 안에 있어야 한다. 다행인 것은 좌석표를 확보했다는 점이다. 이 부분에서 다시한번 팀장의 노고에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18시경 역 개찰구를 통과할 때 공안이 우리 회원 두 분을 제지했다. 회원 두 분이 위족시장에서 관광객용 칼을 샀는데 그것이 검색대에서 발견된 것이다. 그들 법에 의하면 총검류는 이동을 금지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우루무치 지역에서 폭동이 일어났던 관계로 공안당국에서는 철저하게 여행객의 소지품을 통제했다. 중국 공안은 결국 두 분의 칼을 회수했다. 18시 29분에 우루무치역에서 기차가 출발했다. 내 자리는 13차 91번이다. 기차는 우리 여행의 종착지를 향해 힘차게 쇠바퀴를 굴려갔다. 나는 물 1병을 3위안 주고 샀다.
1일 결산 : 옥수수 1개 2위안. 튀김빵 1개 2위안. 만두 4개 2위안. 복숭아 7개 8위안. 버스비 1위안. 물 2병 6위안. 합계 21위안
2010년 8월 7일
우리는 하루 종일 기차 안에 있었다. 기차가 36시간 넘게 달리는 동안 나는 컵라면 1개를 5위안 주고 사먹고, 10위안짜리 밥을 두 번 사먹었다. 그리고 5위안짜리 발효 과즙을 사먹었다.
1일 결산 : 컵라면 1개 5위안. 점심식사비 10위안. 저녁식사비 10위안. 발효과즙 5위안. 합계 : 30위안.
2010년 8월 8일
06시 48분에 기차가 정주역에 도착했다. 팀장은 정주역에 내리자마자 연운항까지 가는 기차표를 예매했다. 19시 27분 기차였다. 침대칸이었는데 12표만 확보했다. 4명이 입석표를 가져가야 했다. 팀장이 누구에게 입석표를 줄 수 없으므로 추첨을 하자고 한다. 나는 자원해서 입석표를 달라고 했다. 그런데 나중에 통역을 맡았던 강성희 씨가 우리와 정주역에서 헤어지게 되어 그 침대칸 표를 내가 갖게 되었다. 나는 침대칸표를 135위안 주고 건네받았다. 우리에게 일정상 하루의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운대산에 가기로 합의를 보았다. 애초에 정주에서 운대산 관광을 하려고 했던 것인데 그제야 가게 된 것이다. 미니버스를 대절하여 08시 10분에 출발했다. 대절비는 1100위안이다. 우리는 1인당 85위안씩 지급했다. 10시 10분에 운대산 주차장에 도착했다. 운대산 입장료와 순환버스비 180위안을 냈다. 운대산 안내 대기실에서 물 1병을 2위안 주고 샀다. 10시 40분에 순환버스를 타고 올라가 11시부터 홍석협곡으로 갔다. 운대산 정상에 운무가 끼어 있어서 운대산 등산을 하려는 회원은 없었다.
홍석계곡. 컴팩트 디카 성능이 낮아서 해상도가 많이 떨어진다.
홍석계곡은 말 그대로 붉은 바위 계곡이었다. 일요일이어서인지 수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었다. 우리는 뒷사람에게 떠밀리며 계곡으로 들어갔다.
홍석계곡 중간에서 포즈를 취했다.
나는 계곡 끝까지 갔다. 그곳의 매점에서 8위안을 주고 과자 한 봉지를 샀다. 과자 맛이 고소하고 담백했다. 13시 20분에 계곡 관광을 마쳤다. 운대산 입구로 내려가서 6위안짜리 빵과 6위안짜리 발효 과즙으로 점심식사를 대신했다. 15시에 미니버스가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17시 25분에 정주역에 도착했다. 정주역 내에 있는 가판대에서 저녁식사용으로 에그 샌드위치 1개를 5위안 주고 샀다. 기차시간을 기다리다가 샌드위치를 먹었는데 샌드위치에 내용물이 절반도 들어 있지 않았다. 얄밉도록 치졸한 상술이다. 기차가 연착되고 있었다. 나는 선물용으로 고량주 4원짜리 5병과 7위안짜리 2병을 34위안에 샀다. 20시 20분에 기차가 연운항을 향해 출발했다.
1일 결산 : 침대칸 기차표 135위안. 버스대절비 1인당 85위안. 운대산 입장료 버스비 180위안. 빵 1개 6위안. 과자 1봉지 8위안. 발효 과즙 1봉 5위안. 샌드위치 1개 5위안. 고량주 7병 34위안. 물 1병 2위안. 합계 461위안.
2010년 8월 9일
05시 20분에 기차가 연운항에 도착했다. 원래는 연운항 동역에 내려야 하는데 착오로 연운항역에 내리게 되었다. 이곳에서 택시를 탔다. 연운항 훼리터미널까지 74위안이 나왔다. 나는 택시비로 18위안을 부담했다. 우리를 인천항으로 데려다 줄 자옥란호는 12시경에 출발한다. 회원들이 터미널 아래쪽에 있는 보따리 무역상 가게에서 땅콩, 깨 같은 농산물을 샀다. 나도 내려가서 땅콩 5kg짜리 1봉지를 50위안 주고 샀다. 그 옆에 있는 상점에 1보루에 150위안 하는 담배와 고량주 13위안짜리 1병도 샀다. 나중에 땅콩 1봉지를 더 샀다. 09시 55분에 입국심사가 이루어졌다. 우리는 모두 입국장을 통과했고 10시 15분에 자옥란호에 승선했다. 나는 처음에 출국할 때 배정받았던 602호실로 가서 배낭을 내려놓았다. 어깨가 가벼웠다. 이제 길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실크로드 여행을 마무리하는 단계에 도달한 것이다. 잠시 후 총무가 돈을 걷으러 왔다. 항만세(30위안)와 팀장이 사용한 전화비 등등을 포함하여 80위안을 냈다. 13시에 한국돈으로 4000원을 내고 점식식사를 했다. 18시 30분에 이번 여행의 마지막 의미를 담은 단체식사를 했다.
1일 결산 : 담배 1보루 150위안. 고량주 1병 13위안. 택시비 18위안. 항만세 전화세 잡비 80위안. 땅콩 100위안. 물 2병 5위안. 점심식사 22위안. 저녁식사 22위안. 합계 410위안.
2010년 8월 10일
07시에 일어났다. 12시에 점심식사로 3000원을 내고 국수를 사먹었다. 13시 25분 자옥란호가 안내선의 견인을 받으며 인천항 도크로 들어갔다.
자옥란호에서 바라본 인천대교.
마침내 실크로드 여행의 마지막 종착지에 도달한 것이다. 15시 20분에 자옥란호에서 하선하면서 우리는 우리가 떠났던 자리로 무사히 돌아왔다.
부족한 실크로드 여행기를 마치면서
나는 실크로드에 관한 뉴스와 경험자들의 얘기를 들으며 언젠가는 그곳에 가보리라는 다짐을 하곤 했다. 올해 카페 게시판에 실크로드 공지가 떴을 때 왠지 이번이 아니면 영영 가지 못하리라는 묘한 압박감을 받았다. 그래서 사진을 들고 군청으로 가서 여권을 신청했다. 실크로드는 중국 서안에서 터키의 이스탄불까지 1만2천km에 이르는 대장정의 길이다. 이번 여행은 연운항에서 우루무치까지였다. 우리가 다녀온 길은 편도 4000km 남짓이다. 여행 고수들이 본다면 코웃음 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행의 진정한 가치란 얼마나 먼 거리를 가는가 하는 것보다는, 얼마나 많이 느끼고 배우는가에 있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이동시간만 168시간(기차 91시간, 승합차 27시간, 배 50시간)이었던 이번 여행에서 나는 얻은 것이 아주 많다. 중국에 대한 선입견을 씻을 수 있었고, 그들 삶의 일면을 느낄 수 있었으며, 한국과는 구별되는 아름다운 풍광도 구경할 수 있었다. 그렇다곤 해도 중국, 나아가 실크로드의 참의미를 알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번 여행으로 알게 된 것들로 인해 또 다른 선입견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닐지 조심스러워진다. 이번 여행의 느낌을 한마디로 줄이자면 중국은 매력 있는 나라라는 것이다. 장구한 역사의 숨결이 지금도 곳곳에서 품어져 나오고 있으니까 말이다. 나는 15일 동안 내내 즐겁고 행복했다. 그래서 아마 나는 다시 중국 땅을 밟는 꿈을 꾸며 살게 될 것 같다.
값진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풀빛 카페지기님께 고마운 마음 전해 드린다. 그리고 15일 동안 의지하며 시간을 같이 했던 회원들께도 미운정 고운정이 들었다는 말씀 전해 드린다. 특히 팀장 서까래님과 부팀장 흥부형님이 개척자정신과 봉사하는 마음으로 팀을 이끌어 준 것에 대해 박수를 보내 드린다.
2010년 8월 8일 여행중.
|
|
첫댓글 유작가님 여행후기를 따라서, 힘들고 즐거웠던 실크로드 배낭여행을 다시한번 다녀온 듯한 감회에 젖었습니다. 배경음악인
'월량대표 아적심' 노래가 참 좋네요. 다음 뒷풀이 때 만나서, 이 곡의 가사의 뜻과, 글로 못다한 후일담을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다음에 뵈어요.
아우님.. 긴 글 쓰시느라 고생하셨네... 잘 읽었네... 늘 건강하시게나.....
고맙습니다. 다음에 뵈어요.
유작가님의 세세한 뒷정리 덕분에 하나하나 새롭게 다가옵니다. 같이 여행하신 분들은 물론 다음에 여행을 계획하실 분에게도 좋은 정보와 길잡이가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고생 많이 하셨어요. 덕분에 편한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치 제가 함께 여행한것 같아여~~^^
출발부터 도착하실 때까지 여행 후기를 너무너무 잘 써 주셨네요~~^^
고맙습니다. 다음 기회에 꼭 다녀 오세요.
덕분에 잘 읽고 갑니다..
여행기 보며 대리 여행 잘하구 갑니당~!@@@
기회가 되면 실코로드 여행을 가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여기 다녀오신거 아녀
잘읽었습니다 정말 다음엔 가보고싶네요 등려군의 노래인 월양대표아적심 정말좋네요 남녀의 사랑으로
나의마음은 저달과 같다는것 같네요(너에대한 나의 사랑은 불순함이 없는 순수한사랑이라는것같네요)
월량대표아적심은 등려군이 굉장히 부드럽고 달콤한 목소리로 불렀지요. 그런데 다음에서는 등려군의 음원이 없어서 한국의 이희아가 부른 노래를 배경음악으로 했습니다.
잘~보구갑니다 정말 기회가되면 한번은 다녀오구 싶네여~~
'기회가 되면'이라기보다 '기회를 만들어'서 다녀오시는 건 어떨지... 절대 후회하시지 않을 거예요.
여행후기, 산행후기 많이 읽었는데 가장 잘쓴 것 같군요 잘봤습니다.
참 잘보았읍니다 제가 간곳이겹쳐 더욱실감이나네요 운대산 화산 소림사 등 우리는 등산위주로 다녔읍니다
가이드 데리고
재야님 다음에 실크로드를 따라서 가 보세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가보고싶은곳에...멋진여행후기...잘보았읍니다!!
부평초님, 닉네임처럼 많은 곳 다니시길 빕니다.
잘읽고 갑니다.. 가고는싶지는아직 가지 못한 저에게 가보고 싶게끔하는 글귀가 많이보여서... 훅 ~~~읽어내려갔습니다...^^
아츠님 반갑습니다.
실크로드에 꼭 가보시길 권합니다.
섬세한 여행기 잘 읽었습니다.^^
이은실님, 고맙습니다.
우연하게도 님의 여행후기란. 잘 보고갑니다.
보고있노라니 마치 일행분들과 합류해서 즐건여행 시간 함께한 느낌입니다.
후기 올려 주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건강 하세요.~~~~
안전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