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근정전 뮤지컬
세종 1446 관람기
1. 광클릭 성공!!!
성공할 거란 희망없이 2시 (티켓링크)싸이트 오픈 하자 마자 달려들었다.
경복궁 근정전 뮤지컬 (세종 1446) 표 1인당 4매, 4명 문예 운영위원이 가까스로 16매 티켓확보 성공했다.
더 많이 확보 못해 크게 아쉬웠다.
드라마나 영화로 무수히 보던 사극의 현장 근정전 앞 무대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야간 뮤지컬한다니 친구들과 함께 너무나 가고 싶은데 실패할까 봐 클릭하던 손이 다 떨렸다
몇년전 문예회 행사로 경복궁 야간개장에 맞춰 수라간 생과방에서 다과상 받으며 전통 국악 공연 보던 기억도 아스라해지려 한다.
경복궁 가면 친정집 간 것 처럼 항상 좋은 이유는 전생에 그곳에 무수리라도 살았던 느낌이랄까?
야외공연인데 비오면 어쩌지?
지난 토요일 공연 땐 비 바람 불어 추운 가운데 공연 강행해 환불해주었다는데...
2. 오픈 런, 노익장 단체 관람
다행히 오늘은 적당한 5월 초입 초입의 봄바람속에서 16명 동기들과 줄서서 기다리며 티켓팅하고, 수학여행 온 학생들처럼 조광복 문예회장, 장석산 총무님 따라 관객석으로 입장했다.
700명 관객 중 단체로 온 최고령자는 우리뿐인 듯..
연인들이나 가족들이 대부분인 관객 중 노익장 과시하며 일찍 대기하며 줄서는 바람에 비교적 좋은 자리 선점할 수 있었다.
(궁이둥이)란 ID카드 맨 이쁜 도화서 화원 복색의 주최측 도우미들이 뛰어다니며 우리를 안내해주었다.
질서정연하고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서 700명이 태종과 세종, 양녕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스펙타클한 역사드라마 감상하는 건 감동이었다.
주최측에선 돌계단 많은 어두운 궁궐이라 핸폰 플래쉬 비춰주며 배려해주었다.
3. 근정전, 검이불루 화이불치
근정전 보며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가 떠올랐다.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는 백제 예술의 진수를 표현한 이 문장은 삼국사기에 나오지만, 경복궁 건설의 정신적 지주 정도전의 성리학 이데올로기 근간에도 관통하는 것이었을 듯...
경복궁 근정전은 푸른 야외 조명 받아 이쁘고 장엄한 모습으로 빛나고 있어 입장하면서부터 감탄을 자아냈다.
변덕스런 요즘 날씨 답지 않게 음력 3월 만월에 가까운 달이 선명해서 좋았던 밤..
고개들어 노을 빛 머금은 봄날 궁궐 저녁 하늘 쳐다 보니 잉크풀어 놓은 것 처럼 싯푸르다.
인왕산이 소슬한 병풍처럼 근정전을 굽어보는 거 100분동안 쳐다보는데 환상적이란 말은 이럴때 쓰는 것이리라.
근정전..
여말 선초 조상님들 풍수지리와 성리학 교묘하게 섞어가며 만들었던 법궁 정전의 건축미가 그대로 가슴에 들어와 예술로 돋을 새김되었다.
속절없이 가려하는 봄밤의 궁궐은 야상곡이라도 들릴 거 같은데, 서서히 싸늘해지기 시작해 옷깃을 싸매면서 세종의 고뇌에 공감한 채 몰입할 수 있었던 건 한국 뮤지컬계 정상급 배우들의 열연때문이리라.
전통복식 입은 배우들이 노래하고 춤추며 절규하는 모습이야 극장무대에서 많이 봤지만, 80여명 배우들이 라이브로 600년 전 그 모습을 실제 그대로 재현하는 것 같아 역사의 무대로 순간이동 하는 듯 한 숨막히는 시간 보낼 수 있었다.
조선 건국기의 피바람을 배경으로 15세기 세종조의 태평성대, 임진왜란때 불타버린 후 흥선대원군이 재건하기까지, 고종과 명성황후의 영욕이 고스란한 경복궁은 많은 것을 말해준다.
일제 강점기의 경복궁은 말해 무엇하랴..
4. 인간 세종의 고뇌
세종28년 1446년 훈민정음 반포 시 왕은 눈을 잃고 백성은 눈을 뜨게 되었다.
고교시절 고문시간에 원문으로로 배운 훈민정음 해례본 세종의 서문은 애민정신 뚝뚝 흘러 아름다운데, 뮤지컬은 이 부분을 중점 부각시키는데 성공했다.
세종은 너무 책을 많이 읽고 스트레스 심해 당뇨병으로 고생해서 합병증 온 거 같고, 33세에 흰머리가 나서 한탄했다는 기록이 실록에 나온다.
세종 21년 6월 21일의 기록을 보면 세종 스스로 자신의 증상을 비교적 상세히 기록해놓았다.
‘왼쪽 눈이 아파 안막을 가리는데 이르고, 오른쪽 눈도 어두워서 한 걸음 사이에서도 사람이 있는 것만 알겠고 정확히 누구인지를 모르겠다.’ 라고 얘기하면서, 세자에게 강무를 위임하겠다는 뜻을 밝힌다.
그러나 세종은 소헌왕비 슬하에 8남 2녀, 그리고 후궁소생까지 합하면 22명의 자녀를 두었고 손이 귀한 조선 왕 27명 중 아들을 가장 많이 보았다.
5. 세종 1446 무대 스케치
이번 근정전 공연은 뮤지컬 대본의 극적효과를 극대화하기위해 태종, 세종, 소헌왕후, 양녕, 장영실, 그리고 가상인물 고려 충신까지 설정해서 스토리 구성을 하느라 무리했으나, 공감대 형성할 수 있었던 대사들로 살아날 수 있었다.
손대지 않은 부문이 없을 정도의세종 치세 수많은 업적을 뮤지컬에서 표현하기 쉽지 않으니, 소리꾼 이봉근을 투입시켜 하얀 도포입고 핀 조명 받으며 멋지게 해설해서 주목받았다.
관객도 그렇겠지만 고대 나온 소리꾼 이봉근은 이 무대를 잊지 못할 것이다.
원공연 무대엔 50명 배우들이 참여했으나 이번 공연엔 80여명 배우들이 고액션 가미한 춤사위와 어울려 장관이었다.
근정전 월대 위 용상에 선 태종과 세종의 위엄 속 비탄의 아리아가 시종 긴장감을 주었다.
호방한 양녕을 학문 좋아하는 충녕과 대비시키기 위해 양녕의 여자들을 배치한 장면이 노골적이라 흥미로웠다.
위인 반열 세종대왕의 업적만 꼽기에 가득해서 인간 세종의 고뇌는 놓치기 쉬운데 세종의 애환에 집중해서 친근감 들었고, 뮤지컬 무대가 근정전이라서 실화처럼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던 점이 의외의 감동이었다.
근정전앞에서 화려한 궁중무용 기대했는데 못봐서 서운했던 밤...
음악에 진심이었던 세종대의 아악과 고졸한 퍼포먼스 못 본 아쉬움은 욕심으로 남긴 채 발길 돌려야 했다.
모처럼의 밤외출이 후회스럽지 않았던 5월 초입, 곧 입하의 절기 다가오지만 모란 질 때까지는 아직 봄이다.
( 글:유재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