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들은 옛 이스라엘의 회복을 기원하며 옛 율법에 집착했지만, 예수님은 율법의 참 정신을 일깨우는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질서를 보여주십니다.
13,14절 유대 사회는 세리를 탐욕스러운 죄인이자 로마에 부역하는 민족반역자로 여겼지만, 예수님에게는 은혜와 긍휼이 필요한 죄인일 뿐이고 그 죄인을 부르는 것이 그분의 사명이었습니다. 이 차별 없는 은혜 덕분에 내가 부름 받았으니 나도 차별 없이 이 사랑을 전해야 합니다.
15-17절 사회적, 종교적으로 버림받은 죄인들과 식사하십니다. 유대 사회에서 밥을 같이 먹는다는 것은 가장 긴밀한 사회적 접촉이자 종교적 수용이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이 교제의 범위에 부정한 죄인을 두어서는 안 된다고 비난하자, 예수님은 자신이 죄 라는 영적 질병을 치료하는 의사임을 밝히십니다. 자기 병을 모르고 건강하다고 자신하며 다른 환자들을 손가락질하는 자칭 의인들은 예수님의 대속적 섬김(10:45)을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18-22절 금식은 하나님 나라가 속히 이루어지지 않음을 애통해하는 의식이었지만, 예수님의 오심과 함께 하나님 나라가 세상에 침투해 들어오고 있으므로 지금은 금식이 아닌 잔치의 때라고 하십니다. 금식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후, 십자가를 뒤따른다는 의미로 재개될 것입니다. 헌 옷에 팽팽한 새 천을 덧대면 옷이 상하고, 낡은 가죽 부대에 새 포도주를 넣으면 발효가 일어나 터져버리는 것처럼, 유대교의 낡은 체제로는 생동하는 하나님 나라를 담을 수 없습니다.
23-28절 바리시인들이 안식일에 이삭을 잘라 먹은 제자들을 비난하자, 예수님은 다윗이 무리와 함께 종교 규례를 깨뜨리고 배를 채웠던 일을 상기시키십니다 (왕상 21:1-6). 하나님이 선택하신 자였기에, 하나님이 계획하신 왕국을 수립하는 과정 중에 있었기에 정당한 일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다윗보다 크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나라를 수립하기 위해 제자들과 순회하는 중에 안식일 규례를 넘어서는 것도 정당합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은 안식일의 참 의미를 성취하러 오신 안식일의 주인이시므로, 금기로만 가득한 안식일의 낡은 부대로는 그분이 선사하실 자유의 기쁨을 담을 수 없을 것입니다. (매일성경, 2024.01/02, p.138-139, 새 시대를 여신 예수님, 마가복음 2:13-28에서 인용).
① 유대인들은 옛 이스라엘의 회복을 기원하며 옛 율법에 집착했지만, 예수님은 율법의 참 정신을 일깨우는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질서를 보여주십니다. 유대 사회는 세리를 탐욕스러운 죄인이자 로마에 부역하는 민족반역자로 여겼지만, 예수님에게는 은혜와 긍휼이 필요한 죄인일 뿐이고 그 죄인을 부르는 것이 그분의 사명이었습니다. 이 차별 없는 은혜 덕분에 내가 부름 받았으니 나도 차별 없이 이 사랑을 전해야 합니다.
② 사회적, 종교적으로 버림받은 죄인들과 식사하십니다. 유대 사회에서 밥을 같이 먹는다는 것은 가장 긴밀한 사회적 접촉이자 종교적 수용이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이 교제의 범위에 부정한 죄인을 두어서는 안 된다고 비난하자, 예수님은 자신이 죄 라는 영적 질병을 치료하는 의사임을 밝히십니다. 자기 병을 모르고 건강하다고 자신하며 다른 환자들을 손가락질하는 자칭 의인들은 예수님의 대속적 섬김(10:45)을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③ 금식은 하나님 나라가 속히 이루어지지 않음을 애통해하는 의식이었지만, 예수님의 오심과 함께 하나님 나라가 세상에 침투해 들어오고 있으므로 지금은 금식이 아닌 잔치의 때라고 하십니다. 금식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후, 십자가를 뒤따른다는 의미로 재개될 것입니다. 헌 옷에 팽팽한 새 천을 덧대면 옷이 상하고, 낡은 가죽 부대에 새 포도주를 넣으면 발효가 일어나 터져버리는 것처럼, 유대교의 낡은 체제로는 생동하는 하나님 나라를 담을 수 없습니다.
④ 바리시인들이 안식일에 이삭을 잘라 먹은 제자들을 비난하자, 예수님은 다윗이 무리와 함께 종교 규례를 깨뜨리고 배를 채웠던 일을 상기시키십니다 (왕상 21:1-6). 하나님이 선택하신 자였기에, 하나님이 계획하신 왕국을 수립하는 과정 중에 있었기에 정당한 일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다윗보다 크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나라를 수립하기 위해 제자들과 순회하는 중에 안식일 규례를 넘어서는 것도 정당합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은 안식일의 참 의미를 성취하러 오신 안식일의 주인이시므로, 금기로만 가득한 안식일의 낡은 부대로는 그분이 선사하실 자유의 기쁨을 담을 수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