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비주얼 동시는 어떻게 쓰이는가
-윤동재
나는 비주얼 동시를 이렇게 이해하고 있다. 문자와 행과 연의 공간적 배열, 글자의 크기와 방향과 형태, 여백, 기호, 이미지 같은 시각적 요소를 활용하여 문자언어로 표현된 동시의 의미를 강화하거나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냄으로써 작품의 의미 영역을 넓히는 동시로 말이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해 둘 것은 시각적 요소가 단순한 장식에 그친다면 비주얼 동시라고 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구글 검색을 통해 외국의 비주얼 동시 사례들을 찾아보니 아주 낯선 것이 아니었다. 현대시나 외국 시에서도 비슷한 작품들을 더러 본 적이 있었다. 다만 직접 써 본 적은 없었다.
오래도록 동시를 써 왔지만 좋은 동시 한 편을 써 보고 싶다는 바람은 여전하다. 새로운 방법이라고 해서 마다할 까닭이 없다. 직접 써 보면 그동안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드러날 것이고, 그 과정에서 배울 것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먼저 문자언어만으로 습작 한 편을 써 보았다.
수박
동민이네 수박밭
둘이 함께 갔더니
내 머리보다 큰 수박이
주렁주렁
동민이 말로는
두드려 봐도
통통 소리가 울리지 않아
따 줄 수 없다는데
내 마음은
동민이도 모르게
나도 모르게
수박을 따 먹었나?
동민이와 수박밭을 나오는데
아랫배가 무거워
뒤뚱뒤뚱
거울에 내 얼굴이 비치면
수박처럼 빨가면
어쩌지? 어쩌지?
이것을 비주얼 동시로 만들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먼저 1연의 글자들을 수박 모양 안에 넣어 보기로 했다. 글자마다 수박 속에 들어가 있으니 수박 여러 통이 생겨 수박밭처럼 보일 것이다. 2연에서는 두드려도 소리가 제대로 울리지 않으니 입구가 막힌 나팔 모양으로 글자를 배치한다. 3연에서는 남에게도, 자신에게도 잘 보이지 않는 마음을 검은 바탕에 흰 글자로 나타낸다. 마지막 연에서는 거울 속에 글자를 넣고, 얼굴에 해당하는 글자는 붉은색으로, 바탕은 수박빛으로 해 본다.
여기까지 적어 놓고 보니 내가 이미 무엇을 결정했는지가 보였다. 1연은 수박밭, 2연은 막힌 나팔, 3연은 검은 마음, 마지막 연은 거울과 붉어진 얼굴. 무엇을 어떤 시각적 형태로 보여 줄 것인가는 내가 모두 정한 셈이다.
이제 디자이너에게 도움을 받는다고 해 보자. 내가 정한 시각적 발상을 바탕으로 디자이너가 글꼴과 글자 크기를 고르고, 자간과 행간을 조절하고, 색과 형태를 다듬어 지면 위에 구현한다. 그렇다고 《수박》의 시각적 발상까지 디자이너의 것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내가 생각한 것을 전문적인 솜씨로 구현해 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디자이너가 구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시각적 발상까지 한다면 어떨까. 내가 “1연은 수박밭처럼 보이게 해 주세요.”라고 했는데 디자이너가 “글자를 수박 안에 넣지 말고 문자 자체를 둥글게 배치해서 수박 모양을 만들면 어떨까요?”라고 제안하고, 내가 그것을 받아들였다고 하자. 문자언어로 된 동시는 내가 썼지만 작품을 더 재미있게 만든 시각적 발상은 디자이너에게서 나온 셈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내가 문자언어로 쓴 《수박》만 건네며 “이것을 비주얼 동시로 만들어 주세요.”라고 하고, 수박밭이며 막힌 나팔이며 검은 마음이며 거울 속 붉어진 얼굴이라는 발상까지 모두 디자이너가 했다고 하자.
이쯤 되면 묻게 된다. 문자언어로 된 《수박》은 내가 쓴 것이 분명한데, 완성된 비주얼 동시 《수박》도 전적으로 내가 썼다고 할 수 있을까. 직접 해 보지 않았다면 이런 생각을 해 보았을까. 그래서 한 편의 비주얼 동시가 독자를 만나기까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내 경우를 놓고 정리해 보았다.
먼저 문자언어로 동시를 쓴다. 낱말과 행과 연, 화자와 사건, 리듬과 이미지를 만든다. 그다음에는 그것을 어떻게 보이게 할 것인지 생각한다. 글자를 크게 할 것인지 작게 할 것인지, 붙일 것인지 떨어뜨릴 것인지, 어느 곳을 비워 둘 것인지 등을 생각한다. 여기까지는 나도 할 수 있다.
그다음부터는 내게 어려워진다. 어떤 글꼴을 쓰고, 글자 크기와 자간·행간을 어떻게 할지, 어떤 색을 쓸지 결정하여 지면 위에 제대로 구현하는 일이다. 여기에는 디자이너의 도움이 필요하다. 책으로 낼 때는 작품을 한 쪽에 넣을 것인지 두 쪽에 펼칠 것인지, 어떤 크기의 책에 어떻게 앉힐 것인지 결정하는 편집자의 손도 필요하다.
물론 이 모든 일을 내가 직접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지 못하다. 문자언어로 동시를 쓰고 시각적으로 어떻게 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까지는 할 수 있지만, 그것을 실제 지면 위에 제대로 구현하는 능력은 없다.
그런데 문득 더 근본적인 문제가 보였다. 《수박》을 문자언어로 쓰고, 디자인하고 편집하는 일까지 내가 직접 했다고 해서 비주얼 동시를 제대로 쓴 것일까. 수박밭이라고 쓴 것을 수박밭처럼 보여 주고, 소리가 울리지 않는다고 한 것을 막힌 나팔로 보여 주고, 보이지 않는 마음을 검은색으로 보여 주고, 빨개진 얼굴을 붉은 글자로 보여 주는 것.
처음에는 이 정도면 비주얼 동시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이는 문자언어에서 이미 말한 것 아닌가. 디자인과 편집을 통해 새로운 의미가 보태졌는가. 아니다. 수박이라고 썼는데 수박을 그려 놓는다고 새로운 의미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얼굴이 빨개진다고 했는데 글자를 붉게 칠한다고 뜻이 더 깊어지는 것도 아니다.
비주얼 동시라면 시각적 요소를 보탬으로써 의미가 그만큼, 꼭 그만큼 늘어나고 깊어져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지 않다면 굳이 비주얼로 동시를 쓸 필요가 있는가. 문자언어로 쓴 동시만으로 되지 않는가.
나는 문자언어로 동시 한 편을 써 놓고 그 위에 시각적 요소만 보태면 비주얼 동시가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직접 해 보니 그게 아니었다. 그렇게 하면 자칫 문자언어가 이미 말한 것을 그림이나 색으로 다시 보여 주고 풀이하는 데 그치기 쉽다.
이쯤 되니 비주얼 동시 한 편 쓰는 일이 내게는 만만치 않다. 처음에는 외국의 비주얼 동시를 보고 ‘나도 한번 해 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해 보니 디자인 능력의 문제가 생겼고, 디자이너와 어디까지 함께 작품을 만드는가 하는 문제도 생겼다. 편집의 문제도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무엇보다 시각적 요소가 새로운 의미를 만드는 것인지, 이미 있는 의미를 되풀이하는 것인지도 따져야 했다.
비주얼 동시가 동시 쓰기의 새로운 방법이라는 데는 생각이 달라지지 않았다. 비주얼 동시를 비판할 생각도 없다. 다만 지금의 나에게는 그것이 그림의 떡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섭섭해할 일도 아니다. 거름 지고 장에 따라갈 필요는 없다. 다른 사람이 잘한다고 나까지 따라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걸 찾아서 잘하면 된다.
이번 일이 헛된 것은 아니다. 비주얼 동시 한 편을 제대로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직접 써 보려고 했기 때문에 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비주얼 동시는 글자를 그림처럼 꾸미는 동시가 아니라는 것. 시각적 요소가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것. 때로는 글자의 크기와 위치와 방향과 여백도 낱말 못지않게 작품 안에서 중요한 기능을 한다는 것. 그리고 그런 경우라면 시인 혼자 모든 걸 다 맡아 할 수 없는 일도 있다는 것.
좋은 동시 한 편 써 보고 싶은 평소의 바람대로 비주얼 동시 쓰기라는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섰다가, 결국 다시 가장 오래된 동시 쓰기의 문법으로 돌아온 것 같다. 그런데 돌아와 보니 전과 똑같은 자리는 아니다. 낱말 하나가 왜 거기 있어야 하는지를 묻듯이, 이제는 글자의 크기와 위치와 방향과 여백도 글자로 만든 도형도 왜 거기 있어야 하는지를 물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비주얼 동시 한 편은 끝내 쓰지 못했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써 보려고 하지 않았다면 이런 생각을 결코 해 보지 못했을 것이다.
#비주얼 동시 #디자이너 #편집자
Julia Gomez, 〈Fox〉 (2016) — 구체시(Concrete Poetry)·시각시(Visual Poet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