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2장
23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그 날 예수께 와서 물어 이르되
24 선생님이여 모세가 일렀으되 사람이 만일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에게 장가 들어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25 우리 중에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장가 들었다가 죽어 상속자가 없으므로 그 아내를 그 동생에게 물려 주고
26 그 둘째와 셋째로 일곱째까지 그렇게 하다가
27 최후에 그 여자도 죽었나이다
28 그런즉 그들이 다 그를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일곱 중의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30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31 죽은 자의 부활을 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
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33 무리가 듣고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더라
설교
오늘 본문은 예수님과 사두개인들 사이에 있었던 부활에 대한 논쟁을 다룬 말씀입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교에는 크게 3대 종파가 있었습니다. 바리새파, 사두개파, 에세네파였습니다. 성도님들께는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이 더 친숙하시죠. 바리새파와 사두개파의 차이점 중 하나는, 부활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였습니다. 바리새파는 부활을 믿는데, 사두개파는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성경에 나오는데 왜 안 믿는가하면, 사두개인들은 모세오경만을 권위 있는 성경으로 받아들였는데, 모세오경에는 부활에 대한 언급이 명확하게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다니엘 선지자나 이사야 선지자가 부활을 언급하는 것은, 후세대가 붙여 넣은 것이라고 이해했습니다.
그런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가서 묻는 장면으로 본문이 시작됩니다. 무엇을 묻겠습니까? 부활을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잘못됐음을 지적하려 한 것이죠. 그들은 가서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모세가 말하기를, 사람이 자식이 없이 죽으면 동생이 그 아내에게 장가 들어 형을 위해 상속자를 낳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만약, 일곱 형제가 있는데 맏이가 장가 들었다가 죽어서 상속자가 없으면, 동생이 그 형수와 결혼할 테고, 그런데 만약 둘째도 상속자를 낳지 못하고 죽으면, 셋째가 또 형수와 결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일곱째까지 아무도 자녀를 못 낳고 다 죽어버린 후에, 형수까지 죽어버렸다면, 부활 때에 그 여인은 일곱 형제 중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이 제도는 수혼법이라는 제도인데, 신명기 25장에 기록되어 있는 법입니다. 상속자를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형이 자녀를 낳지 못하고 죽으면 형을 대신해서 동생이 형수에게 자녀를 낳아 줘야 하는 법이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단순히 이 제도가 잘못 됐다고 말하는 게 아니고, 부활이라는 게 불가능한 일이지 않느냐고 지적했던 것입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사두개인들에게 대답하십니다. 29절입니다.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사두개인들은 자기들이 성경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생각했지만, 예수님은 너희가 성경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한다고 지적하십니다. 성경에서 실제로 가르치는 부활을 왜 믿지 않고, 죽은 자를 살리실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왜 이해하지 못하느냐고 말씀하시는 거죠.
그들은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것만 믿으려 했습니다. 자기들의 이해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능력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죠. 그래서 그들은 부활하더라도, 사람들 간의 관계가 지금이랑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예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고린도전서 15장, 부활장을 보시면 알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들을 부활시키실 뿐만 아니라, 부활 이후에 있을 삶은 지금이랑 차이점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천사들처럼 된다고 했는데, 천사들은 결혼도 하지 않고, 자녀를 안 낳지 않습니까? 그처럼 된다는 거죠. 대신에 결혼을 하지는 않겠지만, 그 때에는 주님 안에서 참된 화목과 깊은 관계를 서로서로 다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31절입니다. “죽은 자의 부활을 논할진대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지 않느냐?” 하시면서, 출애굽기 3장 6절을 말씀하십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무슨 말일까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 말씀을 들려주실 때는 이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죽은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을 때 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었다, 이삭의 하나님이었다, 야곱의 하나님이었다고 말씀하시지 않고,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다, 이삭의 하나님이다, 야곱의 하나님이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육신은 죽었을지라도, 그들과 맺은 약속은 영원하고, 약속이 영원하다는 건 약속의 당사자들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영원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육신의 부활을 기다리며 지금도 어딘가에 살아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말을 듣고 무리는 크게 놀랍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지금까지 유대 지도자들이 줬던 가르침과는 차원이 다르고, 깊이가 달랐던 것이죠.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말씀하는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부활시키실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했습니다. 이런 모습은 오늘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서도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 믿으려 합니다. 눈에 보이고,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것만 믿으려 합니다.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것만 믿으면서, 성경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우리를 비웃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릅니다. 성경에 기록된 것이 진리라는 것을 우리는 믿지 않습니까?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이 성경을 믿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가장 먼저는, 성경과 하나님의 능력을 깨닫게 해 주신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지혜를 구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믿을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를 부활시켜 주실 것입니다. 부활이 없다고 한다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일도 없을 것이고, 사도들이 전한 부활의 복음도 다 거짓이 되고, 우리는 바울 사도의 말처럼 아주 불쌍한 사람들이 되어 버립니다. 부활을 증언하고 다닌 사도들은 다 부활이 있었다고 지어낸 이야기가 되어 버리고, 부활의 능력으로, 우리 안에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시고, 믿음을 일으키신 하나님의 능력도 거짓이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헛것을 믿고 지낸 거죠. 하지만 부활은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무 것도 없던 것에서 세상을 창조하신 것처럼, 죽음에서 그리스도를 부활시키셨고, 꼭 그분처럼 우리도 언젠가 부활시키실 것입니다.
오늘 하루, 겸손히, 하나님의 말씀과 능력을 믿게 해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계속해서 우리의 마음이 성경의 가르침과 하나님의 능력을 알고, 믿게 해 달라고 구하는 저와 성도님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