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맛있는 밥은 넘이 해준 밥 / 정희연
처치 곤란 천덕꾸러기 냉장고의 신분 상승 프로젝트, 대한민국 최고의 셰프(음식점 따위에서 조리를 맡은 곳의 우두머리)가 당신의 냉장고를 탈탈 털어드립니다. <냉장고를 부탁해>가 2014년에 방영되었다. 김성주와 정형돈이 사회를 유명 셰프 2인과 낮설지만 내공이 충만한 세프 2인, 그리고 야매 세프 2인이 모여, 유명인의 냉장고를 스튜디오로 옮겨와 그 안에서 재료들을 골라 15분 만에 최고의 음식을 만들어내는 프로그램이다.
그중 김풍이 눈에 띈다. 요리 전문가도 아닌데 함께 경쟁한다. 그렇다고 현저하게 실력이 떨어지거나 뒤처지지도 않는다. 독특한 매력을 풍기며 생각지도 못한 음식을 선보인다. 교과서에도 없는 것을 만들어내고, 법칙이나 순서도 무시하는 경향이 많다. ‘시금치 나무에서 애벌레가’는 충격을 금할 수 없을 정도로 모양새를 보면 헛똑똑이다. 하지만 그 맛은 보는 사람을 당황하게 한다.
식사는 매일 반복하는 일상 행위 중 하나다. 대여섯 시간 열심히 일하고 나면 밥을 달라고 배와 머리에서 신호를 보낸다. 에너지가 부족하니 보충해 주라는 것이다. 옛날에는 살기 위해서 먹었지만, 이제는 생활이 나아져 먹기 위해 사는 삶으로도 바뀌어 가고 있다. 하루 세끼 날마다 먹어야 하고, 먹는 일로 고민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네 명이 식사해도 모두 다르게 메뉴를 시키곤 한다.
나는 술을 좋아한다. 그리고 먹는 것도 좋아한다. 먹고 마시며 이야기하는 분위기는 더 좋다. 누군가에게 초대받는 일은 가슴 설레는 일이다. 그것은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싶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좋은 사람에게 음식을 만들어 따뜻한 술과 함께 시간을 같이한다는 건 무엇보다도 즐거운 일이다.
나는 음식을 즐기는 편이다. 냉장고 문을 열어 주재료를 선택하고 뚝딱뚝딱 짧은 시간에 만들어 낼 줄 안다.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결혼하기 전까지 자취했으며, 군 복무 시절 해양 결찰 경비정을 탔다. 근무 특성상 후임이 들어오기 전까지 막내가 취사를 담당했다. 10명의 식사를 만들어내는 일은 6개월 동안 이어졌다, 그때 칼을 다루는 기술을 익혔고 요리를 배웠지만, 로봇처럼 노트에 적힌 그대도 답습했을 뿐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지금은 다르다. 즐겁다. 김장할 때도 채소 손질은 내가 한다. 우리 집에는 강판(무, 생강, 과일 따위를 갈아 즙을 내거나 채를 만들기 위하여 사용하는 표면이 거칠게 생긴 도구)이 없다. 아내는 모두 나를 시킨다.
새우찜은 술안주로 최고다. 싱싱한 새우만 있으면 어느 때나 가능하다. 새우 그 자체만으로 맛이 있으므로, 음식으로 만들어내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재료는 콩나물, 양파, 고추, 어묵, 간장, 고춧가루, 고추장, 맛술, 다진 마늘, 간장, 설탕, 물, 참기름, 후춧가루, 전분을 준비하면 된다. 새우 손질은 머리에 있는 뿔과 입, 다리를 가위로 자르고 껍질과 똥을 제거한다. 처음에는 손질하는데 시간이 많이 가지만 익숙해지면 빠르게 할 수 있다. 콩나물의 머리는 떼어내지 않아도 되는데, 머리와 몸통이 익는 시간이 다르므로 머리가 익게 되면 다른 부위가 너무 익어 탱글탱글한 맛을 느낄 수 없어 제거하는 것이 좋다. 다음은 양념장을 준비한다. 고춧가루, 고추장, 맛술, 다진 마늘, 간장, 설탕을 섞어 만든다. 그리고 전분과 물을 일대일 비율로 전분 물을 준비한다. 다음은 콩나물, 새우, 어묵, 양파, 대파를 넣고 볶는다. 콩나물과 새우가 반쯤 넘어 익으면 양념장을 넣는다. 콩나물과 새우는 너무 익으면 물러지고 단단해져 식감이 떨어지고 질겨진다. 모두 익을 때쯤 되면 전분 물로 농도를 맞추어 한 번 더 끓이면 된다. 이제 불을 끄고 참기를 몇 방울과 함께 저어주면 된다. 넓은 그릇에 담아내고 그 위에 쪽파 송송, 참깨를 뿌려주면 끝이다.
어린 시절 멀리서 손님이 찾아오면 바빠지기 시작했다. 방을 깨끗이 청소하는 일부터 시작되었다. 잡동사니는 모두 치우고, 가장 좋은 침구를 준비했다. 도착 며칠 전부터 불을 때 훈기도 채웠다. 고기와 생선도 최고의 상품으로 준비했다. 한때는 집에 날마다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식사 시간에 길손이 찾아오면 그냥 보내는 일도 없었다. 따뜻한 밥을 한가득 주었다. 손님 맞을 준비를 몇 년째 하고 있다. 언제 올지 모르지만 ‘대 방어 한 마리가 준비되는 날’ 새우찜도 같이 할 것이다.
‘냉장고를 부탁해’가 막을 내렸다. 음식을 만드는 것을 배우고, 만드는 과정을 재미로 엮어가는 지혜를 배웠고, 일반 재료로 만들어내는 창작물과 이야기를 담아 추억을 만들어 주는 모습을 보았다. 아내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은 넘이 해준 밥”이라고 한다. 주부에게 끼니에 대한 부담이 상당한가 보다. 일요일 아침이다. 아내는 피곤했는지 일어나는 시간도 휴일인지 많이 늦다. 안방 문이 열리고 거실로 나오는 소리가 들린다. “잘 잤는가? 쪄 그 앞에 가서 설렁탕 한 그릇 먹고 하루를 시작할까? 넘이 해준 밥이나 먹으로 가세!
첫댓글 선생님은 재주가 많습니다. 요리 잘하는 남자 부럽네요. 나도 요리하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지난 주말에 오므라이스 만들어서 아내에 주었더니 좋아라고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아내와 분담해서 합니다. 화룡점정, 마지막 붓은 아내에게 맡기는 편입니다.
요리하는 남자셨군요. 아침부터 글 읽고 군침이 돕니다.
어림으로 하기때문에 만들때 마다 맛이 조금씩 다릅니다.
여자들이 여행가면.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넘이 해준 밥을 먹을 수 있어서랍니다. 정희연 선생님 음식 맛 보러 한번 가고 싶네요.
음식 이야기는 잘 하지 않는데 평생 해오신 분 앞에서 송구합니다.
오, 요리도 잘 하시군요!
흉내 내는 정도 입니다.
정이 많으신 정 선생님이시네요. "잘 잤는가? 내가 새우찜 해놨네." 라고 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아요. 하하하.
하하하하
그랬으면 부인께서 아마 정선생님을 업어드렸을 텐데요.
아침에는 있는 것을 먹어,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새우찜에 도전해 보고 싶게 만드는 글입니다.
아침부터 '넘이 해 준 밥을 먹으러' 가시다니, 대단합니다.
멋져요!
휴일 아침 넘에 밥을 먹으면 그날은 엄청 잘 굴러 갑니다. 좋은 이야기도 많이 나오구요.
요리책을 보는 줄 알았어요.
새우찜 한 번 해봐야겠어요. 그렇잖아도 어제, 마트에서 대하를 바라만 보다가 그냥 왔는데. 하하
요리의 고수 앞에서 너스래좀 떨었습니다. 부끄럽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요리도 한다고요? 재주가 많아요. 나도 관심이 많지만 맛있게 하는 건 어려워요.
교수님의 말처럼 음식을 할 줄 알면 독립적이 되고 또 그만큼 자유로울 수 있어 좋은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