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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동서문학》2018년 가을호(27호) 시조 계간평
일상의 즐거움, 가벼움의 미학
정용국
어렸을 적 새벽에 설핏 잠에서 깨었을 때 어머니는 호롱불 아래서 바느질을 하시곤 했는데 식구들의 옷과 양말 등속을 꿰매시며 늘 무엇인지 중얼거리곤 하셨다. 그 때는 그것이 무슨 말인지 잘 몰랐는데 지금 더듬어 보면 ‘인간 백 년 다 살아도 병든 날과 잠든 날과 걱정근심 다 제하면 단 사십을 못 사나니’라는 대목이 있는 「회심곡」의 일부였다. 전편의 흐름이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고통과 반성 그리고 부처님의 가피를 설파하고 있는 어머니의 회심곡을 듣다가 저승에 가는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서 어쩔 줄 몰라 했던 기억이 아직도 아슴푸레하다. 당시에는 녹음기나 음향 재생 장치도 없었고 오로지 외워 부르는 것이었으니 대부분의 기억을 스마트폰에 담아 두고 사는 요즘 사람들보다 어머니 세대의 기억력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병든 날과 잠든 날과 걱정근심’에 짓눌려 지내는 시간은 사실 즐겁고 희망에 벅찬 시간보다 훨씬 길 것이니 인생의 시간은 고난의 시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시인이 시마에 휘둘리며 고통을 감내하고 창작에 몰두하는 시간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분명 고통의 시간이지만 이것은 자발적인 것임과 동시에 일단의 쾌락을 동반하는 것이니 굳이 ‘걱정근심’으로 산입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름호에 게재된 작품을 읽다가 ‘재미’를 생각한 것은 시조 작품이 너무 ‘의미심장(意味深長)’한 것들이 많다는 것에서 출발하였다. 이종문 시인은 자신의 시집 『봄날도 환한 봄날』의 서문에서 ‘시는 재미있어야 한다’라는 대목을 강조했는데 새삼 공감이 가는 말이었다. 물론 이종문 시인이 말하는 ‘재미’의 범위는 상당히 광범위 하겠지만 아무튼 우리의 삶과 시조 작품은 지나치게 심각한 편이다. 한국인들이 정치와 교육 등에 너무 깊숙하게 관여하고 골몰하고 있는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물론 우리가 처한 상황이 사람을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일상을 가볍고 단순한 마음으로 살아 보는 것도 좋은 방편이 아닐까. 호주에 여행을 갔을 때 그곳 사람들이 자기 나라 수상 이름도 모르고 지낼 정도로 정치에 무관심하고 의무교육을 받는 동안에도 정말 기본적인 것 외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태도가 신선하게 다가왔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오후 4시면 가게 문을 닫고 자신의 일상과 긴 휴가를 즐기는데 비해 24시간도 부족해 주일 내내 쉬지도 않고 가게 문을 열며 아이들에게 한국에서 직송되는 학습지를 보게 하는 학부모들의 행태에 내심 큰 충격을 받았다. 지난 호에 말한 대로 ‘한반도에서 살아남기’가 쉬운 일은 아닐지라도 이제는 여유와 향기가 깃든 삶을 깊이 돌아 볼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번 호는 삶의 ‘작은 재미’를 살뜰하게 엮어낸 작품들을 돌아보고자 한다. 작지만 소소한 재미 속에서 피어나는 향기야말로 삶을 윤택하게 하고 나아가 인생의 담대한 모습까지 품을 수 있는 단초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다.
영상 속 효리와 그의 남편 상순은 컵과 커피포트로 서로 얼굴을 가리고
다정히 장난을 친다 일상의 일상이다
어느덧 중혼일기 쓰는 중이라며 웃음보 터트리고 뒤돌아서던 효리
어깨를 기대고 앉아 파도소리 듣는다 - 이정환 「중혼일기」 전문
텔레비전에서 ‘효리네 민박’이라는 프로그램을 예고했을 때만 해도 필자는 ‘이젠 할 것이 없어서 별걸 다 방영하는구나’라는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가수 이효리는 어느 새 불혹의 중반이었고 깊이 있는 사고와 자신의 신념을 확실하게 가진 그런 사람이었다. 사회 이슈에 자신의 태도가 분명할 뿐만 아니라 여러 관심 분야에 공헌도 서슴지 않는 일명 ‘개념가수’였던 것이다. 그녀의 삶은 정신적 경제적으로 윤택했고 내방객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도 성숙하고 따듯했다. 그래서 누가 ‘시인이 무슨 그런 허접한 프로를 보느냐’라는 핀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효리네 민박’을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다. 작품에서 “중혼”이라 함은 아마도 사십 대의 중년(中年)에 해당하는 시기를 말하고 있는 듯하다. 콩깍지가 씌웠던 신혼의 시절을 지나 아이가 둘 쯤 생기고 ‘사랑’이라는 개념이 육체보다는 정신에 기울어지는 그런 시기였을 것이다. 텔레비전에서는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효리 부부의 사생활을 공개했고 그녀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원하게 자신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줬다. 그런데도 영상 속의 효리는 티 나고 반짝이는 스타라기보다는 일반인에 더 가까운 모습이어서 오히려 그것이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시인도 그런 가수 효리의 사소한 일상에 관심을 갖는다. 요즘 연예인은 어느 분야의 공인보다도 관심의 중앙에 서있다. 작은 행동이나 그의 말이 커다란 반향을 불러오기도 해서 그들의 작은 언행은 아주 민감한 사회적 문제를 유발하기도 한다. 효리 부부가 어울리는 모습은 대화와 행동에서 잘 나타난다. 여느 부부 같으면 심각한 문제가 될 법한 언행을 정말 대담하게 주고 받는 둘의 모습에서 시청자들은 대리 만족을 느꼈을 것이다. 등단 40이 가까워지는 이정환 시인이 이런 사소한 소재에 관심을 둔 것도 그들의 경쾌한 일상에 느낀 바가 신선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인생 절정기를 누리는 부부의 “장난”이 시인은 내심 부러웠을지도 모른다. “일상의 일상”이라는 종장에서 그런 감정을 눈치 챌 수 있다. 그들이 쓰고 있는 “중혼일기”에는 도시의 어느 부부도 흉내 내기 어려운 가벼움 속에 숨겨진 비범함이 녹아 있다. “어깨를/ 기대고 앉아/ 파도소리 듣는” 그들의 순수함과 경쾌한 발상들은 어쩌면 예술가들의 자유로운 발상에서 출발하는 것이리라. 우리는 예술가 중에서 ‘연예인’을 폄하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그들이 매스컴의 최전방에 서 있어서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이 그대로 노출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요즘 세태에서는 연예인들이 대중들의 중요한 관심의 한복판에 놓여 있다는 반증이다. 효리 부부의 담담한 언행을 통해 이정환 시인이 보여준 ‘일상의 일상“은 참으로 경쾌하고도 부러운 삶의 명장면은 아니었을까.
스님 뵈러 가는 길 조팝나무 가지 끝에
새 울음이 매달렸다 종알종알 좁쌀 눈
봄 입김 따스하다고 분홍웃음 물고 있다
퐁 하고 떨어지는 고드름 끝 물방울이
떨어지다 맺힌 아픔을 딸꾹하고 멈추는데
풀잎에 총총 앉은 이슬, 눈빛 초롱 빛난다 - 박옥위 「우수절」 전문
봄이 오는 우수절에 스님을 찾아가는 발걸음이 정겹다.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나 가정에 특별한 어려움이 생겼을 때 절을 찾아가게 마련이다.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려는 기도를 하거나 망자의 제를 올리는 일도 모두 그런 차원의 일들이다. 그런데 시에서 읽히는 정황은 겨울 지나 스님의 안부가 궁금해져 부처님도 뵈올 겸 문안 인사 정도의 발걸음인 것 같다. “조팝나무 가지 끝에” 걸린 “새 울음”도 마음이 편안한 사람에게는 예쁘게 보이는 법이니 “종알종알 좁쌀 눈”일 것이고 “봄 입김”도 “분홍웃음”이다. 절에 큰 재물을 시주하거나 재물을 풀어 이웃을 구휼하는 것도 중하지만 그저 주위 사람들에게 환한 얼굴로 따듯한 말로 착한 마음으로 위무와 평안을 전하는 불가의 무재칠시(無財七施) 방편이 시편 속에 스며들어 있다. 곳곳에 놓인 작은 시어들이 별 것도 아닌 듯하지만 마음을 평안하고 경쾌한 곳으로 이끌고 가는 모습에서 ‘우수’에 맞는 명절 같은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사는 일은 누구에게 은덕을 입는 도정이라고 하니 오늘 시인은 꽃과 새와 이슬 등의 자연을 불러다가 따스한 개금불사(改金佛事)라도 하 듯 무한 보시를 독자에게 베풀고 있다. 현재가 즐겁지 않으면 인생 전 과정도 그러하리라는 어느 사회학자의 말이 떠오른다. 시 한 편의 즐거움으로 짧지만 행복의 시간을 늘려보는 것은 정녕 중요한 일이 아닌가.
고개를 이쪽으로, 살짝 웃어봐요
남는 건 사진뿐이니 신경 쓸 일이다
순간을 영원에 묶어 붙잡아 둘 일이다
빛바랜 사진 몇 장 들여다보는 오후는
햇살도 못 본 척 비스듬히 비껴가고
아득히, 가슴 아득히 떨어지는 흰 꽃잎 - 손영자 「사진을 찍다」 전문
스마트폰이 생기면서 사진이 귀해졌다. 필름으로 사진을 찍던 시절에는 그것을 반드시 현상 인화해서 사진첩에 보관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전화기 속의 사진은 날아가거나 없어지기가 일쑤여서 정작 오래 남는 것은 드물어지게 되었다. 대개 사진을 찍는 순간은 정답고 기쁜 자리가 많다. 가족이나 친구 그리고 회합에서 지인들과 마지막으로 사진을 찍게 된다. 줄을 서고 포즈를 취해보고 이리저리 대오도 갖추어야 해서 떠들썩한 법이다. 웃으라는 주문이나 동작들을 함께 해보다가 웃음보가 터지는 일이 다반사다. 더구나 여행지가 외국이거나 오랜 만에 만난 사람과의 촬영은 가슴도 설레고 그 기쁨은 두 배가 될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느끼는 즐거움은 거의 최고조로 행복한 순간이다. 첫 수에서는 이러한 과정이 단정하게 놓여 있고 둘 째 수에서는 “빛바랜 사진 몇 장 들여다보는” 장면이 이어진다. 지난 사진을 들여다보는 일은 찍을 때의 감정이 고스란히 되새겨져서 기쁘지만 ‘빛바랜 사진’에는 이미 세상에 없는 부모님이나 형제들이 들어 있어서 가슴을 아프게 한다. 예전에는 식구들이 빙 둘러 앉아 사진첩을 보며 즐거워 한 적이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혼자 스마트폰을 열어 보는 일은 오히려 씁쓸할 때가 있다. 그래서인지 “햇살도 못 본 척 비스듬히 비껴가고”있는 장면에서는 눈물을 찔끔 흘렸을 것이다. 사진을 찍고 다시 꺼내보는 일상은 많은 추억과 삶을 돌아보는 명상의 시간이다. 앞으로는 일 년에 몇 번이라도 묵은 사진첩을 꺼내 놓고 식구들 끼리 둘러 앉아 지난 아름다운 일들과 먼저 세상을 떠나간 어른들의 소중한 시간을 뒤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볼 일이다.
영천 가는 버스가 정류장을 출발하자 가방을 든 여인이 일어서서 절을 한다 여행에 소란을 피워 대단히 죄송하다고
흔들리는 손잡이를 움켜쥔 여인은 무릎에 좋다는 연고를 꺼내 보이는데 가녀린 왼쪽 손 약지 두 마디가 없다
가난한 친정에 재물을 숨겼다는 말에 도마에 손가락을 자르고 시집을 나간 터미널 검표원이던 옛 친구의 아내다
안고 나간 미숙아를 강물에 띄워 보내고 억척스레 재물을 모아 큰 건물주가 됐다는 여인의 부재한 손마디가 나의 눈을 찔렀다 - 김윤철 「여인」 전문
네 수의 시조 속에 인생 한 편이 녹아들어 있다. 독자들 대부분이 경북의 소도시 “영천”이라는 지명에서 누구나 자기 고향을 한 번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영천시가 되기 전에 그곳도 예전에는 그저 소읍이었을 것이다. 오일장이 서고 동리의 소소한 일들이 소문으로 돌아다니던 시절에 그곳에서는 익명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었다. 바람난 누구 아버지가 뒷산 소나무에 목을 맸고 서울 간 이장 아들이 데모하다가 감옥에 갔으며 임신한 순이가 서울로 줄행랑을 쳤다는 이야기들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아마도 시골 고향에는 비밀이 하나도 없는 듯했다. 하긴 끝이 없는 것이 동네 사람들의 삶이려니 소문이 끝날 턱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버스에서 약을 파는 여인의 “가녀린 왼쪽 손 약지 두 마디가 없다”는 사실이 이 작품의 단초가 되고 있다. 셋째 수에 그 아프디 아픈 연유가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그대로 놓여 있다. 경위야 어쨌든 “가난한 친정”이 탈이 되었다. 시집 온 딸은 어려운 친정에 노심초사 하는 것이 당연했고 부모님께 무엇이라도 조금 도움을 주고 싶었을 것이다. 사정이야 어떻든 당사자인 며느리는 자신의 결백과 손가락 두 마디를 바꿨고 집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필자의 고향에도 수없이 많았다. 수십 년 전 그 시절의 일상에도 지금과 다를 바 없는 장삼이사들의 일상이 들어 있다. 약장사 여인을 만난 것은 사소한 일이었지만 화자에게는 무겁고 아픈 과거로 되돌아오고 있다. 아무튼 자식까지 앞세워 보내며 절체절명의 시기를 딛고 “억척스레 재물을 모아 큰 건물주가 됐다는” 여인의 소문은 한결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주변의 일상을 들으며 내가 지나 온 상황은 정말 다행이었다고 위안을 삼는 것도 큰 깨달음이 되겠다.
염려하던 일이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바람도 불러들이고 햇살도 퍼 날랐는데
눈 한 번 제대로 못 뜨고 등을 돌린 춘란 꽃대
꽃 한 번 보자고 일 년을 쏟았는데
정성이 부족했나 욕심이 지나쳤나
사산을 눈치 챈 걸까 미역국이 끓고 있다 - 김종렬 「미역국이 끓고 있다」 전문
우리의 일상은 외국에 비해 조금 단순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것은 아직 우리 사회가 심한 경쟁과 마찰 속에서 활발한 취미 활동이나 문화생활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오죽하면 국가가 나서서 근로 시간을 단축하라는 법을 만들었을까를 생각하면 아직 선진국으로 가는 길목은 멀고도 험하다 하겠다. 난을 치는 취미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섬세하고 공력을 많이 쏟아야 하는 분야이다. 난의 종류에 따라서는 그 가격이 엄청날 뿐 아니라 난을 키우려면 온도와 습도는 물론이고 볕의 양과 바람 까지 적정하지 않으면 위 작품에서처럼 “수포로 돌아”기 쉽기 때문이다. 필자의 친구 중 한 사람이 난을 제법 전문으로 키우는데 아내와의 마찰도 만만치 않다고 들었다. 난 사랑이 지나쳐서 내자의 불만이 크기 때문이다. 시인도 정성을 다해 “바람도 불러들이고/ 햇살도 퍼 날랐는데” 꽃 보기가 허사가 된 모양이다. “꽃 한 번 보자고/ 일 년을 쏟았는데” 실망이 얼마나 컸을까. 사사로운 개인의 취미에 정성을 다하는 자세는 그 사람의 일상에서 묻어난다. 남이 보기에는 그까짓 것이 무어냐고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 할 수도 있지만 그의 삶에서 난은 소중한 가치이자 연인일 수도 있는 것이어서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된다. 누구나 그렇게 소중한 취미를 지니고 음미하는 것은 행복에 다다르는 길이 되니까 말이다. 그런데 시제가 참 재미있지 않은가. 난초의 꽃대가 피지 못한 것을 “정성이 부족했나/ 욕심이 지나쳤나” 해가며 자책하다가 그만 “사산을 눈치 챈 걸까/ 미역국이 끓고 있다”라는 재치를 발휘하며 지나치게 몰입한 자신의 태도를 돌아보는 듯한 마무리가 웃음을 자아내게 하고 있다.
사회의 변화에 따라 우리들의 일상도 급하게 변화하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개인이 오롯이 혼자 감당하고 살아야 할 일들도 많이 생겼고 이것은 또 하나의 새 과정일 것이다. 이제 백세 인생을 내다보며 정말 행복한 인생은 경쾌한 일상에서 피어난다는 말을 새겨들어야 할 일이다. 가볍고 상큼한 우리들의 일상이 차곡차곡 쌓여 행복한 인생을 만든다는 것을 명심하고 즐겁고 신선한 일상의 즐거움을 만들어 가야겠다. 여름호에 이런 삶의 큼직한 부분을 재미와 가벼움에서 찾아내 준 시인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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