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11일 연중 제19주일>
해 질 무렵 더해지는 절실함
산에서 내려와 시원한 냉수 한 사발을 들이켠다. 물이 달다. 물이 이토록 달 줄은 몰랐었는데, 갈증 난 내 몸에 냉수는 꿀처럼 달다. 시편(42,2)의 말씀이 떠오른다. “암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하느님, 제 영혼이 당신을 이토록 그리워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세월이 빠르게 느껴진다고 했던가? 과연 그랬다. 갈수록 세월은 어찌 이리도 빠를까? 우리의 몸이 점점 조바심이 나는 걸까? 삶보다도 죽음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되는 것도 자연스러운 것일 테지. 그런데 여태 철이 덜 든 걸까? 죽음을 생각하면서도 갖가지 미련이 남으니 아직 설익은 게 분명하지. 이제는 볼 때도 되었고, 들을 때도 되었건만, 보면서도 들으면서도 머뭇거리는 인간의 나약함을 주님은 아셨던 걸까?
사람들이 수군거리고 빈정거려도 예수님께서는 자신에 대하여 확고하시다.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배운 사람은 누구나 나에게 온다.”(요한 6,45ㄴ) “나는 생명의 빵이다.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도 죽었다. 그러나 이 빵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요한 6,48-50)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확신에 찰 수 있으시고, 무엇에 이토록 확고하실까?
부모님이 싸우신다. 어제만 해도 함께 웃으며 밥을 먹고 놀던 엄마와 아빠가 오늘 저녁엔 웬일인지 싸우신다. 아이는 동생과 함께 불안에 떨며 기도한다. “예수님! 엄마 아빠가 돈 못 벌어도 좋으니 서로 사랑하게 해주세요!” 아이도 사랑을 갈구한다. ‘생명의 빵’을 갈망한다.
여전히 사람들은 분주하다. 새벽부터 일어나 배우러 가는 사람, 회사에 출근하는 사람, 가게 문 여는 사람, 새벽 장처럼 분주하다. 성실하고 근면하다. 큰 욕심을 부리는 것도 아니고 대단한 출세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소박하고 검소하다. 착하고 정직하게 살려고 애쓴다. 그러면 세상은 아니어도 하늘이 언젠가는 나를 알아볼까? 욕심은 없지만 작은 기대는 해본다. 어쩌면 사람들은 이미 ‘생명의 빵’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만 자각하지 못하고 있을 뿐. 그들의 착하고 성실한 본성 속에 ‘생명의 빵’이 함께 숨 쉬며 살아계시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무엇을 갈망하는지, 갈망해야 하는지 알기는 할까? 아마도 많은 사람이 ‘생명의 빵’을 알게 되면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빵을 사려고 할 텐데.
‘생명의 빵’, 이 빵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먹었던 그 빵’이 아니다. 이 빵은 곧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시다. 우리 몸이 빵을 양식으로 삼듯이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양식으로 삼는다. 이 빵은 그리스도인들에게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빵이다. 이 빵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이시다. 어둠 속에 있는 이 세상에 빛으로 오신 하느님이시다. 정의를 갈망하고 진리를 찾는 이들에게 참된 생명이 되는 빵이다.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마태 7,6)
어제도 오늘도 한분 한분 세상을 떠난다. 언젠가 우리도 그렇게 세상을 떠날 것이다. 죽음이 가까워졌다. 생각도 많아지고 점점 빨라지는 세월을 느끼면서 “암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하느님, 제 영혼이 당신을 이토록 그리워합니다.”(시편 42,2)라는 구절이 가슴에 꽈리를 튼다. 덧없는 세상살이의 온갖 것을 벗어버리고자 몸이 꿈틀거린다. 밀려오는 미련과 연민으로 붉게 물들어가는 황혼 녘에 남모를 갈증에 물을 찾는다. 시몬 베드로였지?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요한 6,68) “왜 하필 베드로였나?”라고 의문을 품었던 나를 잠시 꾸짖는다. ‘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찾았으니 복된 베드로요, 부러운 베드로다.
하느님의 사람, 예언자 엘리야. 하느님께서는 천사를 시키시어 그를 먹이고 마시게 하신다. “일어나 먹어라. 갈 길이 멀다.”(1열왕 19,7) “엘리야는 일어나서 먹고 마셨다. 그 음식으로 힘을 얻은 그는 밤낮으로 사십일을 걸어, 하느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다.”(1열왕 19,8) “자, 주님의 산으로 올라가자. 야곱의 하느님 집으로! 그러면 그분께서 당신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시어 우리가 그분의 길을 걷게 되리라.”(이사 2,3) “그러므로 사랑받는 자녀답게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에페 5,1)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는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내놓으신 것처럼 여러분도 사랑 안에서 살아가십시오.”(에페 5,2)
“너희끼리 수군거리지 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 그리고 나에게 오는 사람은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릴 것이다.”(요한 6,43ㄴ-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