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25-26절
וַיֵּ֨דַע אָדָ֥ם עֹוד֙ אֶת־אִשְׁתֹּ֔ו וַתֵּ֣לֶד בֵּ֔ן וַתִּקְרָ֥א אֶת־שְׁמֹ֖ו שֵׁ֑ת כִּ֣י שָֽׁת־לִ֤י אֱלֹהִים֙ זֶ֣רַע אַחֵ֔ר תַּ֣חַת הֶ֔בֶל כִּ֥י הֲרָגֹ֖ו קָֽיִן׃
וּלְשֵׁ֤ת גַּם־הוּא֙ יֻלַּד־בֵּ֔ן וַיִּקְרָ֥א אֶת־שְׁמֹ֖ו אֱנֹ֑ושׁ אָ֣ז הוּחַ֔ל לִקְרֹ֖א בְּשֵׁ֥ם יְהוָֽה׃ פ
와이예다(동침하매) 아담 오드(다시) 에트 이쉬토(아내와) 와텔레드(그가 ~낳아) 벤(아들을) 와티크라(~이라 하였으니) 에트 쉐모(그 이름을) 셋(이름 셋) 키(이는 ~함이며) 샤트(주셨다) 리(내게) 엘로힘 제라(씨를) 아헬(다른) 타하트(대신에) 헤벨 키(접속사) 하라고(죽인) 카인 우레셋(셋) 감(도) 후(그) 울라드(낳고) 벤(아들을) 바이카라(~라 하였으며) 에트(격 전치사) 쉐모(그 이름을) 에노스 아즈(그때에) 후할(사람들이 비로소) 리크로(불렀더라) 베쉠(이름을) 야훼 프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개역개정)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관계를 통해 하나가되므로 그가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밑으로 뒤에 오는 씨를 내게주셨다 함이며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찾더라(수정안)
다른 씨를 주셨다(7896 샤트שָֽׁת־) 셋( שֵׁ֑ת )은 샤트에서 비롯된다. 7896에서 보면, 기본어근;‘놓다’(여러모양으로 널리 적용됨):-적용하다, 임명하다, 배열하다, 가져오다, 숙고하다,놓다(보존하다), 홀로 두다, ×보다, 만들다, 표시하다, 두다(입다), ×간주하다, 놓다, 보이다, 머물다, ×취하다 등의 의미가 있다. 아벨 대신에 임명하다 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아벨에 대해서 설명하는 귀절을 살펴보면 마태복음 23장 34-35절에서『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서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따라다니며 박해하리라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아벨을 의인, 선지자로 소개한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공의를 선포하는 선지자이다. 즉 구원자이신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자이다. 아벨은 죽으므로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나타내는 것이다.
로마서 3장 21절에서『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율법과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오늘날 성경을 두고 말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3장 22절에서『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헬라어 성경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되어있다. 히브리서 12장 24절에서『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니라』아벨의 죽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예표하는 것이다. 아벨의 죽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죽음을 의미하고, 셋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징한다.
에노스(582)는 스트롱 코드를 보면 605에서 유래; 아마‘죽을수 밖에 없는 존재’(보다 고귀한120과는 다름); 따라서 일반적으로‘사람’(개별적으로 집단적으로) :- (또)다른, x피에 굶주린, 어떤, 녀석, 각색의, 동료, x한창때에,남편, (어떤, 죽을 수밖에 없는)사람, 백성, 그무리, 종, 몇사람(x그들중), +낯선 사람, 그(것)들, +그무리 376과 비교라고 되어있다.
에노스는 하나님이 없으면 살 수 없는 그런 존재라는 것이다. 창세기 4장 26절에서는『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라고 말을 한다. 출애굽기 6장 2-3절을 보면『하나님(엘로힘)이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야훼)이니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샤다이) 하나님(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쉠)을 여호와(야훼)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모세 이전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엘로 나타난 것이다. 6장 6-7절에서『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야훼)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내며 그들의 노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여러 큰 심판들로써 너희를 속량하여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의 하나님(엘로힘) 여호와(야훼)인 줄 너희가 알지라』7절에서는 엘로힘과 야훼가 함께 등장한다.
창세기 4장 1절에서 여호와라고 말씀하셨는데, 6장 2-3절에서는 여호와 라는 이름을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것은 시간적 순서가 아니라 출애굽 당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라는 이름을 들었는데, 이 이야기가 창세기 4장 1절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어 성경을 읽는 자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것이다. 4장 1절에서 말하는 바는 가인에게 하시는 말이 아니라, 성경을 읽는 독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다.
셋이나 에녹스가 깨달은 것은 여호와가 없으면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에노스의 이름 속에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우리는 에노스와 같은 이런 고백이 필요하다. 사도바울도 같은 고백을 한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셋이 아들 에노스를 낳고 하나님이 없이는 도저히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는데, 인간이라는 존재는 허무하고 오직 하나님 만이 존재하는 분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때 비로소 여호와를 불렀다는 것이다. 부르다 라는 의미는 부르짖다 라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의 고백인 것이다. 자신이 이렇게 고백하는 순간 여호와를 소유하게 된다는 말이다. 이것이 곧 임마누엘(헬라어 파루시아)의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 하와는 가인을 낳았을 때 여호아를 낳았다고 말을 한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여인의 후손을 가인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말을 한 것이다. 그런데, 허무하게도 가인이 아벨을 죽여버린 것이다. 아벨의 이름은 허무가 된 것이다. 하와가 셋을 낳고 셋이 에노스를 낳았을 때 하나님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때 하나님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죽지 않으면 여호와를 소유할 수 없다는 말도 된다. 그리고 이후에 여호와를 소유한 족보가 등장한다.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히브리어의 성경을 바탕으로 대신(타하트:8478)이라는 말은『밑으로』라는 의미다.『다른』이라는 말은『뒤에 오는』이라는 의미다. 8430과 동형에서 유래;‘바닥’(‘눌려진’것으로서);오직 부사로 ‘아래에’(종종 접두 전치사와함께 ‘…아래’), ‘…대신에’, 등등:-처럼, 아래, ×평평한, 안에(대신에), (같은)장소, (무엇이있는)자리, …위해, …대신에, 아래, ×~쪽으로, ×…나의 것일때, …반면에, 그러므로, …와 함께
그리스도 밑으로 오는 자들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는 자들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셨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 믿는 자가 다른 씨를 가지는 자가 되는 것이다. 비록 부모로부터 육의 씨를 받아 이 세상에 태어났지만, 하늘로부터 오는 다른 씨를 받은 사람들이 모두가 셋이라는 의미다. 가인과 아벨과 셋으로 연결되는 이 의미는 하나님 나라를 떠난 영들이 이 세상에 첫사람 아담(그리스도의 표상)으로부터 태어나서 아벨(십자가에서 죽는 그리스도)을 통하여 하나님이 다른 씨, 셋(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모든 자들)을 주신다는 의미를 갖는다.
셋이 에노스를 낳았다. 에노스는 이쉬(남자)라는 의미를 갖는다. 구원받는 자(셋) 중에서 에노스(남자)가 태어난다. 남자는 토지를 경작하고 가는 자다. 세상 속에서 자기의 의를 이루어보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자기의 의를 이루는 것이 불가능하다. 토지를 갈고 씨를 뿌리고 수확을 하고, 그래서 그 수확된 열매를 통해서 영원하신 생명의 열매가 있음을 깨달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것이다. 에노스는 자기의 의를 이루어보려고 하는 자의 대표적인 모습이다. 그래서 스스로의 노력으로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에서 사탄의 미혹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 오게된 원인이다. 그래서 에노스는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 처럼 되고 싶은 욕망을 이 땅에서 이루어보려고 하는 자의 모습을 나타낸다. 그러나 결코 그렇게 될 수 없음을 깨닫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의 모습이다.
탕자는 타국에 가서 자기의 삶을 살아보았지만, 결국 방탕한 생활을 하여 파멸된 인간의 모습을 나타내었다. 그래서 다시 회개하여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한 과정에 불과한 것이다. 모든 하나님을 떠난 자들은 자신이 의를 스스로 이룰 수 없음을 깨닫고 회개하여 하나님 나라로 귀향해야만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었으며, 하나님이 율법을 주셨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했다. 율법을 지키면서 스스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이 불가능함을 깨닫고,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발견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다. 그들은 에노스가 되지 못한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는 자와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의 차이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는가 없는가의 차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믿는 자와 하나님이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나의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 하나님은 영을 살리기 위해서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은 사랑이다. 그래서 우리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것을 믿을 때, 하나님의 사랑이 내게 들어오고, 형제의 죽어버린 영을 살리려고 하는 것이다. 사랑은 죽은 영을 살리기 위한 모든 것이다. 내가 사랑을 주어서 죽은 영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주어서 영을 살리는 것이다. 사도바울이 말하는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죽을 죄인일지라도 하나님은 회개하여 돌아오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이다. 그것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