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금의 봄 (2024년 상상인 신춘문예 당선작)
도 은 (김은숙)
봄은 누르는 힘이 강해서 저녁에도 판금(板金)의 얼굴이죠 전철로 끊임없이 운반되는 손가락들, 재빨리 칸에 실리지 않으면 공장의 철문이 철커덩 닫혀요
차창 밖 철새들도 북쪽으로 쉴 새 없이 실려가고 있어요 구름은 부속품을 다 끼워야 할 할당량, 끊임없이 황사를 타고 이동 중이네요
봄은 새순을 철컥철컥 실어올까요 담장 위로 솟은 목련나무도 흰 용접에 박차를 가하죠 나는 접합 부위를 녹여서 서로 붙이는 금속성을 생각해요 깜빡, 제대로 접속되면 봄꽃이 켜지기도 할까요
프레스가 뚝딱 냄비를 눌러 붙이듯 늦은 밤이 돼서야 여공들이 절삭유로 흘러나와요 저들도 애인을 만나러 가야 하고 혼자서 늦은 식사를 하기도 해요
연립주택 작은 창으로 별빛이 조여지고 있네요 유일하게 겉돌지 않으니 꿈속을 파고들기 좋을 거예요 봄은 밤새 보일러를 돌리고 있겠죠 얼음을 뚫고 복수초가 실려 나오면 땅도 예열이 되어 있을 거예요 그러면 내게도 얇게 조각낸 미소가 묻어나겠죠
도 은(김은숙) 시인
제6회 안정복문학상 대상, 제9회 경북일보 청송객주문학대전 금상 수상
2022년 전라매일 신춘문예 수필. 2024년 상상인 신춘문예 시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