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가는 날 / 조명래
주문한 신행 음식이 도착하기를 기다려 대기시켜 둔 승용차에 짐들을 실었다. 시부모들에게 드릴 아침상, 치장이 화려한 떡, 전, 육포, 그리고 혼자 들기가 거북할 만큼 무거운 과일바구니. 나는 저런 상을 언제 한번 받아 보랴.
차가 복잡토록 싣는 짐들에는 음식 외에 신혼여행 시 준비해 온 선물꾸러미도 있는 듯했다. 시부모, 시누이는 물론이고 직장 상사들 몫까지 챙기니 작은 차가 차고 넘쳤다. 친정 부모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온통 시집 위주라니……. 저년이 언제부터 도둑이었던가?
운전대에 앉은 사위 녀석은 신이 나는 듯 열심히 달려 예정된 시각에 도착했다. 마중 나와 있는 사돈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대국의 사신 앞에 머리를 조아리는 약소국의 정승처럼 전신에 미소를 띠고 몸까지 깊이 숙이며 입으로는 내가 알고 있는 미사여구를 전부 주어섬겼다.
아무것도 모르는 딸년을 잘 부탁합니다.
부탁합니다.
부탁합니다.
돌아오는 시간이 되었다. 집 안 어딘가에서 자리하고 있던 아이가 눈에 띄었다. 얼핏 보니 눈가가 상기되어 있었다. 인사를 하고 나서는데, 애써 참았던 울음이 터져 나오는 듯했다. 흑 흑 흑 흑……, 순간 나의 목도 간질거리고 잠겨진다. 내 눈에서도 물기가 번지기 시작한다. 이런 낭패가…….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은 말없이 등짝을 쓰다듬어 주는 일이었다. 그리고는 돌아섰다. 돌아서서 열심히 걸었다.
귀갓길 차 안에서 생각에 잠겨 있는데 휴대전화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아버지, 행복하게 살 테니 걱정 마세요.”
차창 밖은 봄이 한창이었다.
첫댓글 웃음이 나다가 쏙 들어갑니다.
잘 읽었습니다.
친정 아버지의 애정이 듬뿍 담긴 글로, 특히 심리묘사가 매우 탁월한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