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에 읽는 오늘의 詩 〈1445〉
■ 해바라기 (김광섭, 1905-1977)
바람결보다 더 부드러운 은빛 날리는
가을 하늘 현란한 광채가 흘러
양양한 대기에 바다의 무늬가 인다.
한 마음에 담을 수 없는 천지의 감동 속에
찬연히 피어난 백일(白日)의 환상을 따라
달음치는 하루의 분방(奔放)한 정념에 헌신된 모습
생의 근원을 향한 아폴로의 호탕한 눈동자같이
황색 꽃잎 금빛 가루로 겹겹이 단장한
아 의욕의 씨 원광(圓光)에 묻히듯 향기에 익어가니
한 줄기로 지향한 높다란 꼭대기의 환희에서
순간마다 이룩하는 태양의 축복을 받는 자
늠름한 잎사귀들 경이를 담아 들고 찬양한다.
- 1957년 시집 <해바라기> (자유문학자협회)
*가을의 초입인 9월이면 산기슭에는 노란 마타리와 붉은 싸리꽃들이 막 피어나고, 자줏빛의 들국화가 제철을 맞을 때입니다. 시골에서는 노란꽃을 피운 해바라기가 어느 기와집의 담장 너머에서 노랗고 해맑은 얼굴을 삐쭉 내밀고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어렸을 적 9월이 오면 익숙하게 보았던 풍경이기도 하고요.
<성북동 비둘기>와 함께 김광섭 시인의 대표작 중 하나로 알려진 이 詩는, 밝고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해바라기가 역동적으로 꽃 피우고 서 있는 모습을 다소 어려우면서도 정제된 시어를 구사하며 상징적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이 詩의 의미를 좀 더 알기 위해서 문장을 천천히 살펴보면, 우선 “현란한, 양양한, 분방한, 호탕한, 늠름한”같이 힘차고 밝은 이미지를 지닌 수식어를 많이 사용한 것이 눈에 띕니다. 또한 “정념, 아폴로, 태양” 등 정열적이고 남성적인 단어를 많이 활용하는 모습입니다. 이를 통해 시인은 아마 의도적으로, 읽는 이들에게 해바라기의 밝고 부드러운 모습에서 생명이 역동적으로 분출되는 느낌을 강조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가을의 길목에서 길을 가다가 노오란 해바라기를 보게 된다면, 잠시 서서 가벼운 미소와 함께 친숙한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