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과 관련하여 위략이라는 사서에 보면 연후가 자존하여 칭왕함에 조선후도 자칭하여 칭왕했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여기서 늘 의문이였던 것은 연후야 주왕실로부터 분봉된 제후이니 '연후'라는 표현이 맞지만 왜 조선의 통치자까지 '조선후'라고 기록했는가 하는 점이였습니다.
그런데 문듯 떠오른 생각이 당시 '왕'을 칭할 수 있는 자는 천자라고 하는 주나라 왕뿐이였으니 위략의 사가가 조선의 통치자를 표현하기를 왕이라고 하지 못하고 '후'라고 표현해 놓은 것이라고 여겨지거든요.
(진시황 이후에 타국의 통치자들을 황제라 표기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왕이라고 한 것처럼 말입니다.)
조선의 통치자가 주나라 왕으로부터 책봉받은 제후였기에 '후'라고 한 것이 아니라 그냥 일반명사로써 주나라 천자를 제외한 각 나라들의 통치자를 지칭하는 의미에서 '후'라고 한 것이 아닐까요?
첫댓글일단 주나라를 중심국가로 보았기 때문에 나온 그들의 해석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만, 다른 사례와 더 비교 연구해볼 필요가 있을듯 합니다. 가령 초나라의 경우 초창기부터 아예 독립적으로 왕을 칭했는데, 이것은 사마천 <사기>에도 실리게 되었습니다. 물론 초나라 역사 역시 한(漢)의 역사에 포함되었기 때문에 그런 사실을 인정하고 기록으로 남긴 것이라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일단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고)조선의 통치자가 정말 액면 그대로 '후'에서 '왕'으로 되었다기 보다는 조선 고유의 칭호(예컨대 '단군'과 같은)를 사용하다가 '왕' 칭호를 도입한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가끔씩 드는 생각이지만...우리는 고조선의 군주호를 단군(혹은 단군왕검)이라고 쉽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삼국유사』등에 관련기록이 나오니까요. 그런데 이상하게 중국측에서 고조선의 군주를 단군이라고 칭한 기록은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양자간의 교류가 그렇게 없었을까요? 분명『관자』에 보면 상당히 오래전부터 고조선은 중국 왕조와 교류를 했는데 말이죠. 거리가 수천km 떨어져있는 곳에 있는 나라도 아니고 거의 국경을 맞대고 있었을텐데 우리측에 대한 정보가 그렇게 적다는 것에 가끔 놀라곤 합니다. 동시대『사기』같은 책이 나오고, 이미 그 전부터 갑골문과 같은 문자기록이 있었던 중국인데 왜 그럴까요? 그렇게
봤을때 대조영님 견해대로 조선후라고 한 것은 그냥 주나라보다 아래에 있던 나라라는 개념으로 그랬을 수도 있을 듯 합니다. 중국측에서 고조선에 대해 자세한 정보가 없어 관련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면 충분히 그랬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죠. 다만, 신농님 말씀대로 이미 주나라와 동시기에 감히 왕이라고 참칭하던 초나라가 있었음에도 고조선에 대해 후라고 불렀다면, 양자간의 어떤 외교적인 관계가 성립되었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주나라만의 생각일지는 모르지만 고조선에서 사신이 왔고, 양자간의 어떤 외교적 수사가 오고갔다면...주나라는 나름 조공책봉체제 안에서 고조선을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참~의문입니다.
후에서 왕을 자칭했다는 표현은 고조선의 통치자가 고유 왕호 '단군'을 칭하다가 중국유이민이 밀려오는 상황을 감안하고 자체 발전과정에서 한자사용이 보편화되면서 중국식 왕호 사용의 필요성이 대두됨으로 변경하지 않았나 싶거든요. 또 무엇보다도 이웃하고 있는 연이 왕이라 자칭하면서 천자를 표방하니 고조선의 통치자도 질세라 대외적으로 왕이라 천명하여 천자임을 표방하여 연과 대결구도를 확실히 한 것이 아닐가 싶네요.
첫댓글 일단 주나라를 중심국가로 보았기 때문에 나온 그들의 해석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만, 다른 사례와 더 비교 연구해볼 필요가 있을듯 합니다. 가령 초나라의 경우 초창기부터 아예 독립적으로 왕을 칭했는데, 이것은 사마천 <사기>에도 실리게 되었습니다. 물론 초나라 역사 역시 한(漢)의 역사에 포함되었기 때문에 그런 사실을 인정하고 기록으로 남긴 것이라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일단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고)조선의 통치자가 정말 액면 그대로 '후'에서 '왕'으로 되었다기 보다는 조선 고유의 칭호(예컨대 '단군'과 같은)를 사용하다가 '왕' 칭호를 도입한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가끔씩 드는 생각이지만...우리는 고조선의 군주호를 단군(혹은 단군왕검)이라고 쉽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삼국유사』등에 관련기록이 나오니까요. 그런데 이상하게 중국측에서 고조선의 군주를 단군이라고 칭한 기록은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양자간의 교류가 그렇게 없었을까요? 분명『관자』에 보면 상당히 오래전부터 고조선은 중국 왕조와 교류를 했는데 말이죠. 거리가 수천km 떨어져있는 곳에 있는 나라도 아니고 거의 국경을 맞대고 있었을텐데 우리측에 대한 정보가 그렇게 적다는 것에 가끔 놀라곤 합니다. 동시대『사기』같은 책이 나오고, 이미 그 전부터 갑골문과 같은 문자기록이 있었던 중국인데 왜 그럴까요? 그렇게
봤을때 대조영님 견해대로 조선후라고 한 것은 그냥 주나라보다 아래에 있던 나라라는 개념으로 그랬을 수도 있을 듯 합니다. 중국측에서 고조선에 대해 자세한 정보가 없어 관련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면 충분히 그랬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죠. 다만, 신농님 말씀대로 이미 주나라와 동시기에 감히 왕이라고 참칭하던 초나라가 있었음에도 고조선에 대해 후라고 불렀다면, 양자간의 어떤 외교적인 관계가 성립되었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주나라만의 생각일지는 모르지만 고조선에서 사신이 왔고, 양자간의 어떤 외교적 수사가 오고갔다면...주나라는 나름 조공책봉체제 안에서 고조선을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참~의문입니다.
후에서 왕을 자칭했다는 표현은 고조선의 통치자가 고유 왕호 '단군'을 칭하다가 중국유이민이 밀려오는 상황을 감안하고 자체 발전과정에서 한자사용이 보편화되면서 중국식 왕호 사용의 필요성이 대두됨으로 변경하지 않았나 싶거든요. 또 무엇보다도 이웃하고 있는 연이 왕이라 자칭하면서 천자를 표방하니 고조선의 통치자도 질세라 대외적으로 왕이라 천명하여 천자임을 표방하여 연과 대결구도를 확실히 한 것이 아닐가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