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닥사스다 2세에 이어 왕위에 오른 아닥사스다 3세는 폭군으로 유명하다. 잔인하고 무자비한 인물인 그는 자신의 경쟁자가 될 만한 형제자매들을 모조리 죽이고 그 시체들을 밟고 왕위에 올랐다. 그리고 도처에서 일어난 반란을 철권으로 진압한 후 이집트 재정복에 나섰다. 첫 번째 시도는 실패했지만 그 과정에서 시돈을 수천 명의 주민과 함께 불태워 버렸다.
BC 356년에는 모든 총독에게 용병을 해고하도록 명령했다. 아테네는 그의 강요를 이기지 못하고, 반항적인 동맹국들과 평화협정을 맺으며 동맹국들의 독립을 승인할 수밖에 없었다(BC 355년) 이어서 그는 BC 404년에 독립한 이집트를 다시 복속 시키려고 했다.
BC 351년 그의 첫 번째 시도가 실패로 끝나자, 여기에 용기를 얻은 페니키아 도시들과 키프로스 군주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이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규모 병력을 이끌고 이집트로 진격하여, 나일 삼각주에 있는 펠루시움에서 BC 343년 이집트의 왕 넥타네보 2세를 무찔렀다. 이집트 전체는 페르시아 총독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도시의 성벽은 파괴되었으며, 여러 신전이 약탈당했다.
아닥사스다 3세는 이집트인들이 숭배하는 성스러운 황소 ‘아피스’를 직접 죽였다고 한다.
왕이 수사로 돌아간 뒤 바고아스는 궁정과 위쪽 사트라프 령(領)들을 다스렸고, 멘토르는 서부지역 전역에서 페르시아 제국의 권위를 되찾았다. 마케도니아의 필립포스가 BC 340년 고린도와 비잔티움을 공격하자, 아닥사스다는 원군을 보냈다.
BC 338년 환관 ‘바고아스’는 아닥사스다의 막내 아들 ‘아르세스’를 제외한 나머지 아들들과 아닥사스다를 모두 죽인 다음, 아르세스를 왕위에 앉혔다. 이집트를 재정복하여 다시 페르시아 시대가 오는가 했지만, 헬라문화의 많은 영향들이 주변 국가들의 환심을 사게 되면서 페르시아 문명은 저물어 가고 있었다.
권력욕이 강한 환관 ‘바고아스’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바고아스가 BC 338년 아닥사스다 3세를 독살하면서 ‘아르세스’가 즉위했다. 하지만 그 마저도 2년 후인 주전 336년에 바고아스에 의해 독살되었다. 바고아스는 자신이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사람을 왕위에 앉히기 위해 왕가에서 갈라져 나온 먼 친척벌인 ‘코도만누스’를 지정해 왕에 임명했는데, 그가 바로 페르시아의 마지막 왕 다리우스 3세 였다.
[출처] 아닥사스다 3세와 페르시아(바사) 제국의 멸망|작성자 완보동물 물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