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좁다란 골목길을 따라 지붕 낮은 한옥이 이어진 동네, ‘서촌’. 무조건 따뜻한 곳을 찾게 되는 요즘, 아이와 서촌 미술관 산책은 어떨까? 키즈카페나 체험전에는 없는 소소한 발견의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생애 가장 따뜻한 날들을 만나다 l 대림미술관영추문(경복궁 서문) 건너편에 자리한 대림미술관은 색색의 스테인드글라스로 꾸며진 독특한 외관부터 눈길을 끈다. 파리 피카소미술관의 리모델링을 맡기도 했던 프랑스 건축가 뱅상 코르뉴가 디자인한 이 감각적인 파사드는 한국의 전통 보자기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칼 라거펠트의 사진전과 핀 율의 가구전, 스와로브스키의 보석전까지 전시마다 뜨거운 화제를 불러일으킨 대림미술관이 이번엔 아이들과 함께 둘러보기 좋을 다정하고 따뜻한 전시를 마련했다. 바로 린다 매카트니의 사진전 <생애 가장 따뜻한 날들의 기록>이다. 세계적인 음악잡지 <롤링스톤>의 커버를 장식한 최초의 여성 사진작가이자 비틀스의 멤버 폴 매카트니의 아내로도 유명했던 린다 매카트니는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했던 ‘생애 가장 따뜻한 날들’을 수많은 사진으로 기록했다. 덕분에 우리는 그녀의 사진 속에서 어느새 칠순을 넘긴 폴 할아버지(!)의 꽃처럼 아름다웠던 시절과 전설의 뮤지션이 아닌 평범한 아빠로서의 수수하고 장난기 가득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특히 폴이 거품 가득한 욕조에서 아이와 함께 얼굴만 삐죽 내밀고 있는 모습이라든가 아이 등에 ‘Happy’라고 적어둔 사진은 누구라도 아이와 한번 꼭 찍어보고 싶은 사랑스러운 장면들이다.
위치 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4길 21
개관시간 화~일요일 오전 10시~오후 6시/ 목·토요일 오전 10시~오후 8시(월요일 휴관)
입장료 성인 5000원, 청소년 3000원, 어린이 2000원
문의 02-720-0667, www.daelimmuseum.org
통의동 깊숙한 골목길에 자리한 사진 전문 갤러리 l 사진위주 류가헌개인적으로 서촌에 갈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들르는 곳 중 하나인데, 아는 사람만 찾아드는 한적한 골목길에 한옥 두 채가 오붓하게 마주한 모습이 가장 서촌다운 전시 공간이라는 느낌이다. 손때 묻은 나무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작고 정갈한 안마당이 나타나고, 그 마당을 지나면 서까래 아래 그림처럼 걸려 있는 사진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전시 주기가 짧은 편이라 매번 새로운 주제의 사진전을 만날 수 있는 것도 류가헌의 매력. 아이는 사진전보다 마당에 깔린 자갈을 조몰락거리는데 더 관심을 보이지만, 그마저 세련된 미술관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정겨운 풍경이다.
위치 서울시 종로구 효자로7길 10-3
개관시간 오전 10시 30분~오후 6시 30분(월요일 휴관)
입장료 무료
문의 02-720-2010, www.ryugaheon.com
시장뷔페와 기름떡볶이가 있는 곳 l 통인시장프랑스식 코스 요리부터 한 그릇에 1000원짜리 떡볶이 까지 다양한 먹거리를 맛볼 수 있는 서촌이지만 아이들과 함께라면 일명 ‘시장뷔페’로 불리는 통인시장만의 특별한 점심을 즐겨보기를 권한다. 시장 2층에 마련된 도시락카페에서 재미난 모양의 엽전을 구입하면 밥과 국은 물론 두툼한 손만두 하나에 엽전 하나, 갓 구운 떡갈비 하나에 엽전 두 개 식으로 반찬을 조금씩 사 먹을 수 있다. 아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골라서 도시락을 채우는 재미와 더불어 슬쩍 덤을 얹어주는 전통시장만의 넉넉한 인심도 느껴볼 수 있다. 쫄깃쫄깃한 떡에 매콤한 양념이 어우러진 기름떡볶이도 통인시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별미인데, 어린아이들은 담백한 간장떡볶이를 더 좋아한다.
위치 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15길 18
문의 02-722-0911
마을 골목 끝 그림 같은 집 한 채 l 종로구립 박노수미술관 1930년대에 지어진 근대식 가옥으로 안을 들여다보기도 어려울 만큼 높은 담벼락과 웅장한 나무로 둘러싸인 이곳은 화가 박노수가 실제로 거주했던 집을 미술관으로 꾸몄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한국화가 중 한 명인 그는 이곳에 마련된 자신의 화실에서 <달과 소년> 등 신비스런 색감을 덧입힌 독창적인 작품을 완성했다. 개인주택인 만큼 오랜 세월 외부의 눈길을 허락하지 않았지만, 노화가의 뜻에 따라 종로구에 기증되어 지금은 누구나 들러볼 수 있는 소중한 문화 공간으로 바뀌었다. 한국화라고 해서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과감한 색의 사용과 단순하고 동양적인 선이 오히려 아이들이 보기에 편안하고 친숙하다. 다만 좁은 복도와 계단 등 근대식 주택의 구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니 아이들과 함께 관람할 때는 주의가 필요할 듯. 미술관 뒤편 작은 전망대에 오르면 서촌 특유의 나지막한 기와지붕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위치 서울시 종로구 옥인1길 34
개관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월요일 휴관)
입장료 2000원
문의 02-2148-4171
넉넉한 인심이 남아있는 동네 빵집 l 효자베이커리 서촌의 오랜 터줏대감 중 하나인 효자베이커리는 골목 깊숙이 파고든 대형 프랜차이즈 빵집의 무차별 공격에도 30년 가까이 제자리를 지켜온 고마운 동네 빵집이다. 청와대에 케이크를 납품하면서 입소문을 타기는 했지만 효자베이커리의 가장 든든한 버팀목은 이른 아침부터 식빵을 사러 오는 동네 단골손님들. 마침 주민인 듯한 아주머니가 들어서자 안주인은 묻지도 않고 갓 구운 식빵을 봉투에 담는다. 이들 사이에 오가는 말없는 미소에서 오랜 세월 맛으로 쌓인 믿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아이와 함께 빵을 고르고 있으려니 점원이 시식용 빵을 한 움큼 쥐어주며 살가운 웃음을 건넨다. 양파크림베이글과 콘브레드가 이곳의 인기 메뉴인데, 슈크림을 듬뿍 넣은 베이비슈도 아이가 봉투째 들고 다니며 맛있게 먹은 빵이다.
위치 서울시 종로구 필운대로 54
문의 02-736-7629
카페가 된 추억의 헌책방 l 대오서점 서촌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헌책방 대오서점이 오랜 먼지를 걷어내고 카페로 탈바꿈했다. 이곳에 간판을 내건 지도 어언 60년. 그 자체가 서촌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수많은 이야기가 쌓여 있는 공간이다. 더 이상 책방으로서 기능을 할 수 없어 혹여 상권에 떠밀려 사라지지는 않을까 우려했건만, 다행히 주인 할머니의 따님과 손자가 아이디어를 모아 따뜻한 감성이 묻어나는 추억의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마침 카페 앞에서 추억의 달고나를 굽고 있었는데 아이는 난생처음 보는 광경이 신기한지 눈을 반짝인다. 평소 같았으면 불량식품이라며 손을 내저었을 테지만 이번만큼은 그 달짝지근한 맛을 허락해주었다. 덕분에 기분이 좋아진 아이는 벽에 걸린 낡은 교복 모자도 직접 써보고 “나도 형아가 되면 이런 거 쓸 수 있죠?” 헤벌쭉 웃는다. 문득 아이가 내 나이가 되었을 때에도 이 공간이 지금 모습 그대로 지켜질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위치 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7길 55
문의 02-735-1349
권다현 씨는요…5세 아이를 둔 엄마이자 여행작가. 쓴 책으로는 <엄마도 아기도 행복한 태교여행>, <내일로 기차로>, <체크인 서울, 테이크아웃 1박2일> 등이 있다. 아이와 함께 길을 나서면 혼자일 때보다 좀 더 따스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을 느낀다. 앞으로 <베스트베이비>에 아이와 같이 가기 좋은 하루짜리 감성여행 코스를 소개할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