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코코는 바로크에 반발하여 생긴 양식
미술에서는 궁정화가들의 영향이 컸다.
예를 들면 프랑수아 부셰의 <마담 퐁파두르의 초상>은 당시 보편적인 미적 취향이 되었으며 화가지망생들에게 규범이 되었다.
부셰의 작품은 로코코풍으로 이 양식의 특징은 쾌락, 환상, 즐거움, 도피주의를 추구하는 것이다.
로코코는 바로크의 마지막을 장식한 양식이자 르네상스 최후에 만개한 꽃이라 할 수 있다.
로코코 양식이 프랑스에 소개된 것은 1700년경이었고 18세기에 유럽 전역에 성행했다.
로코코는 회화와 건축에 나타난 양식으로 그 특징은 밝고 우아하며, 우스꽝스럽거나 쾌활하고, 친밀한 느낌을 준다.
로코코는 바로크(Baroque, 포르투갈어 바로코Barocco에서 온 말로 ‘불규칙한 진주나 돌’을 의미)에 반발하여 생긴 양식이지만 동시에 바로크로부터 진전된 양식이다.
로코코Rococo라는 말은 바로코Barocco와 돌이란 뜻의 프랑스어 로카이유(Rocaille, 작은 동굴이나 우물을 장식한 조개나 바위라는 뜻)의 합성어이다.
18세기 중반부터 로카이유는 바로크와 유사한 뜻으로 사용되었으며, 불규칙하고 유연한 선으로 장식된 형상들을 로카이유라고 불렀다.
이처럼 로코코의 어원적 의미는 ‘비속하게 현란하거나 잘 꾸민’이란 뜻이다.
그러나 현재는 이런 경멸적인 뜻으로 이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18세기 말에 다비드의 제자들 사이에서 바로크와 로코코라는 말은 혼용되었으나, 19세기에 들어서 로코코는 18세기 미술에 국한하여 사용되었다.
오늘날에는 17세기 미술을 바로크라 부르면서 약 1700년부터 프랑스 혁명까지의 로코코와 구분하기도 하고, 로코코를 단지 바로크 후기의 프랑스 미술에 국한해서 사용하기도 한다.
로코코 예술가들은 바로크의 복잡한 구성은 받아들이면서도 화면의 복잡함, 칙칙한 색, 지나친 허식 대신 밝은 핑크색, 파란색, 초록색을 사용하면서 때로는 흰색을 두드러지게 사용했다.
당시 사람들은 루이 14세의 베르사이유 궁전의 지나치게 과대한 장식에 진력을 내고 우아하면서도 편리한 점을 요구했다.
로코코는 이런 요구에 부응해서 처음에는 주로 장식적이었다.
로코코의 대표적인 화가는 와토이고 로코코의 성숙된 낙천적 정신을 잘 표현한 화가들로는 부셰와 프라고나르를 꼽을 수 있다.
로코코 회화의 전형적인 모티프는 남신과 여신의 호색적인 기질에 관해 전래된 신화와 님프, 목자가 있는 목가적 장면들이었다.
신과 목자는 도자기 인형에도 사용될 만큼 흔한 주제였으며 파스텔 핑크, 노란색, 파란색, 초록색 등이 주로 사용되어 화사하게 나타났다.
로코코 회화는 사람들에게 시각적 즐거움을 제공해주었지만 정신적인 면은 결여되어 있었다.
이런 이유로 계몽주의 철학자와 작가들은 회화가 단지 장식적이거나 감각적이어서는 안 된다고 한 것이다.
디드로는 말했다.
먼저 날 동요시켜라, 날 놀라게 하라, 날 공격하고, 전율하게 하며, 울게 만들고 조바심나게 하고, 화 나게 하라. 그리고 나서 할 수만 있다면 나의 눈을 진정시켜라.
디드로의 말에서 로코코 회화가 결여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시각적으로만 요란한 로코코 회화에는 관람자의 정신 혹은 영혼에 호소하는 요소가 결여되어 있었다.
미적으로 이런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던 시기에 다비드가 화가로서의 삶을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