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먼 마라톤 참가기
비좁은 춘추항공 여객기에서 내리니 편안함이 느껴진다.
남이 보면 여유가 많아서 전국 각지로 마라톤 여행을 떠나나 보다 싶지만, 내가 누리는 유일한 사치인 것을. 그나마도 조금이라도 싼 표를 찾다 보니 조금은 좁고 불편한 춘추항공과 친해지고 있음을…..
지난 상하이 마라톤 을 뛰기 전에 느꼈던 늦가을 같은 기분 좋은 추위가 느껴진다. 이 기분이 착각이었다는 것은 바로 그 다음날 처절하게 알게 되었다.
많이도 걸었다. 임종락 님은 참 걷기를 좋아하신다. 체육관으로 한국 식당으로, 먹거리를 사러, 짧은 거리도 아닌데 가깝다고 하시면서 계속 걷는다. 다른 대회 같으면 삼보이상 걷지 않겠다고 No 했을텐데….. 기록 욕심이 없는 대회 인지라. (그래도 내심 쬐끔 불만이었지만…) 그날 족히 10km는 걸었으리라.짊어진 빨간 쌕을 보면서 지나가는 시민들이 아 그래 내일 마라쑹이 있지 하면서 화제를 만든다. 샤먼에서는 마라쑹이 신년을 맞이하는 축제로 자리를 잡았음을 시민들의 호감에서 느꼈다.
여건이 되면 다음에도 참가 해야지…..
대회 날 아침.
정말 시원하게 고민 없이 경기 전 행사를 치루었다. 평상시와 다름없이…..
보통 욕심 내는 대회에서는 아침에도 몇 번씩 화장실을 가면서도 시원하지 않았는데. 아… 마음을 비운다는게 속(?)을 비운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음을.체육관 근처로 호텔을 잡았는데, 아차 그건 실수. 출발점은 국제 전람 중심 호텔에서 꽤 먼 거리. 마침 빨간 쌕을 둘러멘 사람들이 미니버스에 올라서고 있었다. 알고보니 Sinopec의 마라톤 동호인들이 이 호텔에 묵었던 것. 넉살 좋게 얻어 타고 동행하게 되었다. 맨 뒷자리에 임종락님과 함께 앉았다.차를 타고 가면서 한국 사람이다 했더니, 처음에는 잘 안 믿는다. 나중에 좀 친해지니 그 사람들은 내가 아직 살집이 있는 편이니, 하프 출전인줄 알았나 보다. 풀 코스 뛰러 왔다 하니 뛰어 봤냐? 하고 초보자 취급이다. 이제 자랑 질을 할 타이밍이 온 거다. 차에서 수다 떠는 걸 들으니 대부분 4시간 이후 주자들….
최근에 3시간 45분 뛰었어 라고 말하니 … 여기저기서 리하이! 리하이 칸부추라이가 터진다. 역시 어디가도 자랑 질 이다.
출발점에 도착해서 좀 고민을 했다. 원래 계획대로 긴팔을 입고 뛰느냐 or 팔없는 런닝복을 입느냐. 결국 장고 끝에 악수 둔다고, 날씨가 제법 따뜻해서 마라토너의 가장 보편적인 복장을 선택했다. 인산 인해다. 기록에 욕심이 있음 인파를 뚫고서라도 앞쪽으로 자리를 잡을 텐데, 도체 저 인파를 뚫고 나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예상했던 대로 지난번 상하이 마라톤보다 심각한 교통 정체가 연출 되었다. 덕분에 5km 지점까지 걸린 시간이 36분 . 상마 때는 급한 맘에 인도로도 뛰고 그랬는데, 뭐 별로 급할 거 없다라는 생각에 중간에 신발끈도 고쳐 매고. 화장실(?)도 다녀오고. 이렇게 맘 편한 대회는 처음이다. 이미 12월의 숱한 술자리에서 술잔을 비우면서 샤먼 대회의 기록 욕심도 비워 버린 상태이니까…. 나의 긍정적인 마인드는 왜 상마 때 주변에 볼거리가 적었는지 원인을 찾는다. ‘7분/km 속도가 건강미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속도이군… 저번엔 너무 빨리 뛰었군’. 하고 분석까지한다. 10km 가 넘어가니까 이제 뛸만한 공간이 벌어지기 시작긴다. 15km 지점에서 1시간 28분 . 초반에 지체한 거 치고 꽤 괜찮은 속도다. 날씨도 좋고 나시를 입기 잘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곧이어 닥칠 불행도 모르고 “역시 마라토너 복장은 나시가 최고야” 20km 까지 1시간 55분. 너무나 편안하게 뛰는 거에 비하면 괜찮은 속도라고 생각하며 한치 앞도 모르면서 어느덧 자신감 모드에서 건방 모드로 가고 있었다.해안 도로가 너무나 아름 다웠다.이렇게 아름다움을 느끼는 이유는 내가 뛰고 있기 때문일지라. 지난번에 출장으로 왔을 때 지나간 도로와 같은 도로인지 의심이 든다.곧 반환 점을 돌아 반대방향으로 가면서 그 동안 편하게 뛰었던 것이 순풍을 업고 뛰었던 이유였음을….
25km 지점(2시간 24분)을 지나면서는 이제 배가 고파지기 시작한다. 파워젤 도 초콜릿도 안 가지고 뛴 첫 경기. 준비 안 한 것도 아닌데, 너무 부담 없음이 지나쳐 정신 줄도 놓아버리고 덜렁 나온 것이었다.
가지고만 다녀도 그게 먹지 않아도 배부르게 하는 거였구나 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여기서부터 춥고 배고픈 기아의 자각이었다.
30km 지점 (2시간 54분) . 바닷바람의 역풍의 위력을 느끼고 있다. 몸이 얼어 붙는다. 그래도 아직은 뛸만은 하다.
35km (3시간23분) 길거리 응원을 하는 꼬마가 내민 접시에 과자와 초콜릿이 담겨있다. 일곱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 아이에게 이 과자는 보물 일텐데....
'꼬마야 고맙다'. 하나만 집으려다가 입에 하나 넣고 양손으로 하나씩 잡았다. 이제 배고픔은 대충 해결이 된다. 샤먼의 시민들은 마라톤을 즐긴다. 이제 후반 막바지에 들어서니 응원 구호가 틀려진다. 더 이상 加油가 아니다. 回家吃饭이다. 후이지아 츠~판을 들으니 조금만 더 뛰면 따뜻한 집에 가서 김 나오는 밥을 먹고 있는 상상이 떠오른다. 정말 추운 맞바람에 뛰는 이 사람들에게 너무나 간절한 소망일지라.
정말 드럽게 춥다. 이제 9번째 풀코스를 뛰는 성숙도가 있는지라. 32km 사선도 부드럽게 넘어가는데 이런 추위는 첨이다. 09년도 상마가 춥기는 했지만 이렇지는 않았는데…. 회수 버스에 올라 타고 싶은 생각이 난다. 저 버스에 타면 얼마나 따뜻할까… 이런 생각 하는 나에게 화들짝 놀란다.
속력이 떨어진다. 나의 주 에너지를 이제 주력에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연장을 위한 체온 유지에 사용하는 것 같다. 겨울 산에서 조난을 당하면 이런 느낌일까....
그래도 걷지는 않는다. ( 걸으면 애들 놀이 처럼 얼음 땡이 될까봐.) 그러니 이제 해안 도로를 따라 늘어선 마라토너 조각들이 나온다. 1km 정도 이어지는 이 조각들은 샤먼 마라톤의 상징물이다. 이제 얼마 안남았다. 정말 이제 후이지아 츠~판 이다. 마지막 골인 지점을 통과 하면서….. 팔을 벌려 손가락 사이로 지나가는 바람을 잡아 본다. 4시간 13분 5초 아홉번 째 완주의 골인이다. 나누어준 타울로 얼은 몸을 감싼다. 海风과 함께 뛴 샤먼 마라톤 이었다. 역시 쉬운 완주는 없었다.
첫댓글 수고하셨습니다..
리필님 올해는 꼭 풀코스 한번 같이 하는 겁니다. 힘..
로베님,대단하십니다...힘들엇을텐데...새로운 한해 좋은 start 가 되기를 바랍니다..
좀 힘든 스타트가 되긴 했지만 새로운 각오로 다시 재기 할 겁니다. 힘을 주세요. 감사
올해도 붙어보자..힘!
제가 어딜 붙어 보겠습니까. 그냥 열심히 따라 가겠습니다. 올해 는 상마에서 4등이 목표입니다. 기라성같은 분들이 입성 하셔서리 그냥 쫒아만 갑니다. 그림자라도 밟아 보도록 아니 체육공원 세바퀴 함께 뛰는게 목표입니다.
멋진 달리기... 축하합니다.
상록수 님은 초월한 달리거 이시기 땜에... 칭찬과 격려 감사 합니다.
그러잖아도 후기가 안 올라와서 전화를 드려볼까... 너무 궁금하던 참이었는데... 근데...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고생 너무 많이 하셨네요. 그리고 큰 수확을 얻으셨는데요~. 미인들의 속도는 7분/Km... ㅎㅎㅎㅎㅎㅎㅎㅎ~ 올해부터 우리팀 아자씨덜 평균속도로 고정되겠어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사투 끝의 완주 정말 축하드립니다!! 로베님 힘!!!
고생은 요즘에 통풍으로 하고 있습니다. 성장통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 합니다. 7분/km 가 미인들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굳이 그 속도에 맞추시지는 마세요. 상마클 최고의 달리거이자 미인 이십니다.총무님으로 눌러 앉으신거 축하드립니다.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로베입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마지막 바닷바람...으시시..느낌 저도 압니다...존경의 박수를 또다시 보내드립니다. 방금 뉴스타사우나 다녀왔는데..2달동안 딱 한번 뛰었더니..2키로 늘었네요..내일 어떻게든지 체육공원 나가봐야지....로베님 짱! 힘~ =^.^=
실다이님 속력 장난 아니던데요. 지난번 바이러스님과 URO(미확인 러닝 물체)를 쫒다보니 실다이님이어라구요. 동마에서 쾌승하시기를 기원... 힘
수고많이 하셨습니다. 제가 뛰고있는 느낌이 들 정도로 실감이 납니다. 이 마라톤 힘든데 정말 힘든데 뭐라고 표현할방법이 없네 ㅋ but 뛰고나면 또 묘한 매력으로 다가오는것같습니다.
그러게 말이에요. 뛸 때는 입에서 욕도 나오고, 힘들어 미칠 거 같고, 다시는 안 뛰겠다는 다짐...을 하며 뛰는데, 뛰고 나서 하루만 지나면 다른 대회는 또 없나, 다음 대회는 또 언제지?... 하며 다음 대회를 찾게 되는 묘한 매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상해에 오시지 않았나요? 이번주 정모 때는 뵐 수 있는거죠? ^^
최고의 러너를 곧 뵐수 있다는 설레임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도 08년도의 풋내기에서 10회 풀코스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체육공원 한바퀴는 사력을 다해서 함께 할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