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보험에 들었다
/이상국
좌회전 금지 구역에서
좌회전을 하다가 사고를 냈다
택시기사가 핏대를 세우며 덤벼 들었지만
나도 보험에 들었다
문짝이 찌그러진 택시는 견인차에 끌려가고
조수석에 탔다가 이마를 다친 남자에게
나는 눈도 꿈쩍하지 않고
법대로 하자고 했다
나도 보험에 들었다
좌회전이든 우회전이든
나는 이제 혼자가 아니다
나의 불행이나 죽음이 극적일수록
보험금은 높아질 것이고
아내는 기왕이면 좀더 큰 걸 들지 않은 걸 후회하며
그걸로 아이들을 공부시키고 가구를 바꾸며
이 세계와 연대할 것이다
나도 보험에 들었다
-덧붙임
집단의 일원에서 슈퍼 개인으로의
‘각성’ 속도가 너무 빨라 ‘나 다움’의
N차 분열 상태에 있는 우리에게
김난도 교수는 조언한다.
“안정 없는 세상에서 행복하려면
‘정체성을 한 바구니에 담아서는 안 된다’고.
‘나 다움의 총량’을 늘이기 위해,
우리는 드넓은 피드백 풀에서,
여러 개의 낚싯대를 드리운 채,
쉼 없이 노를 저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정체성 사회가 가속화되는 가운데
우리는 가장 ‘나 다워야’ 살아 남는다.”는 주장이다.
김난도 교수는, 자신을 ‘순두부 멘탈’이라고 하면서,
그는 나중에 크게 깨지기 전에 미리 보험을 든다고 했다.
나도 보험 하나 들어놓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부처보험’ ‘보살보험’ ‘아라한보험’ ‘복권보험’?
아니면, ‘아부보험’하나 들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