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다.아파트 관리소에서 문자메시지가 날아왔다.
안전검사와 보완공사로 오늘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정전이라는 내용이었다.
그건 며칠 전부터 엘리베이터 게시판에서 보아왔다.
그때만 해도 아, 그런 모양이구나 하고 말았다.
근데 오늘, 아침 산행을 마치고 9시쯤 돌아와 보니 사람들이 아파트를 떠나고 있고,
엘리베이터는 멈추어 있었다. 계단을 걸어 오르는 내게 정전의 현실감이 느껴졌다.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가려던 곳을 떠올렸으나 막상 가려니 이것저것 걸리는 게 많았다.
식사나 하려고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봤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다.
내 바깥에 머무는 세상과 관계해 보려는 생각을 버렸다.
그리고 가을이 들어서고 있는 오늘 하루를 차분히 생각했다.
떠오르는 곳이 있었다. 거기였다.
차를 몰아 남한산성을 향했다.
산성 동문쯤에서 좌회전하여 산기슭을 타고 올랐다.
장성한 떡갈나무숲 사이로 난 1차선 길을 굽이굽이 돌아 마지막 산모롱이에서 차를 세웠다.
내가 바라던 산사가 눈앞에 나타났다.
산중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산사는 호젓하다.
가끔 이 산사를 찾았던 가장 큰 이유가 이 호젓함 때문이었다.
가을이 오면 호젓한 곳에 와 나는 내게 물어볼 게 있었다.
그때는 왜 그랬는지, 그때는 왜 그 길을 버리고 이쪽 길을 택했는지,
그때는 어렵고 힘든 길인 줄 뻔히 알면서 왜 오솔길같이 좁은 이 길을 가고 있는지.
가을이 오면 어느 조용한 곳을 찾아 나와 함께 오래 걸으면서 내 질문에 대한 답을 듣고 싶었다.
나는 그늘 길을 걸어 산사가 더 가까이 바라보이는 나무 벤치에 앉았다.
산사의 마당엔 아주 오래된 은행나무가 있고, 늘어진 가지 사이로 보이는 장독대엔 여러 개의 항아리들이 빛나고,
그 뒤엔 여름 고비를 넘긴 나무들이 묵상에 빠진 듯 서 있었다.
장독대 아래 붉은 봉숭아꽃을 바라보며 나는 나와 단둘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시작했다.
처음은 주로 인생의 고비고비에서 있었던 일을 내가 내게 묻는 편이었고,
나중으로 갈수록 주로 내가 내게 그 대답을 듣는 그런 대화였다.
대답하기 힘든 질문을 할 때면 저쯤 바위까지 걸어가 마음을 다잡거나 발 앞의 돌멩이를 툭툭 굴리며 간신히 입을 열곤 했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솔직한 대답을 찾기 위해 산사의 마당으로 내려섰다.
깊숙한 우물 앞에 서 보거나 탑 앞에 서서 합장을 해보거나 뜰에 피는 늦은 나무수국꽃을 한참 바라보기도 했다.
산사는 내가 할 대답을 귀띔해 주기도 했지만 때로는 그 대답을 더욱 멀게 만들기도 했다.
인생이란 꼭 명료한 대답을 준비하고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님을 일깨워주기라도 하듯.
우리의 대화는 길었다.
질문은 선명했지만 그 대답은 항상 명쾌하지 않았고, 변명하듯 나의 대답은 턱없이 길었다.
점심때가 오래 지나도록 나는 미진한 대답을 찾기 위해 쑥부쟁이 꽃이 피는 풀섶이며,
돗자리에 말리는 익은 고추를 들여다보며 은행나무 그늘을 드나들었다.
나는 어느쯤에서 그칠 줄 모르는 대화를 산사에 남겨두고 차에 올랐다.
시동을 걸자, 마치 끊어졌던 전기가 들어오듯 내 몸이 천천히 밝아지고 있었다.
차를 몰아 산사를 나섰다.
그동안 나는 시간이 나면 그것을 메우기 위해 서점이나 미술관이나 친구들을 먼저 떠올렸다.
언제나 나보다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나를 돈독히 하려 했다. 그러나 가을이 오는 오늘,
모처럼 나는 나와 오래 이야기했다.
집에 도착하면 전기가 들어와 있겠다.♧
첫댓글
그 동낸 아파트 관리소에서
가가호호 문자를 날리나 봅니다
우리는 방송으로 모든 전달이 되는데
전기가 없다고 생각하면
세상의 암흑이 아니려나요
요즘엔 농장에 삶이 아니고
아파트에 생할인가 봅니다
대전에 가끔씩은 들리고
신혼 살림살이 가구들은
아직도 이곳에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