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거라 삼팔선아 다시 오마 한강수여
1950년 6월 25일 모두 평화롭게 잠든 야간을 이용하여 급습한
공산괴뢰군은 탱크와 비행기를 앞세워 거침없이 진군, 서울을
함락하고 국방군을 낙동강 이남으로 패퇴시켰고 상황이 불리하자
개입한 유엔군의 도움으로 전진 압록강까지 진군하였지만 하늘도
이 땅을 버렸는지 갑자기 개입한 중공군의 가세로 눈물을
머금고 1.4후퇴, 남쪽으로 밀리던 중 젊은 학도의용군들 무명의
용사들이 내던진 몸을 방패로 간신히 전선을 서울 북쪽에 형성하고
있다. 이름없는 젊은 청년학도들이 흘린 뜨거운 피는
조국의 산하를 붉게 물들이고 있고 고착된 전선은 병사들의
목숨만 요구할 뿐 지리한 쌍방간의 공방만 계속되던 때이다.
1952년 4월 봄비가 아침부터 ‘주룩주룩’ 내리는 부산 자갈
치 시장에는 오후되자 몰려든 피난민들로 발디딜 틈도 없이
북새통이고 팔도 사투리가 뒤섞여 얼마나 시끄러운지 가는
귀 먹은 사람도 조금만 신경쓰면 다 알아 들을수 있게 아수
라장이고 여기저기서 물건을 흥정하는 거친 소리, 악을 쓰며
외쳐대는 장사꾼들의 소리가 비행기 소리보다 크다.
좁은 통로 사이 따라 판자로 지어진 허름한 학고방들인 상가
들이 양편으로 일자를 그리며 늘어서 있고 상가 사이에 비포
장된 길로 물건을 사러온 행인들이 지나가며 힐끗거린다.
순대국밥 집을 하는 평강 아주머니, 건너편에는 미군 기지에
서 몰래 빼온 군복을 헐값에 사 시커멓게 물들여 파는 노처녀
보라, 주로 됫박 쌀을 팔며 간혹 시장 상인들을 ‘종종’ 웃기며
팔푼이 역을 하는 쌀가게 과부 참이,그 밑에서 심부름하며
살고 있는 청화지.
모두들 거친 전쟁의 상흔들이 마음에 깊이 박혀 있고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쌓여 좀처럼 웃는 일이 없고 늘 한숨만,
울적한 날이면 모여 소주 한잔에 시름을 잊어버린다.
평강아주머니는 고향이 황해도인데 1.4후퇴때 야반도주하다
남편 아이 둘 모두 괴뢰군의 총탄에 이슬이 되었고 단신으로
죽을 고생해가며 부산까지 와 순대국밥집을 차리게 되었고,
노처녀 보라는 서울 중학교에서 영어 선생을 하던 중 발발한
전쟁으로 인하여 집에도 못가고 피난을 하여 부모님과 형제
자매들 소식을 모른 채 시장 바닥에서 노숙하던 중 참한 색시의
딱한 사정을 듣게 된 평강아주머니의 도움으로 건너편에서
옷가게를 하게 되었던 것이고-영어를 조금이나마 알기에-
과부 참이아주머니는 남편과 아들 둘 모두 전쟁에 나가 낙
동강 전선에서 전사하고 달랑 사고무친 홀로 남게 되었다.
어느날 근처 빵가게에서 빵을 훔쳐 달아나던 어린 청화지가
자신의 가게앞에서 붙잡혀 몹시 심하게 맞고 있던 것이 안돼
보여 자신이 빵값을 물어 주고 죽은 아들대신 자기 딸로
호적에 입적시키고 알콩달콩 살고 있는 것이다.
오후가 되자 복잡거리던 시장은 약간 한산해지고 어디서 나타
났는지 낡아 빠진 리어커에 커다란 베니어 합판을 언지고 그
위 몽키, 뺀치, 못 등 잡다한 물건과 남녀 속옷, 스타킹등을 실은
모네타란 홀아비가 큰 가위를 오른손에 잡고 ‘쩔렁’거리고 왼
손은 리어커를 잡으며 멋지게 각설이 타령을 부르며 지나가고
있다. 모두 팔자 사나운 피난민이어 전부터 잘 아는 사이였고
그 중 보라와 모네타는 연분이 맞았는지 세칭 말해서
좀 찐한 사이다. 가위소리 나자 가게안에서 ‘빼꼼’ 내다본 보라
에게 모네타는 쓸적 윙크를 멋들어지게 하고 더 큰 소리로
각설이 타령을 구성지게 부른다. 봄비에 질펀한 길에는 여기
저기 물이 고여 흥건해 졌고, 비가 오니 마음까지 뒤숭숭해진
평강여사 모두들 장사 접고 자기집에서 소주 한잔하자고 부른다
늘 비는 이렇게 모든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잊지 못 할 추억
되새기게 한다. 그 소리 들리자 얼른 보라는 지나가는 모네타를
세우며 날도 궂고 장사가 안되니 이 판에 술이나 한잔 하자며
온 몸 비틀며 애교까지 부리며 모네타를 유혹한다.
모두 가게는 텅텅 비워 놓고 평강여사 순대국밥집에 모여 걸지게
입담을 곁들이며 소주 한잔하며 애환을 달래고 있다.
중앙 연탄불위에는 큰 양은 냄비가 놓여 있고 그 안에는 평강여사
먹다 남은 순대들이 국물에 빠져 아우성을 대고 있다. 노랭이라면
아주 서러워할 정도로 노랭이인 평강여사 어찌 신선한 순대를 내놓
을 리가 있겠는가. 허지만 삶에 찌든 그들은 그것 조차 고맙고 늘
먹다 남은 순대가 있으면 모두 불러 잡탕을 만들어 내놓는 평강
노랭이가 그저 고맙기만 하다.
소주 몇 잔이 오가자 홀아비 모네타 어제 미군부대 앞 쓰레기장
에서 발견한 고물 녹음기를 밤새 고쳐 혹시 오늘 팔수 있을까라는
기대로 가져 나온 녹음기 들고 와 한곡 트는데 테이프에는 구성진
뽕작이 그칠줄 모르고 나오고 있다. ‘가거라 삼팔선’ ‘눈물 젖은 두
만강‘ 등 심금을 울리는 곡들 그렇잖아도 울적하던 참 모두들 가족
형제들이 생각나는지 눈물, 콧물 뽑아내는데 정말 수돗물 새는 것
같이 끊임없이 흘러 내린다.
늘 상 소주 한 잔 마시면 밤낮 구별없이 두다리 ‘쭉’ 뻗고 서방이름
자식이름을 목놓아 부르면서 대성통곡하는 평강여사 오늘도 별반
다름없이 소주 한잔 들어가자 벌써 울려고 눈 주위가 붉어지고,
두고 온 부모 때문에 늘 후회스러움으로 사는 노처녀 보라는 머리
를 쥐어 뜯어 산발이 된 머리칼 사이로 휑하니 빛잃은 동공만이
서글프게 하고, 참이여사 전쟁터에서 죽은 남편 자식 생각에 ‘이 미
친 놈의 전쟁은 언제 끝나노, 내서방 내 아들 돌리둬‘ 하며 허공
으로 삿대질을 해가며 울그락푸르락 누구하고도 싸울 태세이다.
함경도에서 부모와 같이 피난오다 개성 근처를 지날 무렵 유엔군
의 폭격으로 부모, 형제들의 생사조차 알 길없고 문전구걸 노숙을
전전하다 흘러 들어온 부산, 갈 곳없어 영도다리밑에서 거적떼기
속에서 지내며 동냥으로 살아온 청화지는 어머이 아버이가 보고파
구석진 자리에 앉아 훌쩍이며 ‘오마니 아바이’ 하면서 순대만 줄
기차게 먹고 있다. 참으로 가슴 아픈 현실이고 전쟁의 아픈 상처들
이다. 어이 모두 그렇게도 박복한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분위기가 자꾸 뜻하지 않는 방향으로 돌아가자 급기야 모네타 테
이프를 바꿔 “ 굳세어라! 금순아” 란 곡이 흘러 나온다.
취한 참이 여사 춤추러 일어나다 술탁을 건드려 곂에 있던 모네타
옷이 김치 국물로 흥건히 젓자 이때가 기회다 싶은 보라 얼른 가
게로 뛰어가 꿍쳐둔 티셔츠와 바지를 가져와 입히고,질세라 평강
여사 마음에 있던지 얼른 수건으로 정성껏 닦아 준다. 그것을 본
참이여사 답답하다 쌀가게를 하니 줄 것이 할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평강여사 흥이 돋꺼 졌던지 빈 술병에 수저를 꼽고
멋지게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 부두에 목이 메어 불러
봤다 외쳐도 봤다.... ‘ 부르자 참이여사 보라 노처녀 일어서 춤을
추고 모네타란 홀아비 등허리에 신문지 넣고 곱새춤을 추며 모두
를 웃기게 한다. 춤을 추던 중 기회만 엿보던 노처녀 보라는 얼른
허리춤에서 꺼낸 꼬기꼬기하게 접은 천원 짜리 지페 모네타
주머니에 넣어주며 끝나면 어디에서 만나자고 귓속말로 하며 웃고,
이것을 본 평강여사 질세라 천원짜리 두장 모네타 주머니에 넣어
주며 자기와 만나자고 손까지 잡고, 참이여사 천원짜리 다섯장
손에 쥐어 주며 자기와만 만나자고 요염한 눈짓을 보낸다.
모두가 정에 굶주리고 생활고에 힘들어 하는 행동들이다.
서로가 붙잡고 부르스며 탱고며 지르박이며 온갖 재주 다 보이고
순대국집은 카바레 보다 더 멋진 사교장으로 변해 가고 술탁위에
쌓여진 술병만 외로이 줄지어 있다.
누구를 원망하랴 누구를 한탄하랴 이 땅에 태어난 죄 다른 나라 사람
들 한번도 겪어 보지 못한 전쟁 선조부터 꾸준히 달고 살았으며
그것도 부족하여 살뜰한 가정 다 박살내 버리고 마지막에 끝없는
한만 남겨 왔던 우리의 회상하고 싶지 않은 역사 아니던가.
하늘님이시여! 정말 하늘에 계시거든 우리의 바람대로 우리의 소
망대로 평화롭게 옹기종기 오순도순 살게 하여 주옵소서.
사람 목숨 100년도 되지 않은데 어이하여 그렇게 감당하기 힘든
시련의 세월만 남겨 주시나이까
돌보아 주소서 하늘님이시여! 그저 바라옵건데 사고무친 혈혈단신
남은 이 갈 곳 없는 여인네들 마지막 삶이라도 여유롭게 풍족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두 손 모아 간절히 작가도 빌어 본다.
내리던 비도 그치고 어둠도 찾아와 자갈치 어수선한 길을 다정히
비추고 가까이 보이는 야트막한 산에는 늦게 핀 개나리가 활짝
미소 지으며 큰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서글픈 피난민들
얼켜 사는 부산 자갈치 시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