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서곡(序曲)은 눈 녹아 흐르는 시냇물, 그 시냇가에 터질 듯 부풀어오르는 버들강아지의 보송보송 솜털 같은 봉오리에서 시작하여 매화와 개나리, 그리고 진달래꽃의 개화(開花)로 이어지지 않나 싶다.
그러나 우리로 하여금 본격적으로 무르익는 봄철임을 확실히 느낄 수 있게 하여주는 꽃이 있다. 곧 벚꽃이다.
신문이나 방송매체(放送媒體)에서는 마치 기상예보의 장마전선이나 기압배치도, 혹은 높은 산의 등고선 모양과 같은 도표(圖表)에 의하여 지역별로 벚꽃이 만개(滿開)하는 시기를 떠들썩하게 소개한다.
그야말로 제주도에서 시작한 벚꽃전선이 남해안에 상륙하여 서울지방에 이르기까지의 시기(時期)를 상세히 알 수 있도록 하여준다.
새해 새봄은, 이름하여 벚꽃축제로 무르익는 것이다. 가장 오랜 전통적인 벚꽃축제의 하나로는 진해군항제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날 등산모임의 산행을 할 때, 한 친구가 윤중제에 가서 흥겨운 시간을 보내긴 하였지만 엄청난 인파(人波)에 고생했다는 얘기를 했다. 나는 그 때까지만 해도 처음 듣는 얘기라서 도대체 "윤중제"라는 게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더니 여의도에서 펼쳐지는 벚꽃축제라는 대답이었다.
바야흐로 민의(民意)의 전당(殿堂)이라 일컫는 국회의사당이 있는 우리나라의 심장부(心臟部)에서도 벚꽃축제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인지 그 전년도 4월인지 아무튼 어느 일요일, 모TV방송국에서 아침 뉴스시간의 첫 소식으로 벚꽃의 개화(開花)와 그 시기에 대하여 서울지방에 이르기까지의 내용을 아주 소상하게 방영(放映)한 일이 있었다.
나는 방송국에 전화를 했다.
"우리나라의 여러 가지 시급하고 중요한 현안(懸案)이 많이 쌓여있는 상황인데 공공매체(公共媒體)인 방송국에서 아침 뉴스에, 그것도 첫 소식으로 벚꽃 얘기를 오랜 시간 장황하게 방영하는 것에 대하여 시청자로서 의견이 있다. 휴일을 맞아 봄소식을 전한다는 차원에서 이해는 되지만, 그렇다고 하여도 벚꽃은 일본의 나라꽃으로 알고 있는데, 공영방송에서 아침뉴스 첫 머리에 그렇게 큰 비중을 두고 다루어야 할 만큼 중요한 사항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방송국의 대답은 이러했다.
"벚꽃의 원산지가 어디인지 아시는지? 왕 벚꽃나무의 원산지가 우리나라 제주도이고, 그것이 일본으로 건너간 것이며, 그들이 저들의 국화(國花)로 삼은 것뿐이다. 그러나 첫 번째 톱뉴스로 삼았다는 사항에 대하여는 계절적인 요인(要因)을 감안했던 것인데, 차후 시청자의 의견을 참고하겠노라" 고.
방송국의 답변이야 틀린 곳이 없다.
그러나 내 마음속 무엇인가 마뜩찮은 기분은 가셔지지 아니했다.
나는 벚꽃에 대한 전문가는 아니다.
다만 그 꽃은 나무전체의 꽃이 동시에 활짝 피었다가 일시에 모두 함께 지기 때문에 일본의 사무라이(무사도)정신을 상징(象徵)한다하여, 그들이 국화(國花)이상의 의미를 두고 특별히 좋아하는 꽃이며, 그네들이 우리나라를 식민통치할 때 우리의 궁궐(창경궁)에 동물원을 만들고 벚꽃이 처음부터 그렇게 있었는지 그들이 조성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아무튼 벚꽃놀이를 벌이어서 우리네 백성들로 하여금 즐기고 놀게 유도(誘導)한 것이 벚꽃놀이의 시초(始初)가 아닐까 하는 점이다.
만약 그러하다면, 창씨개명(創氏改名)이나 얼마 전에 철거한 조선총독부 건물(우리나라의 대궐을 정면에서 가로막아 기하학적(幾何學的)으로 매우 치밀하고 정교한 설계에 의하여 지붕의 둠 부분이 일장기/日章旗를 상징하는 건물)이나 북한산 등, 전국 각지의 산 정수리에 박았다는 쇠말뚝들과 맥락(脈絡)을 같이하면서, 우리 민족의 맥(脈)을 끊고 그 혼(魂)과 얼을 제압하려는 저들의 교활하기 짝이 없는 악랄한 저의(底意)에서 비롯된 놀이문화가 아닐까하는 의구심(疑懼心)을 떨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민족의 자존(自尊)과 역사를 상징하는 궁궐을 온갖 금수(禽獸)들이 활개 치는 동물원으로 유린(蹂躪)하고, 일본정신을 상징하는 벚꽃을 내세운 놀이문화로 우리 백성들을 능멸(凌蔑)하려는 그들의 의도(意圖)가, 비록 건물은 헐리고 동물원은 옮겨졌지만 벚꽃놀이의 맥락(脈絡)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씁쓸한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매년 초여름에 자연농원에서 벌이는 튜립 꽃 축제, 장미 꽃 축제, 가을에 열리는 국화(菊花)전시회 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국지적(局地的)인 행사이고 그리 요란스럽지는 않다.
지방여행을 다니다보면 가로수를 온통 벚꽃나무로 조성하는 곳도 많고, 우리의 유구(悠久)한 역사를 자랑하는 문화유산이 숨 쉬고 있는 옛 신라(新羅)의 고도(古都) 경주에도 어느새 벚꽃이 자리를 차지해 가고 있음을 본다. 이곳에서도 벚꽃축제...
이제, 이런 추세로 이대로의 세월이 흐르다보면 우리의 강산(江山) 방방곡곡(坊坊曲曲)에서 온통 벚꽃축제로 한 계절을 맞고 보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생각한다.
불쌍한 우리 나라꽃.
우리의 애국가 구절(句節)에서나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
관공서(官公署), 군부대(軍部隊)나 학교 화단의 한쪽에 우두커니 심어져 있는 꽃.
국가기관의 공문서나, 혹은 국회의원의 금배지 모형(模型)으로나 쓰여 지고 있는 꽃.
더러는 길가나 공원에 개량종이라 하여 집단적으로 식재(植栽)한 곳이 없는 것은 아니로되. 아무튼 민족의 설음이나 한(恨)을 상징하며 우리의 가슴속에나 피어 있어야 하는 꽃.
그리하여 그 많은 꽃의 축제에도 끼이지 못하는 꽃.
꽃은 아름다운 것.
우리나라에 자생(自生)하는 꽃이나 외국에서 들어온 꽃은 물론이려니와 심지어는 어느 나라의 나라꽃이라 하여도, 그 아름다움과 그 꽃들이 피워내는 계절의 향기나 자연의 모습을 모두 함께 누리며 즐기는 일에 토를 달 이유는 없다.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이 벚꽃 삼천리 화려 강산이 된다면, 그리하여 벚꽃 삼천리 신나는 축제가 이어진다면, 그 때에는 차라리 우리의 나라꽃을 바꾸던가 아니면 애국가를 바꾸던가 하는, 그런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이다.
혹자는 국가와 국가의 벽이 없어져 가는 세계화라는 현 시대의 흐름을 도외시한 속 좁은 소견이라고 나무랄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제화 세계화의 조류(潮流)를 거슬리자 함은 아니 요, 남의 것도 그 좋은 점은 받아들여 우리의 것으로 소화해 내고, 우리의 좋은 것은 더더욱 갈고 닦아서 세계 속의 우리 것으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 우리나라 입장에서의 세계화의 참뜻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러한 차원에서라도, 현재로써는 일본을 상징하는 꽃으로 그 축제의 연원(淵源)도 모호(模糊)한 채로 전국 각지에서 앞 다투어 대규모 벚꽃단지를 조성하고, 해마다 벚꽃축제를 국민적인 관심과 참여를 유도(誘導)하듯 요란스레 벌이는 것은 무언가 균형감각을 상실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아울러 벚꽃축제라는 것이 혹시라도 앞에서 말한 일본의 식민통치시절 놀이문화로써의 악의적(惡意的)인 의도(意圖)와 연관(聯關)이 있는 것이라면, 더더구나 우리의 민족적 자존(自尊)을 스스로 훼손하는 것은 아닐 지에 대하여도 한번쯤은 깊이 성찰(省察)할 필요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다만 벚꽃이 일본의 나라꽃이라 해도 다른 꽃들과 어우러진 자연상태 있는 그대로, 또는 축제라는 이름 아래 야단법석을 떨기보다는 전체적으로 화사하게 조화를 이룬 꽃 자체를 봄 한철 음미하면서 보고 즐기는 것이라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란 것이란 생각을 하여본다.
*참고사항: 문헌(文獻)에 의하여 벚꽃 축제가 우리 나라의 고래(古來)로부터 이어져왔는지는 모르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우리의 일상에서 점점 소원(疎遠)해지는 듯한 우리의 나라꽃에 대하여 그 관심과 애정을 나 스스로에게도 다짐하고 싶은 뜻에서 이 글을 쓰게되었다.
(진해군항제는 1950년대에 처음 시작되었다 함.)
첫댓글너무 국수적인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다고 봅니다. 벗꽃이나 철쭉꽃 등은 거의 동시에 피었다가 며칠내에 지기도 하지만 군락을 이루어 대규모로 피기 때문에 축제(여기서의 축제는 관람씨즌 정도로 보면 됨)를 벌리지만, 무궁화는 여름내내 피고 집단적으로 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정이 다른 것이지요.
첫댓글 너무 국수적인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다고 봅니다. 벗꽃이나 철쭉꽃 등은 거의 동시에 피었다가 며칠내에 지기도 하지만 군락을 이루어 대규모로 피기 때문에 축제(여기서의 축제는 관람씨즌 정도로 보면 됨)를 벌리지만, 무궁화는 여름내내 피고 집단적으로 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정이 다른 것이지요.
모 사단장이 모찌떡은 일본놈들 떡이기 때문에 못먹게 했다는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너무 국수주의적 입장을 취하는 것은 일종의 열등감의 발로가 아닐런지요?
맞아요. 글쓴이가 국수를 좀 좋아하거든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