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 리비아 바르디아 시가지 전투에서 적진을 향해 돌진하면서 군인정신을 보여주고 있는 호주 6사단 장병들.
제2호주 정예군 소속 6·7·8·9사단 맹활약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끈 몽고메리도 극찬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과 영국, 그리고 독일 등 여러 국가 부대들의 활약이 영화나 소설·드라마를 통해 잘 알려졌지만, 호주부대의 활약은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대중들의 인식과는 별개로 호주군은 연합군 승리에 적잖이 기여했다.
2차대전에서 활발하게 임무를 수행한 호주부대는 제2호주 정예군(AIF·Australian Imperial Force) 소속 제6·7·8·9사단이었다.
6사단은 1941년 1월 당시 이탈리아의 식민지인 리비아에 주둔하고 있던 이탈리아군과 싸운 바르디아 전투에서 처음 실전에 참가했다. 전투가 벌어진 지 이틀 만에 부대는 130명의 전사자와 320명의 부상자를 냈지만 적군 포로를 무려 4만4400명이나 잡았고, 260문의 포와 130대의 전차를 노획했다. 얼마나 많은 전과를 올렸는지 전투가 벌어진 이틀째 밤에 일부 이탈리아군이 항복하러 오자 호주군 장교가 “지금은 항복한 병사들까지 처리할 시간적 여유가 없으니 내일 아침에 다시 오라”고 돌려보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6사단은 1941년 1월 22일 리비아의 항구도시 토브룩을 점령하기 위해 진격했으며, 베다 폼에서 이탈리아 제10군을 패배로 몰아넣는 데 일조했다. 이후에는 그리스와 크레타 전투에 참여했고, 뉴기니아에서는 일본군과의 전투에도 참여했다.
7사단의 활약도 이에 뒤지지 않는다. 7사단 소속의 1개 여단이 9사단과 함께 토브룩 방어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7사단의 나머지 병력은 1941년 6월부터 7월 사이의 비시 프렌치 시리아 침공작전에 투입됐다. 이 작전은 2차대전 중 나치 독일의 점령 아래 있는 남부 프랑스를 1940년부터 1944년까지 통치한 비시 정권이 장악했던 시리아-레바논 식민지에 대한 연합군의 침공작전이었다. 이후 7사단은 뉴기니아와 보르네오 전투에서 1942년 8월부터 1945년 8월까지 활약했다. 8사단은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에서 전투에 참여했으며, 사단 병력 중 상당수가 1942년 2월 일본군에 포로로 잡혔다.
가장 뛰어난 전공을 세운 부대를 꼽자면 단연 9사단이다. 일단 9사단은 2차대전에서 다른 호주 사단들보다 훨씬 많은 전투에 참여했다. 1941년 4월부터 10월까지 적 포위망에 갇혀 있던 토브룩을 방어하는 작전의 중심에 섰던 9사단은 방어작전에서 3164명의 사상자가 나오는 피해를 입었다. 이집트 북부 엘 알라메인에서 벌어졌던 두 번의 전투에도 참여했다. 몽고메리 장군이 지휘하던 2차 전투에서는 북쪽에 자리 잡고 있던 이탈리아 트렌토 사단과 독일 제164사단에 타격을 가해야 하는 어려운 임무를 맡았지만, 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덕분에 독일은 그곳에 증원 병력을 보낼 수밖에 없었고, 그로 인해 몽고메리 장군은 자신이 계획했던 슈퍼차지작전을 실행에 옮길 수 있게 됐다.
엘 알라메인에서 4개월 넘게 이어진 전투에서 9사단은 어떤 부대보다 치열하게 싸워 또다시 사상자가 5809명에 달하는 손실을 봤다. 이때의 일을 상기하면서 몽고메리 장군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벌어진 날 아침 “하느님, 호주 9사단이 지금 우리 옆에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활약 덕분에 9사단은 2차대전 당시 4개 호주 사단 중 가장 많은 훈장을 받았다. 또 7명에게는 영국과 영연방 국가 군인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무공훈장인 빅토리아 십자훈장이 수여됐고, 그중 6명은 사후에 훈장을 받았다.
흥미로운 것은 2차대전 발발과 함께 제2호주 정예군이 조직됐을 때 새롭게 만들어진 4개 사단이 모두 부대 마크에 호주 동물을 채택한 점이다. 6사단은 캥거루, 7사단은 웃는 물총새(사람 웃음소리처럼 기이한 울음소리를 내는 호주 산 새), 8사단은 에뮤(호주에 서식하는 대형 조류), 9사단은 오리너구리를 마크에 채택했고 모든 동물을 호주의 아이콘인 부메랑 위에 새겨 마크의 주인이 호주군임을 분명하게 나타냈다.
정리=김가영 기자/자료=‘2차 세계대전 시크릿 100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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