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1075) - 서울의 봄을 아시나요?
지난주에 개봉된 영화 ‘서울의 봄’을 숙연한 마음으로 관람하였다. 영화는 1961년 5‧16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후 18년간 장기 집권한 박정희가 19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시해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후의 권력공백기인 1979년 12월 12일 밤에 일어난 전두환 보안사령관 주도의 숨 막히는 군사반란과정을 밀도 있게 다룬 최근의 화제작이다.
공무원으로 재직 중 업무관련 연수프로그램으로 일본에 머물고 있던 그날 밤 숙소의 TV를 통하여 경복궁 앞 광화문 일대에 장갑차가 진을 친 삼엄한 장면을 목도하며 절망에 빠졌던 일이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당시 불투명한 정국에 대한 전망을 묻는 일본 측 인사에게 내가 언급한 내용, ‘한국인의 일반적인 기대는 오랜 억압통치에 짓눌린 박정희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민주헌정이 순조롭게 등장할 것이다.’ 시민 모두의 바람은 이른 바 서울의 봄. 그런 희망을 물거품으로 만든 12‧12 군사반란은 온 국민을 절망으로 몰아넣은 악몽으로 뇌리에 남아있다.
5‧16쿠데타가 일어난 1961년 봄, ‧나는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그 전해 4‧19민주혁명을 목도한 열정의 청소년에게 5‧16쿠데타는 승복하기 어려운 반민주행위였는데 이에 더하여 1972년에 등장한 유신체제로 온 국민이 얼마나 힘든 세월을 겪어왔던가. 이 영화를 연출한 김성수 감독도 고등학생시절에 겪은 12‧12의 반민주적 폭거를 가슴에 담아두었다니 고마운 마음이다. 30여 년 전 살고 있던 지역의 일간지에 기고한 글에서 ‘우리나라의 건국 이래 변함없는 정치이념은 민주한국의 올바른 구현’이라며 민주실천시민의식의 함양과 정당한 규칙을 깨치는 사고나 행동양식을 자제할 것을 강조한 적이 있다. 반민주적 쿠데타의 악몽을 일깬 영화, ‘서울의 봄’에 박수를 보낸다.
영화 서울의 봄, 한 장면
* 영화 ‘서울의 봄’에 관한 여러 평론중 하나를 덧붙이니 참고하시라.
‘서울의 밤, 서울의 봄
서울의 봄, 참 잘 만든 영화다. 기록영화 느낌에서 어느새 극적으로 고조되고, 캐릭터의 디테일에 빠져드는 순간 실제 인물이 상기되며 아찔해진다. 섬세한 조명과 음향마저 의도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 능숙한 편집, 알맞게 친절한 자막과 그래픽에, 주연부터 조연까지 그 많은 배우의 연기가 저마다 빛을 발하며 빈틈없이 맞아 들어가, 그날 그 자리로 박진감 있게 끌고 들어가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참 불편한 영화다. 선과 악의 선명한 대결이라는 판을 펼치고 그 악에 탐욕, 야비, 잔인, 기만, 그리고 징그러운 가벼움까지 온갖 혐오스러운 것을 다 버무려 넣고는, 악이 어떻게 승리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게다가 이 9시간이 이후 어떤 참혹한 역사로 이어졌는지를 보는 내내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그들이 영화 안에서만 승리한 게 아니라 그날의 성공을 기념하는 잔치를 벌이며 천수를 누렸음을 알기에, 불편함은 점차 울화로 차오른다.
영화는 어떤 인물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었던 순간들이 있음을 끊임없이 보여준다. 하지만 그 역시 울화를 더할 뿐이다. 이태신(장태완 수도방위사령관 역)에게 부질없는 기대를 하게 되지만, 그는 늘 혼자고 저들은 떼거지다. 온갖 노력이 다 실패한 뒤 전두광(전두환 보안사령관 역)을 향해 “당신은 대한민국 군인으로서나 인간으로서나 자격이 없어”라는 말을 비장하게 던지는 게 고작이다. “백이숙제처럼 훌륭한 사람은 고생만 하다가 굶어 죽고, 잔인무도한 도척은 하고 싶은 대로 살며 천수를 누리다니, 도대체 하늘의 도가 존재하기는 하는 것인가?” 2000년 전 사마천이 던진 의문이 여전히 와 닿는다.
하지만 대세에 편승해 아무도 맞서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을 것이다. 울화를 증폭시키는 인물들의 극점에 대통령 최한규(최규하 대통령 역)가 있지만, 서명 아래에 굳이 시간을 적음으로써 계엄사령관 체포가 동의 서명보다 앞섰다는 기록을 남겼다. 무모한 항전, 사소한 기록 덕분에 그나마 훗날 저들의 범죄가 입증될 수 있었다.’(2023.11.28. 경향신문, 송혁기의 ‘서울의 밤, 서울의 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