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감재
어린이날과 겹친 오월 첫째 일요일이다. 나만의 호젓한 산길을 걸으려고 길을 나섰다. 집 앞에서 101번 시내버스로 마산역 광장으로 나갔다. 광장 모퉁이 진동 방면으로 가는 농어촌버스 가운데 서북동으로 가는 73번을 탔다. 합성동 시외버스터미널과 삼성병원을 둘러 어시장을 지났다. 댓거리를 거쳐 밤밭고개를 넘어 교외로 나갔다. 시야에 들어온 차창 밖 산들은 신록이 싱그러웠다.
진동환승장에서 멀지 않은 지산으로 향했다. 지산은 진북 면소재지다. 면소재지에서 덕곡천을 따라 올라갔다. 산골 농지에 심겨진 보리들은 이삭이 패어 여물어갔다. 벼농사를 지을 준비로 무논엔 볍씨 상자를 깔아 모판을 기르는 중이었다. 금산마을과 학동마을을 거쳐 종점에 닿았다. 내가 가끔 들린 서북동인데 그때마다 혼자였는데 산행 차림으로 나선 중년 부부 한 쌍과 같이 내렸다.
중년 부부는 마산에서 왔다고 했는데 서북동이 초행으로 서북산을 등정할 생각이었다. 나는 여러 차례 서북동을 들려도 임도로만 걸었지 서북산은 한 번도 오르지 않았다. 내가 서북산을 으로지 않음은 산이 가파르고 산등선이 험해서다. 나는 이제 평지를 걷는데 익숙하지 높고 험한 산은 오르지 않을 셈이다. 중년 부부는 서북동 마을 안길을 둘러보러 가고 나는 임도를 따라 올랐다.
임도 들머리는 종파가 다른 작은 절이 두 개다. 왼쪽은 가야사고 오른쪽은 구원사로 다음 주말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봉축 연등이 내걸려 있었다. 계곡에는 계류가 자연친화적으로 흘러가도록 하는 토목공사를 하고 있었다. 길섶에 자라는 취나물이 보여 몇 줄기 뜯었다. 산허리 T자 갈림길에서 감재로 향했다. 반대 방향은 부재인데 그곳 갈림길에서 의림사와 미천마을로 내려선다.
수종 갱신지구를 지나다가 취나물을 몇 줌 뜯었다. 감재에 이르니 금산마을 편백나무 숲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왔다. 나는 서북산으로 오르는 감재 산등선에서 고사리를 좀 꺾었다. 내보다 먼저 누군가 고사리를 꺾어간 손길이 지난 흔적이 보였다. 고개를 넘으니 여항산 둘레길이었다. 봉성저수지에서부터 시작해 봉화산 허리를 돌아 서북산과 여항산에 걸쳐 뚫린 길고 긴 둘레길이다.
법륜사 방향이 아닌 좌촌주차장으로 가는 길을 택했다. 길섶에 보이는 취나물과 두벌 두릅 순을 조금 땄다. 벌깨덩굴은 엷은 보라색 꽃을 피우고 있다. 고개를 드니 봉화산 산등선이 시야에 들어왔다. 왼편으로는 저 멀리 여항산 바위봉우리가 아스라했다. 서북산에도 가보지 않았지만 여항산도 마찬가지다. 서북산보다 산세가 더 험한 여항산이라 나는 바라만 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산림 도로 담당 부서에서 정비가 잘 된 길섶에는 늦은 봄 피는 야생화들이 더러 보였다. 아까 본 벌깨덩굴은 산나물로도 먹기에 좀 따 모았다. 늦게까지 핀 콩제비꽃을 보았다. 잎줄기가 미나리 사촌쯤 되기에 미나리아재비로 불리는 노란 꽃들도 만났다. 그늘진 습지를 좋아하는 미나리냉이의 하얀 꽃들도 보았다. 가을에 피는 쑥부쟁이를 닮은 개쑥부쟁이는 연보라색으로 피어났다.
인적 없는 숲길을 걸어 봉성저수지까지 가질 않고 별천으로 가는 산비탈로 내려섰다. 송홧가루가 가득 얹힌 국수나무 군락을 헤치고 내려가니 비비추가 보드라운 잎을 펼쳐 자랐다. 높이 지란 소나무 그루 아래 취나물이 있어 몇 줌 뜯어 보탰다. 취나물은 이번 주가 지나면 쇠어서 산나물로써 가치가 떨어질 듯했다. 숲을 빠져나가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에서 이마와 팔뚝의 땀을 씻었다.
폐교가 된 별천분교장에는 어린이날을 맞아 외지에서 들어온 학부모와 아이들이 놀이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지병 약수터에서 샘물을 받아먹고 가야 읍내로 가는 농어촌버스를 탔다. 봉성에서 한우국밥으로 점심을 때우고 함안역에서 무궁화호를 탔다. 아침에 목포를 출발해 부산 부전으로 가는 열차였다. 등받이에 기대어 잠시 조는 사이 지하터널 구간을 지나 창원중앙역에 닿았다. 19.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