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전 상서! 부모님! 한동안은 아주 긴 틈인 것 같습니다, 지난가을 선산을 다녀오고 여태 침묵했습니다, 말부터 내놓고 실천하지 못하면 그게 두려워 아직 피우지 못한 꽃봉오리처럼 기다립니다, 머지않아 잔설이 다 녹고 땅기운이 아지랑이를 피울 때 참았던 그리움 앞세우고 다니러 가겠습니다,
사랑하고 보고 싶은 부모님! 이런 그리움이 기억 속에만 있다는 게 가끔은 가눌 수 없이 슬픕니다, 현존에 없는 이 공허함, 시간이 가도 변색될 수 없는 그리움의 색깔, 비 온 뒤 무지개처럼 제 가슴을 휘감고 놓아주지 않을 때 그 따듯한 그리움에 덥석 안깁니다, 며칠 전 지나갔지만 아버지 기일 날 다녀오지 못하고 가슴속으로 머리 숙여 제 올렸습니다, 그 어떤 것도 나이테가 쌓이면 더불어 연륜의 지혜가 묻어나는 법인데 당신의 장손은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일러 받칠까 말까 했지만 더 이상 침묵하면 못난 아들로 오해받을까 봐 오늘은 일러 받칩니다, 당신의 장손 재산과 대를 이어 받은 그 손자가 제구실을 못하니 기일날에도 집안 누구도 가지 않는 게 아니라 못 갑니다, 왜 인지 아쉽니가, 오는 걸 싫어해서 그렇습니다, 이 일을 어떻게 합니까, 언성을 높이기에는 주변이 창피해서 마음으로 혼자 삭히곤 합니다, 당장 옆에 사는 작은아버지한테도 전화 한번 명절에 세배 한 번 없었다니 이게 말이나 됩니까, 저야 멀리 있어 그렇다 쳐도 전화 한 번 없으니 이게 무슨 도리입니까, 안만 생각해도 이건 인연을 끈 자는 암시가 아니면 더 이상 무슨 이유가 있겠습니까, 더 긴 이야기는 상처만 드릴까 봐 그만하겠습니다, 너무 개의치는 마십시오, 파장은 언젠가 멈추게 되어 있으니까요,
괜히 마음만 아프게 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귀띔은 해야 할 것 같아서, 시간이 가고 가면 언젠가 깨달을 얻겠지요. 인간은 어차피 미약한 존재고 부족한 존재고 다만 의식 있는 자들은 깨어 있는 자들은 세상에서 더 만은 역할을 해야 하겠지요, 모르는 건 죄가 아니니까요, 다만 알면서 그런다면 그건 정말 지울 수 없는 나쁜 짓이니까요, 저는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삶을 답습한 탓에 지금까지 성실하게 검소하게 미움받지 않고 이 나이에도 직장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 번도 남보다 잘났다고 내 세워본 적이 없지만 다행히 알아봐 주시고 인정해 주시는 사람들이 더러 있어서 살아가는데 여간 힘이 되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게 성실하게 살아가는 부모니의 모습을 그대로 답습한 지혜였지요, 이 고마움과 감사한 마음을 가슴 깊숙이 지니고 수시로 꺼내 삶의 지혜로 여깁니다, 비록 촌부셨지만 촌부의 아내였지만 당신들에 삶은 검소했고 알뜰했지요, 필요 이상의 것을 탐하지 않고 화려하지도 초라하지도 않은 삶을 사랑하던 나의 부모님, 십 년이 지났어도 마치 어제 일처럼 생소했던 다만 너무 지독하게 검소한 탓에 어머님이 힘드셨지요, 이제 살만해서 돌아보니 제 마음도 모른 체 하늘나라로 이민 가고 안 계시는 부모님, 한시도 잊어 본 적이 없습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했습니다,
보모님! 이제부터 농장으로 일하러 가야 하는데 거름 퇴비도 펴고 나무 전지도 해야 하고 하는데 왜 이렇게 마음이 내키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유는 정부 정책 사유로 설치해 있던 농막 철거 때문에 지난겨울 기어이 철거하고 말았습니다, 정말 화가 났습니다, 창고에 있던 농기계들이 그대로 내 팽개쳐 저 있고 그것을 덮어 놓았던 비닐 덮개들이 바람에 날려 온 사방에 흩어져 마치 사변이 끝나고 어지러운 세상 같습니다, 누구에게도 피해준 적 없는 앞으로도 그럴 텐데 그것을 철거하라는 정부의 정책은 지금도 이해가 어렵습니다, 악법도 법이라니 철거는 했지만 마음의 상처는 여전히 지울 수가 없을 숙제로 남았습니다, , 언젠가 시간이 흘러 치유는 되겠지만 아직은 너무 아파 내려가기가 서먹해 머뭇거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익숙해져야 하겠지요, 그 땅이 우리 것인 이상 사랑으로 보듬어 줘야 알곡들을 튼실하게 내줄 테니까요, 하여간 그렇습니다,
부모님! 괜히 일러 받쳐 근심만 드린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알 것은 아는 게 근심보다 더 나을 것 같아서요. 화가 미치니 조금 거칠어졌을 뿐 어떤 이유로도 떼 낼 수 없는 게 가족이잖아요, 사랑은 미운 것마저 훈훈하게 앉아 주니까요, 참 작은 형님께서 며칠 전 맹장 수술을 했습니다, 다행히 수술이 잘 되어 퇴원 후 별일 없이 일상에 복귀했습니다, 저도 어제 회사에서 일하다가 허리가 비 긋 하는 바람에 이틀 치료차 휴가를 얻어 오늘 이렇게 여유 있게 부모님께 안부의 글도 올리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이 너무 행복합니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 해마다 들어도 기분 좋은 말인 것 같습니다, , 말만 들어도 봄이 손끝으로 만 저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머님! 어머님의 기일을 즘 하여 다니러 가겠습니다, 그때쯤이면 산천에 꽃들이 지천을 메울 테지요, 생각만으로도 향기가 코끝을 차고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대관령 산자락 왕산 골 산 중턱 양지바른 그곳 눈에 선하니 손으로 만져지는 것 같습니다, 영면하시고 찾아뵙는 그날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봄이 오는 길목에서 막내아들이 이 글을 올립니다, 사랑하고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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