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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야 통치
슥 14:8-11
(슥 14:8) 그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
(슥 14:9)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한 분이실 것이요 그의 이름이 홀로 하나이실 것이라
(슥 14:10) 온 땅이 아라바 같이 되되 게바에서 예루살렘 남쪽 림몬까지 이를 것이며 예루살렘이 높이 들려 그 본처에 있으리니 베냐민 문에서부터 첫 문 자리와 성 모퉁이 문까지 또 하나넬 망대에서부터 왕의 포도주 짜는 곳까지라
(슥 14:11) 사람이 그 가운데에 살며 다시는 저주가 있지 아니하리니 예루살렘이 평안히 서리로다
슥 14:8-11 / 그날이 오면, 예루살렘에서 생명을 주는 샘물이 흘러 나와서, 그물의 절반은 ㄱ) 동쪽 바다로 또 절반은 서쪽 바다로 흘러갈 것이다. 그 물은 가문 여름철에도 마르지 않고 겨울철에도 똑같이 흐를 것이다. (ㄱ. 사해와 지중해를 가리킨다) 9) 그때에는 여호와께서 세상의 모든 백성들을 다스리는 왕이 되실 것이다. 온 세상에 주님말고 다른 주인이 없을 것이며, 온 세상에서 주님 이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10) 유다 땅은 북쪽 끝 게바에서 남쪽끝 림몬에 이르기까지 온 땅이 평야가 될 것이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그 한가운데에 우뚝 솟아 온 땅을 내려다 볼 것이다. 그 도성은 크게 확장되어, 북쪽 성벽은 베냐민땅으로 들어가는 동쪽의 양문에서부터 시작되어서 서쪽의 모퉁이문, 곧 옛 성문이 있던 자리까지 뻗어 나가고, 남북으로는 북쪽의 성벽에 붙은 하나넬 망대에서부터 남쪽끝에 있는 왕의 포도주 짜는 곳까지 뻗어 나갈 것이다. 11) 그 도성에서 마침내 모두가 평화롭고 안전한 생활을 누릴 것이며, 다시는 멸망의 위협을 받지 않을 것이다.
본문은 스가랴가 왕이신 주 여호와 하나님의 통치와 그로 인한 세상의 회복이 이루어질 것에 대한 예언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생수가 솟아나다(8) / 예루살렘에서 생수가 솟아나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르는데 여름이나 겨울에도 끊임없이 흐를 것입니다. 여기서 동해는 사해를 가리키고, 서해는 지중해를 가리킵니다. 이는 성막이나 성전 문에서 해가 떠오르는 쪽을 향하여 서서 방향을 결정하는 히브리인의 관습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전을 기준으로 사해를 앞바다, 지중해를 뒷바다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또한 생수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도에게 베풀어질 성령의 풍성한 은혜를 가리킵니다. 팔레스틴의 시내는 건기인 여름에는 마르고, 우기인 겨울에는 범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서 솟아나는 생수는 마르거나 범람하는 일이 없는 일정한 은총을 누리게 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왕이 되시다(9) / 그날에 여호와 하나님이 천하의 왕이 되어 다스리실 것입니다. 여기서 천하는 하늘과 대조되는 온 땅을 말합니다. 당시 사람들은 그 지역을 다스리는 자는 바벨론이나 페르시아같은 제국이나 그 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날에는 그들이 아무것도 아님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사람들이 많은 신을 하나님이라고 여기며 섬겼을지라도 그날에는 오직 여호와만이 유일하신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 모든 상대적인 것은 사라지고 절대적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만이 홀로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평안이 회복되다(10-11) / 그날에는 온 땅이 아라바같이 된다고 합니다. 아라바는 평지라는 뜻입니다. 실제 아라바는 갈릴리 호수에서 사해를 지나 홍해의 아카바만에 이르는 계곡지대를 가리킵니다. 온 땅이 아라바와 같이 된다는 것은 모든 땅이 평지가 될 것을 말합니다. 평지는 산악 지대가 많은 팔레스틴 지역에서 농사를 짓거나 짐승을 키우기 좋은 곳입니다. 그러므로 온 땅이 평지가 된다는 것은 낙원의 회복을 말합니다. 예루살렘이 높이 들리고, 성문이 세워진다는 것은 원래보다 더 큰 영광을 누리게 될 것과 평안한 처소가 될 것을 말합니다.
적용: 당신은 하나님만이 만왕의 왕되심을 믿고 고백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믿고 고백하는 대로 살아가는지 서로 나누어 봅시다.
< 설 교 >
추수 감사절의 유래와 정신
슥 14:16 / 강성찬 목사
인간을 에덴동산에서 내보내시면서 하나님은 수고하여 땀 흘림으로 땅을 가꾸고 그 식물을 먹으라고 명하셨습니다. 땅을 가꾸어 추수를 하는 것은 인간에게 내리신 하나님의 징계임과 동시에 인간을 살리시고 기쁨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배려였습니다. 수고하는 것은 인간이지만 그 수고를 아름답게 보시고 귀한 열매를 맺도록 모든 조건들을 허락하시는 이는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어리석고 힘없으며 하나님 앞에 늘 부족한 우리에게 생명의 열매를 선물로 주시는 하나님께 우리는 늘 감사할 뿐입니다. 감사는 우리가 어려운 순간에 있을 때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감사는 사람이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잊지 않아야 할 덕목 중 하나입니다.
한 해의 수확을 감사하며 지키는 절기인 추수감사절 시기는 나라와 교단마다 다를 수 있으며 그 기간이 실제적인 추수 기간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영국은 전통적으로 8월 1일을 추수 감사절(Lamas)로 지키고 있고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부활절 후 40일, 즉 승천일(목요일)전 3일간을 추수 감사절로 지키고 있다합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에서는 추수감사절에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기 위해서 농산물들을 진열하거나 상징적으로 전시해 놓고 예배를 드리기도 합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농산물들을 여러 형태로 조형하여 꾸며놓고 예배를 드리기도 합니다. 교회 안에서 이렇게 농산물을 놓고 예배를 드리는 것은 성도들이 그 실물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느끼고 감사케 하기 위한 것입니다.
추수감사주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주신 은혜를 감사할 줄 알되 거기서 그치지 않고 사도 바울이 말한 대로 범사에 감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살전5:18).
추수감사절은 성경에서 유래하여 교회역사 안에서 준수되어진 절기인바 기독교인들이 이를 지키되 그 정신을 바로 알고 지켜야 할 것입니다.
추수감사주일은 성경에서 유래합니다.
인류 초기에 가인과 아벨은 그들이 농사지은 것과 목양한 것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친(창4:1-4)일에도 감사의 의미가 함축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 해의 추수한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는 제사는 오래 전, 즉 모세 시대 때부터 율법으로 제정되었습니다.
추수에 대한 감사 절기로서 초실절이 있습니다.(레23:9-14)
초실절은 그해 하나님께서 주신 곡식 중 처음 익은 곡식 첫 단을 하나님께 드려 모든 만물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니 하나님께 다시 돌려 영광을 드림을 표한 것입니다. 초실절의 절기는 무교절 기간 중 안식일이 지난 다음날 실시되었습니다. 이 절기가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확한 보리의 첫 단을 제사장에게 드려 요제로 바치고 아울러 번제와 소제와 전제를 드렸습니다. 이 제사를 드리기 전에는 그 누구도 보리 수확의 열매를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초실절의 대표의 원리에 적용시켜, 그리스도의 부활이 모든 성도들의 부활을 보증하는 부활의 첫 열매가 된다고 규정했습니다.
맥추절이 있습니다(레23:15-22)
맥추절은 칠칠절로 본격적으로 밀을 추수하면서 하나님께 한 해 동안 축복해 주신 것을 기리며 감사하는 절기이며 오순절이라고도 합니다. 오순절은 풍성한 수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림과 동시에 시내 산에서 율법을 받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 지켜졌습니다. 그리고 성령 강림 이후에는 추수 감사제에서 성령 강림제로 그 의미가 바뀌었습니다.
초막절이 있습니다.(레23:34-38)
하나님께서는 추수를 마친 시기에 초막절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초막절은 그해 모든 추수를 마치면서 역시 한 해 동안 돌봐주신 것에 대해 기리며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초막절에는 칠 일 간 빠짐없이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초막절에는 칠 일 동안 초막을 짓고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초막에 거하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하게 하신 것을 기념하였습니다.
역사적으로는 청교도에 의해 유래했습니다.
영국의 청교도인들이 미국으로 이주해 가기 전에도 유럽에서 이미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매사추세츠의 청교도들은 크리스마스 절기를 가톨릭의 절기로 간주하여 이를 지키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크리스마스를 로드섬을 제외한 영국의 식민지에서 절기로 지키지 않게 되자 추수감사절을 크리스마스 절기 대신에 정통과 청교도들의 절기로 지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이 감사절을 지키고 교회 역사에 알려지게 한 것은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청교도들에 의해 거행되었던 1621년의 추수 감사절의 영향 때문입니다.
항해술이 취약했던 1620년 오직 신앙의 자유만을 찾아 극심한 기아와 병고에 시달리면서 메이플라워호에 몸을 싣고 신대륙 아메리카로 건너간 102명의 청교도(the Puritan)들이 그로부터 1년 후 낮 설고 물 설은 개척지에서 갖은 풍토병과 각종 생활의 질고에 시달리면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한 해 농사를 수확한 후 얻은 새 땅에서의 첫 결실을 감사하여 드린 감사 기념 예배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유럽이 들끓던 16세기 중반 영국에서도 헨리 8세라는 강력한 군주가 자기 마음대로 교회를 이끌고 갈 목적으로 수장령을 발표하고 영국국교회를 창시하게 됩니다. 이에 반대하는 일단의 무리들이 성경 말씀대로 경건하게 생활하려는 입장을 취하였으니 이들이 청교도들입니다. 청교도들과 이미 형식주의적 신앙생활에 젖은 영국의 국교도들 간에는 많은 신앙의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영국의 국왕은 영국의 국교도와 다른 신앙 견해를 가진 청교도들을 용납하지 않았으며, 신앙적 자유를 허락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청교도들은 그들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네덜란드로 건너갔습니다. 그러나 11년간의 네덜란드에서의 생활은 무척 고된 것이었으며, 아르미니우스파의 반대에 부딛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올바른 신앙인으로 자녀를 교육하기란 더더욱 힘이 들었습니다. 이에 청교도들은 신대륙으로 가기 위해 7년 동안 힘들여 일해서 번 돈으로 배를 샀습니다. 그러나 스피드웰이란 이름을 가진 그 배는 장기간 항해에 적합하지 않았으므로 다시 다른 배를 구입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메이플라워호입니다. 그러나 이 배 역시 180톤의 작은 배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열정에 불타는 청교도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1620년 9월 16일에 180 톤의 작은 배에 102명이 타고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먹을 물과 양식이 부족한 가운데 행해진 65일간의 항해가 험난했을 뿐 아니라 그들을 꿈에 부풀게 했던 신대륙에서의 생활도 생각처럼 좋은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1620년 11월 9일 미국 동부 매사츄세쓰 주 케이프 카드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개척지의 악조건 때문에 케이프 카드 서쪽 약 50km 지점에 위치한 플리머드로 옮겨 정착하였습니다.
청교도들이 신대륙에 도착한 때는 겨울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심한 식량난과 추위, 기후 차와 영양실조들의 원인으로 인해 첫 겨울에 102명 가운데 44명이나 죽었으며 그 나머지도 질병에 시달렸으므로 항상 일손 부족으로 인한 격무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들은 땅을 개간하고 나무를 베어 교회부터 짖고 1 년 동안 열심히 농사를 지었으며 그간 약 반수가 사망하였는데도 장례식도 제대로 못 치른 때가 많았으니 인디언에게 사람 수가 적어지는 것이 알려지면 위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디언과 화친을 맺게 되자 심한 고통 속에 있던 그들에게 도움을 주었던 것은 마음 좋은 인디언들이었습니다. 이 대륙의 원주민인 인디언들은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는 청교도들에게 옥수수 등의 곡물을 가져다주었고, 옥수수를 심는 법등 농사짓는 방법도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들의 도움으로 청교도들은 풍성한 곡식을 추수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옥수수와 호박 등을 처음 수확하였을 때에 그 고마움을 기념하기 위하여 그 해 가을 즉 1621년 10월에 익숙지 못한 기후와 굶주림과 싸우면서 인디안으로부터 배워서 가꾸어 거두어들인 곡식을 바치며 감사제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에 청교도들은 친절한 인디언들을 초대해 추수한 곡식과 칠면조 고기 등을 함께 먹으며 신대륙에서의 기쁜 첫 추수 감사절을 가졌습니다. 인디언도 초청된 이날 총을 들고 새를 잡으려던 사냥꾼이 부근에서 칠면조를 잡게 되어 이 고기를 먹었습니다. 추수감사절이 되면 칠면조 고기를 먹는 연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 이후로 감사드리는 태도는 관습이 되었으며 해마다 지켜졌습니다.
1623년 매사추세츠 주에서는 추수 감사절을 공식 절기로 선포하였으며, 1789년에는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톤이 이를 전국적으로 지킬 것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러나 3대 대통령인 토마스 제퍼슨은 추수 감사절이 왕의 관습이라는 이유로 이를 기념하는 행사를 중단하였습니다. 그 뒤로 추수 감사절은 일부 주에서만 비공식적으로 지켜지게 되었고, 그 기념일도 주마다 달랐습니다.
이렇게 폐지되었던 추수 감사절이 다시 지켜지기 시작한 것은 1863년 링컨 대통령이 추수 감사절을 미국의 연례적인 축일로 선포하면서부터였습니다. 사람들의 무반응 속에서 해마다 꾸준히 사라 요세파 헤일 여사(Godey's Lady's Book 의 편저자)는 추수감사절(11월 마지막 목요일)을 미국 전역의 연례적인 절기로 지킬 것에 대한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1863년 9월 28일에 추수감사절을 미국 전역의 연례적인 축일로 선포할 것을 촉구하는 서신을 당시 미국의 대통령인 링컨에게 보냈습니다. 그로부터 4일 후 링컨은 추수감사절을 미국 전역의 연례적인 절기로 공포하였습니다. 당시 남북 전쟁이던 남군과 북군도 이날 하류만은 전쟁을 중지하였다고 합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감사일이나 기도 일에 대한 대통령의 선포는 연례적인 것이 아니었으며 또한 추수기와 아무런 관계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1863년 이후로 모든 대통령들은 링컨의 전례를 따랐으며 행정부도 이를 뒷받침해 주었습니다. 따라서 1941년까지 추수감사절의 날짜는 대통령의 연례적인 선포에 따라 각기 달랐으나 1941년에 미국 의회는 대통령과의 합의아래 11월 네번째 토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정하고 이날을 휴일로 공포하였습니다. 그 후 루스벨트에 의해 11월 셋째 목요일이 추수감사절로 공포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어 온가족이 모여서 풍성한 음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식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지나간 한 해 동안 하나님께서 보살펴 주시고 복 주심에 감사하는 날로 지킵니다.
한국에서의 추수감사주일은 선교사님들에게서 유래했습니다.
구한 말 우리나라에 전래된 개신교 신앙은 청교도 신앙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자에게 일시적으로 고난과 어려움을 주시지만, 끝까지 믿고 의지할 때에, 반드시 선한 것으로 갚아 주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라의 위기에서도 풍전등화 같은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 결과 1904년 한국장로교회는 그해 11월 10일 목요일을 우리나라 최초의 추수감사절로 지키기로 결의하였습니다. 그후 추수감사절은 점차 장로교 이외의 다른 교파에서도 지키는 절기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현재 우리나라 개신교에서는 11월 셋째 주일을 추수감사절로 지키는 것이 관례입니다. 이런 점에서 한국교회에서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것은 미국의 선교사들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추수감사절의 정신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신앙입니다.
개혁주의 신앙의 중심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 중심입니다. 이러한 정신이 메사추세스 초대 지사이며 청교도 지도자인 윌리엄 브레포드의 추수감사절에 발표한 선언문에 나타납니다.
위대한 하늘 아버지께서 옥수수와 밀, 완두콩, 땅콩, 호박 등 많은 재소를 풍부하게 거두게 하셨고 숲속에는 사냥감이 많게 하셨으며 바다에는 생선들로 가득하게 하셨고 인디언과 맹수의 위험에서 우리를 때를 따라 자유롭게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셨습니다. 우리 순례자들이 이곳에 도착한지 3년만인 1623년 11월 29일 목요일 아침, 여러분 모두는 부인과 자녀들에 이르기까지 예배당이나 동산에 모여서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우리의 전능하신 하나님께 그의 축복에 대하여 예물을 드리며 감사절을 지킬 것을 나 지사는 선언합니다.
실로 눈물과 감사가 뒤범벅된 벅찬 감동의 예배를 드렸던 그들이 바로 현대 미국을 탄생시킨 선조(the Piligrim Fathers)들이었습니다. 이들이 드렸던 첫 추수 감사절의 벅찬 환희는 단순히 한 나라의 건국 일화나 한 해의 추수의 감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신앙과 자유의 존엄성을, 그리고 개척자정신의 고귀함을 보여 주는 산 실례로서 모든 인류의 가슴속에 진한 감동을 전해줍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애굽에서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을 자유롭게 섬길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예배의 자유가 결여된 곳에는, 여타의 자유도 결여되게 마련입니다. 청교도적 역사 이해에 의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에서 종살이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그들이 그들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 마음 놓고 예배드릴 수 있는 자유가 결여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자유를 얻기 위해 애굽을 탈출했지만, 청교도들도 참된 신앙을 따라 자유롭게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애굽과 같은 "구대륙"을 떠나, 아메리카라는 "신대륙"으로 이주하였습니다. 신대륙은 어찌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40년 간 방황했던 광야와 같은 곳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각도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내리신 복으로 인해 "황무지가 장미꽃 같이" 피어나는 곳, "마른 땅에 샘이 터지고, 사막에 물" 이 흐르는 곳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가능성인 동시에, 또 현실성이기도 합니다. 미국의 청교도들은 추수감사절을 우리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실현 불가능한 현실을 실현 가능한 현실로 바꾸어 주신, 은혜로운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축제로 삼았습니다.
이런 일화도 전합니다. 많은 사람이 죽고 남아있는 사람들마저 해마다 겹치는 흉년으로 고통을 당했습니다. 도무지 밝은 전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국적으로 금식기도를 선포하고 경건한 이 신앙인들이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하나님, 이 상황을 돌보아 주십시오. 우리를 도와주시옵소서." 이렇게 금식을 선포하고 기도를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땐가 또 한번 대단히 어려운 형편에 놓이게 되자 그들은 다시 금식기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금식기도를 놓고 의논하는 자리에서 어떤 농부 한사람이 이렇게 제의를 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금식하면서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달리 생각하기를 원합니다. 비록 농사가 흉년이 들고 형제자매들이 병으로 쓰러지는 어려움을 겪지만 이 가운데서도 우리가 감사할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식량이 풍족치 않고 여건이 유럽보다 편안하지는 않지만 신앙의 자유가 있고 정치적인 자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앞에는 광대한 대지가 열려 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금식 대신에 감사기간을 정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 어떻습니까?" 농부의 그 말은 참석한 사람들에게 깊은 감화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금식기도 주간을 선포하는 대신 감사주간을 선포하고 하나님 앞에 감사한 것이 감사주일의 기본 동기가 되었다 하기도 합니다.
이런 기도문이 있습니다. 우주 만물의 주인이신 주님, 어느덧 추수할 계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사실 우린 열심히 일하지 못할 때가 더 많았습니다. 주님, 이 시간 미처 행하지 못한 주님의 명령이 주마등처럼 떠오릅니다. 가난한 자에게 베풀라고 하셨건만 우리는 걸인들의 손을 냉정하게 뿌리칠 때가 많습니다. 영 육간에 아픔이 있는 자를 찾아가 위로해주라고 하셨건만 내 아픈 가슴만 쓸어안고 사느라 그럴 겨를이 없었습니다.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셨건만 성경책에 빨간 줄긋는 행위 외엔 아무런 실천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바치라는 말씀도 생활비가 모자라 어쩔 수 없노라 변명하며 슬쩍 넘어갈 때가 많았습니다. 주님, 그래서인가요? 우리 마음은 왜 이리 빈곤하고 가난한지 모르겠습니다. 마셔도 목마른 사슴처럼 이 세상이 채워주는 그 무엇으로도 영혼의 갈증이 채워지질 않습니다. 인내의 하나님, 이렇듯 아무런 행위도 드리지 않고 살아왔으면서 남의 집 곳간에 가득가득 쌓인 성령의 가마니를 보니 부럽기만 합니다. 은총의 하나님, 지금까지는 명령을 어기며 살아온 어리석은 자였지만 내년 추수 때만큼은 절대로 배고픈 자가 되지 않고 가득 쌓아놓은 곳간의 주인이 될 각오를 하며 살게 하소서. 주께서 예비하신 하늘 집에 쌓을 곡식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일꾼이 되게 하소서. (<바뀌어도 나 기도하리니 / 박경희)
추수감사절의 유래와 정신을 바로 알고 감사하며 기도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