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1076) - 모두가 이야기의 주인공, 서로 존중하자
최근 잇달아 저명인사들의 부음을 접하였다. 얼마 전 미국대통령부부 최장(77년)의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은 카터 대통령의 부인 로잘린 여사가 96세를 일기로 영면하였고 미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외교의 거목 헨리 키신저가 지난달 29일 100세의 나이로 별세하였다. 그런가하면 같은 날 한국불교 조계종의 거장 자승 스님이 스스로 발화한 것으로 추정되는 화재로 입적하여 어리둥절하였다. 어떤 이는 소리 없이 스러지고 어떤 이는 화제의 중심에 서기도 하지만 하늘의 저울에는 같은 무게, 누구나 천하보다 귀한 생명인 것을. 우리 모두 이야기의 주인공,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자.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마가복음 8장 36절)
77년을 해로한 카터대통령과 로잘린 여사의 모습 최근 접한 미국 상원 청문회의 영혼이 된 흑인 가출 소년의 일대기가 저명인사의 부음보다 더 마음에 닿는다. 이를 살펴보자. ‘버티 보우먼(Bertie Bowman, 1931.4.12.~ 2023.10.25.), 향년 92세. 인격으로 대한 상원의원을 믿고 13세에 고향을 떠나 워싱턴D.C 미 국회의사당 계단 청소부가 된 흑인 가출 소년이 의사당 잡역부를 거쳐 상원 외교위원회 서기로, 청문회 코디네이터로 2021년 은퇴했다. 근 70년(정식 직원으론 만 56년) 세월 동안 그는 빌 클린턴 등 훗날의 연방대통령을 비롯한 공화-민주 양당의 기라성 같은 정치인들과 두터운 교분을 나눴고, 기품과 예의로 상원 청문회의 품위를 돋보이게 했다. 의회 잡역직을 떠돌던 보우먼을 1966년 상원 외교위(FRC) 서기직에 발탁한 것은 당시 외교위원장이던 윌리엄 풀브라이트(William Fulbright, 아칸소, 민주)였다. 이듬해 인턴으로 채용된 조지타운대 졸업반 빌 클린턴을 처음 만난 게 거기였다. 아칸소 빈민가에서 흑인들과 어울리며 불우하게 성장한 클린턴은 보우먼과 죽이 맞았다. 둘의 우정은 클린턴이 대통령이 되고, 힐러리가 국무장관이 된 뒤로도 이어졌다. 빌 클린턴은 보우먼의 회고록 서문에 이렇게 썼다. “보우먼과 같은 이들은 신문에 등장하지 않고 국민 대다수가 이름도 모르지만, 그들은 신문에 나오는 이들이 멋진 일들을 해낼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매일 최선을 다한다. 보우먼은 이 나라를 위대하게 만드는 시민의 전형이다.”(2023. 12. 5 한국일보, '흑인 가출 소년이 상원 청문회 영혼이 되다'에서)’ 1940년대 말부터 써온 일기를 손봐 2008년 출간한 버티 보우먼의, 서기 초년 시절의 사진을 담은 회고록 'Step by Step' 표지. 당시 부통령이던 조 바이든 현 대통령의 추천사가 실려 있다. 펭귄 랜덤하우스.
* 때마침 살핀 칼럼, ‘8 개면에 쓴 키신저 부고’라는 글이 흥미롭다. 그 요지, ‘한 분야를 오래 맡아 취재하다 보면 이런 사람의 인생은 잘 정리해서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러려면 취재원에 대한 깊은 공부가 필요하다. 영미권 언론은 부고 기사에 각별한 정성을 쏟는 것으로 유명하다. 뉴욕타임스에 실린 키신저의 부고는 이런 전통을 새삼 돌아보게 한다. 1면 스트레이트를 포함해 3 개면에 발자취를 냈는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다음 날 1면포함 8 개면에 펼쳐진 부고는 키신저의 미니 전기였다. 뉴욕타임스 부고 기사는 정확하기도 하지만 흡인력 있는 스토리로도 유명하다. 몇 해 전엔 1851년 창간호부터 2016년까지 165년간 보도한 부고 기사를 모아 “뉴욕타임스 부고 모음집”이란 책도 냈다. 유명인만 대상으로 삼는 것도 아니다. 부고 기사를 1000건 넘게 쓴 월스트리트저널의 제임스 해거티 기자는 평범한 이들의 죽음에서도 의미 있는 이야기를 발굴한다. 해거티는 “누구나 책 한 권만큼의 이야깃거리가 있고 어떤 인생이든 남기고 가는 메시지가 있다”고 했다. 타인의 삶에 대한 관심과 존중이 이런 전통을 빚어낸다.’(2023. 12. 5. 조선일보, 김태훈의 글 ‘8 개면에 쓴 키신저 부고’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