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화 / 정호승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 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 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 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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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 / 이해인
초록빛 스커트에
노오란 블라우스가 어울리는
조용한 목소리의
언니 같은 꽃
해가 뜨면
가슴에 종을 달고
두손 모으네
향기도 웃음도
헤프지 않아
다가서기 어려워도
맑은 눈빛으로
나를 부르는 꽃
헤어지고 돌아서도
어느새
샘물 같은 그리움으로
나를 적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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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 / 류시화
여기 수선화가 있다, 남몰래
숨겨 놓은 신부가
나는 제주 바닷가에 핀
흰 수선화를 지나간다
오래 전에 누군가 숨겨 놓고는 잊어 버린
신부 곁을
가슴에서 마음을 떼어 버릴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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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와 조팝나무의 사랑 / 도종환
우리사랑 이 세상에선 이루어질 수 없어
물가의 수선화처럼 너 적막하게 꽃 피어 있을 때'
나 또한 그 곁에 창백한 조팝나무처럼
꼼짝 못하고 서서
제가 내린 제 숙명에 뿌리에 몸이 묶인 채
한평생 바라보다가 갈 것만 같은데
오늘은 바람 이렇게 불어
내 허리에 기대 네 꽃잎을 만지다가도 아프고
네 살에 스쳤던 내 살을 만지다가도 아프고
네 잎에 하나씩 찢어 내 있는 쪽으로 던져야
내게 올 수 있고
가지 부러지는 아픔을 견뎌야
네게 갈 수 있다 해도
사랑은 아픔이라고 사랑하는 것은
아픔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너를 사랑할 때마다 깨닫고 또 깨달아도
그보다 더 아픈 것은
우리 사랑 이 세상에선 이루어질 수 없는 것
네 마음의 십분의 일 내 몸의
백 분의 일도 네게 주지 못한 것 같은데
너를 사랑하는 것만으로도 괴로워하다
돌아서야 하는 것
바람은 불어 나 노을 속에 이렇게 서서 나부끼고
바람은 불어 나 몸살에 얼굴 묻고
너 돌아서 있어야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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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수선화 / 박노해
눈 내리는 날 그녀가 보내준
겨울꽃 한 송이
성에 낀 창가에
고개 숙인 수선화
수선화처럼 고개 숙여
눈 속의 나를 돌아보다
수선화처럼 고개 숙여
봄이 오는 눈길을 바라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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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 / 박인걸
나는 너를 처음 발견했을 때
내 가슴에 옮겨 심었고
아무도 캐가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쌓아 올렸다
고결한 꽃망울이 입을 열고
빳빳한 자존심이 고개를 들어
신비한 꽃잎이 활짝 웃을 때
나는 황홀하여 실신하는 줄 알았다
메마른 가슴에도 생기가 돌고
잠자던 의식은 눈을 떴다
곱지않던 몸짓이 순한 양이 되고
시들었던 꿈이 되살아났다
나를 완전히 바꿔놓은 그대여
영원토록 지지말고 피어라
너는 내 안에서 나는 네 안에서
평생을 수선화로 살고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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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추위에 강해 한 겨울부터 이른 봄에 꽃을 피우는 수선화는
꽃말처럼 고결한 느낌이 드는 꽃입니다.
봄향기 가득한소식전해주는 능소화친구님 오늘도 감사~유
아쟁 연주곡~~ 심금을 울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