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아홉 구비의 대관령 옛길은 물소리도 아름다워라!
(대관령 옛길 제3편)
筆嶺/金相和
대관령 옛길의 아흔아홉 구비는 역사와 문화가 전해져 내려오는 길로 지금도 살아 숨 쉬고 있는 듯하다. 필자는 오늘 그 길을 걸으며 위인들의 발자취가 느껴짐에 감사를 린다. 그들이 남긴 역사를 되새기며 걸을 때 대관령의 역사가 어찌 이리도 위대하게 느껴질까? 한마디로 필자가 걷고 있는 옛길은 문인과 예술가의 길이 아니었던가 싶다.
물소리 새소리 들으며 오솔길을 걸을 때 100년이 넘게 자란 아름드리 금강송은 우리를 즐겁게 해주려고 은은한 솔향을 뿜어낸다. 그 향기는 이곳을 걷는 길손들에게도 잠시나마 향기에 젖게 해줄 것이다. 선조들의 멋진 삶을 초롱초롱 떠올라 보라고 배려하는 것이 아닐까도 싶다. 그래서 옛길엔 은은한 솔 향기가 가득 퍼져 있다. 그때 눈을 감고 조용히 생각해보면 무수히 많은 것들이 떠오르는데, 그것들은~^^
등에 짐을 지고 보부상(褓負商)들이 흥얼거리며 즐겨 부르던 노래가 있고, 이곳의 절경에 취해 그림을 그리던 김홍도가 있었다. 또 어린 율곡과 함께 걸으며 연로하신 친정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아흔아홉 고개를 넘었던 신사임당도 생각날 것이다. 필자는 마치 신사임당 바로 옆에서 시를 한 수 읊으며 함께 걷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보부상(褓負商)= 시장을 중심으로 봇짐이나 등짐을 지고 행상을 하면서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교환경제가 이루어지도록 중간자 역할을 했던 전문적인 상인을 말함
웅장하고도 아름다운 대관령은 영동 지방 사람들에게는 신성한 땅이자 한편으로는 거대한 장벽으로 느끼며 살아왔음이 틀림없다. 그러한 대관령이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평화의 땅이 되었다. 얼마나 다행인가!! 제왕산의 정상에 깃든 고려말 우왕(禑王)이 그토록 바랬던 평화의 땅이다. 시간이 여유로웠다면 필자는 오봉산과 제왕산에 올라 북녘 백두대간 길을 걷고 싶은 마음이다. 그럼, 그때 대관령을 바라보며 한반도의 평화를 기원했을 것이다. 이러한 땅을 오늘 필자는 걷고 있다. 그래서 마음이 얼마나 뿌듯 한지 모른다.
그때 잉꼬처럼 다정한 이영희 부회장 부부가 걷다가 필자를 보곤 생끗 웃는다. 역사적인 이 길을 함께 걸으니 반갑다는 표시일 것이다. 산행할 때마다 이 부부를 보지만 누구나 부러움을 느낄 정도로 다정다감하다. 역시 잉꼬부부라고 칭찬하고도 남는다.
인간은 자연 속에서 태어나 자연의 혜택 속에서 살고 자연으로 돌아간다. 그러므로 자연은 인간의 삶 바로 그 자체이며 모든 생명의 원천이 된다고 말할 수 있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금수강산의 아름답고 쾌적한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왔다. 그런데 최근에 이르러 산업의 발달과 인구의 급격한 팽창에 따라 물과 공기 및 푸른 녹지가 오염이 계속됨으로 훼손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생각지 못할 정도로 나쁜 환경으로 변하고 있다. 그로 인해 인간과 모든 생물의 생존까지 위협을 받게 되는 심각한 문제로 발전되어간다.
따라서 이제는 모든 국민이 자연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하여 범국민적인 자연보호운동을 통해 이 땅을 보다 더 아름답고 살기 좋은 낙원으로 만들어 후손에게 길이 물려주는 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하며 사진을 찍다 보니 일행은 벌써 필자의 눈에서 멀어져 시야를 벗어났다. 혼자서 외로움을 달래려고 이런저런 노래로 중얼거리며 걷다 보니 주막까지 왔다. 주막엔 대여섯 채의 집이 있고 현대식 카페도 자리 잡고 있다. 그곳엔 회원 몇 명이 거리에 서서 어느 쪽으로 갈지를 몰라 망설이고 있다. 필자도 이 길은 처음이라서 알 수 없었다. 앞에 누가 간 사람이 있느냐고 물어보니 아무도 없다고 한다.
우리는 목적지인 대관령 박물관을 향해 무작정 걸었다. 한참을 걷다 보니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또 어디로 갈지 한참을 고심하고 있었다. 그때 사진작가이며 이 산악회 본부장인 장선덕 부장이 저만치서 걸어온다. 본부장이 도착할 때까지 잠시 기다리고 있었다. 본부장이 도착하니 몇 분의 회원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미소란 잔잔한 웃음꽃을 피운다. 아마도 회원들은 구세주를 만난 기분을 느낀 것 같다.
장선덕 본부장은 미남이기도 하지만 인간미가 넘쳐흐르는 분이다. 통솔역도 뛰어나지만 말 한마디 한마디가 누가 들어도 타에 귀감이 될 정도다. 사진작가로도 주목받으며 활동한다. 장 작가는 몇 번의 전시회도 성공적으로 끝냈다.
사람은 대다수가 장점보다는 단점이 많게 마련인데 장 작가는 반대로 단점보다 장점이 훨씬 많은 분이다. 해피 가족은 이렇게 훌륭한 분이 본부장으로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게 생각해야 한다. 오늘 2023년 첫 산행도 성공적으로 끝을 맺었으니 우리 큰 박수를 보냅시다.
약 1km 정도 즐거운 대화로 웃음꽃을 피우며 걸었다. 대관령 박물관이 눈에 들어오고 우리를 태울 버스가 주차장에 대기하고 있다. 이젠 대관령 옛길 트래킹이 끝이 났다는 것을 알리는 순간이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채홍렬 에이치리소스 대표이사께서 필자를 보자마자 반가워한다. 채 회장은 몇 년 만에 뵙니 무척 반가웠다.
대관령 박물관을 관람하고 싶었다. 그런데 아무도 가고 싶어 하지를 않는다. 그곳에 가면 대관령의 역사를 소상히 알 수 있는데 안타깝게도 기회를 잃고 말았다.
신사임당에 대한 글을 문헌을 보고 간략하게 적어본다.
신사임당은 강원도 강릉 출신으로 조선 중기 여류 예술가로서 “자리도”, “초충도”, “노안도” 등의 작품을 조선 전기 때 그린 화가이다. 신사임당은 슬하에 셋째 아들로 이이 율곡(李珥 栗谷)을 낳았다.
신사임당은 당호이며 시임당(媤任堂) 또는 임사재(妊思齋)라고도 하였다.
그녀는 아버지 신명화(申命和)와 어머니 이사온(李思溫) 사이에 나은 자랑스러운 딸이다.
열아홉에 덕수 이씨 이원수(李元秀)와 결혼하였으며 남편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사헌부 감찰 등을 역임하였다. 본관은 덕수(德水)이고, 자는 덕형(德亨)이다. 좌참찬(左參贊)에 추증된 이천(李蕆)의 아들이다.
신사임당은 출가하기 전 외가에서 생활하면서 어머니에게 여자의 범절을 익혔고 학문을 배웠으며 부덕(婦德)과 교양을 갖춘 현부로 자랐다.
결혼 몇 달 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친정에서 삼년상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갔다. 그 후 파주 파평면 율곡리에 기거하기도 하였고, 강원도 평창군 용평면 백옥포리에서도 여러 해 살았다. 이따금 친정에 가서 홀로 사는 어머니와 같이 지내기도 했으며, 셋째 아들 이이를 강릉에서 낳았다.
서른여덟 살에 시집 살림을 주관하기 위해 서울로 떠나왔으며, 수진방(壽進坊)이라는 지금의 종로구 수송동(壽松洞)과 청진동(淸進洞)에서 살다가 1551년 봄에 48세에 삼청동으로 이사하였다. 이해 여름 남편이 수운판관(水運判官)이 되어 아들들과 함께 평안도에 갔을 때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최고의 여성상인 태임을 본받는다는 뜻으로 당호를 지었는데, 신사임당을 평한 사람 중에는 온아한 천품과 예술적 자질조차도 모두 태임의 덕을 배우고 본뜬 데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하였다. 그것은 이이와 같은 대정치가요 대학자를 길러낸 훌륭한 어머니로서의 위치를 평가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사임당은 완전한 예술인으로서의 생활 속에서 어머니와 아내의 역할을 성숙시켰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조선왕조가 요구하는 유교적 여성상에 만족하지 않고 독립된 인간으로서의 생활을 스스로 개척한 여성이라 할 수 있다.
아울러 교양과 학문을 갖춘 예술인으로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천부적인 재능과 더불어 그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북돋아 준 좋은 환경이 있었다. 신사임당의 재능은 이미 7세에 안견(安堅)의 그림을 스스로 사숙(私淑)했던 것에서 찾아볼 수 있다. 통찰력과 판단력이 뛰어나고 예민한 감수성을 지녀 예술가로서 대성할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 거문고 타는 소리를 듣고 감회가 새로워 눈물을 지었다든지 또는 강릉의 친정어머니를 생각하며 눈물로 밤을 지새운 것 등은 섬세한 감정이 남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신사임당은 성격만큼이나 그림·글씨·시도 매우 섬세하고 아름다운데, 그림은 풀벌레·포도·화조·어죽(魚竹)·매화·난초·산수 등이 주된 화제(畫題)이다. 마치 생동하는 듯한 섬세한 사실화여서 풀벌레 그림을 마당에 내놓아 여름 볕에 말리려 하자, 닭이 와서 산 풀벌레인 줄 알고 쪼아 종이가 뚫어질 뻔하기도 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요즘 도심에서는 볼 수 없는 흙길, 주변의 모든 것이 소중한 자연과 어우러져 하나하나 잘 보존된 곳이다. 옛길 코스를 걷는 이들이 이곳을 지나며 마음속으로 나지막이 읊는 세계 평화에 대한 기원,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을 위한 작은 기도 소리가 귓속에 맴도는 코스이다. (일부 인터넷을 통해 신사임당에 관한 글을 옮겼음)
대관령 옛길은 미약하나마 이것으로 끝을 맺는다. 해피 가족 여러분 감사했습니다.
2023년 1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