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에는 사랑 이야기가 두가지 있습니다. 주인공 송지혜의 이야기가 있고, 지해 어머니, 송주희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혜가 방을 치우면서 어머니가 받아놓은 편지들을 찾았습니다. 그 편지들 안에는 송주희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어느날 시골에서 송주희는 오준아 를 만났습니다. 근처에 있는 강에서 시간을 많이 같이 보냈습니다. 하지만, 송주희는 국회 의원의 딸이었습니다. 그래서, 주희의 부모님들은 주희가 준아 처럼 가난한 사람하고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주희와 준아는 서로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헤어지기 전에 주희는 준아한테 목걸이를 주었습니다.
하지만, 주희의 부모님들은 준아 친구, 윤태수를 주희하고 결혼을 시키려고 했습니다. 태수도 나중에 주희를 좋아했지만, 준아가 주희를 많이 사랑하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태수와 준아는 친한 친구여서 태수는 준아를 도와줬습니다. 준아가 주희한테 편지를 보낼 때, 봉투에 태수 이름을 썼습니다. 주희하고 준아는 자주 몰래 연락을 했습니다. 하지만 어느날 태수 부모님들이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태수는 준아를 도와주려고 자살을 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자살은 실패했습니다.
준아는 많은 죄책감을 느껴서, 목걸이를 주희가 있는 방에 놓아 두고 사라졌습니다.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나서, 어느날 세 사람이 다시 만났습니다. 하지만 준아는 벌써 군대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전쟁터로 가는 기차가 떠나기 전에, 주희는 준아한테 꼭 살아서 돌아와야 된다고 목걸이를 다시 준아한테 줬습니다. 전쟁터에서 준아는 목걸이를 지키려다가 폭탄을 맞아서 시력을 잃었습니다. 결국에는 준아가 한국으로 돌아 와서 주희를 만났습니다. 결혼을 안 했는데, 준아는 주희한테 결혼을 벌써 했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또 시간이 많이 흘러서, 결국 주희는 태수하고 결혼을 하고 딸을 낳았습니다. 준아도 결국에는 다른 사람하고 결혼하고 아들을 낳았습니다.
지혜도 준아처럼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상민은 벌써 지혜의 친한 친구하고 사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비 오는 날에 상민이 코트를 우산 처럼 쓰고 지혜를 도서관까지 바래다 줬습니다. 지혜는 상민이 그냥 좋은 사람이라서 이런 행동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 비오는 날에 상민은 우산이 있었습니다. 지혜하고 같이 있고 싶어서 우산을 두고 지혜한테 간 것이었습니다. 결국에는 서로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에 지혜가 어머니의 이야기를 상민한테 말해줬습니다. 놀랍게도 상민은 준아의 아들 이었습니다. 상민이 아버지가 갖고 있던 목걸이를 지혜한테 줬습니다. 주희의 딸과 준아의 아들이 서로 사랑에 빠진 것입니다.
느림의 우연, 느림의 감성
이제 나이가 먹긴 먹었나 보다. <클래식>같은 영화가 다 재밌구. 전형적인 멜로 영화를 지니고 있는 뻔한 영화 <클래식>이 유쾌한씨의 눈에 찰 리가 없을텐데, 영화가 재밌구 수수하구 감동적이기까지 하니. 나이 25가 퍽 쓸쓸하게 느껴진다. 괜찮은 영화 한편 덕택에 알 수 없는 먹먹한 감성이 마음을 쓸어내리고 있지만 말이다.
<클래식>은 여느 멜로 영화와 마찬가지로 우연으로 가득차 있다. 그 우연은 차곡차곡 쌓여 필연을 만들어 낸다. 물론 그 우연에 딴지를 걸고 싶은 생각은 없다. 우연, 그건 운명이라 말할 수 있는 요소이기도 하고 ‘운명적’이라는 단어에서 뿜어져 나오는 감수성이 멜로 영화를 만들어내는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니까 말이다. 근데 <클래식>에서 우연은 유쾌한씨에게 좀 다르게 다가왔다. <클래식>에서 보여준 우연은 느림의 우연이었다. 연애편지가 오고 가는 시간에 담겨 있듯, 그것은 완행열차와 같다. 그래서 더 로맨틱해지고 더 여려진다. 요즘 시대를 배경으로는 절대 불러일으킬 수 없는 느림의 우연이며 느림의 감성이다. 그리고 기다림이다. 준하와 주희는 우연찮게 시골에서 처음 만났지만, 오늘날 채팅방에서 우연을 만들어 낸다. 요즘은 몇 분도 안 되는 시간에 메일을 날리지만, 준하와 주희는 편지를 주고받으며 기다림의 시간 속에 머문다.
느림의 감수성을 그대로 살려내는 <클래식>이 주는 묘미는 느림을 아는 사람만이 찾을 수 있다. 왜? 느리면 답답하니까. 답답한데 참고 기다리기가 어디 쉬워야지 말이지. 그래서 <클래식>의 묘미를 즐길 수 있는 25의 나이가 고마운지도 모르겠다. <클래식>은 느리게 움직이면서 자연스러운 유머를 지니고 있다. 우리는 사랑하면 완벽함을 상상하고 꿈꾼다. 그래서 멜로 영화들은 그러한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사랑하는데 있어서는 완벽함을 보여준다. 멜로 영화의 주인공들은 항상 멋진 말만 하며 진솔하다. 하지만 그것이 실제는 아니다. 정말로 실제가 아니지. 경험해 보신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 <클래식>은 이러한 전형을 슬며시 비껴 나간다. 물론 멜로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유치찬란한(?) 말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60년대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영화 내에서 보여주는 유머는 자연스러움을 만들어 낸다. 또한 유머 속의 슬픈 사랑은 마음을 잔잔하게 더욱 더 흔들어 댄다.
<클래식>은 느리면서도 자연스럽게 그리고 유머스럽게 잘 미끄러져 나간다. 그런데 결말부에 가서 삐끗한다. 엔딩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영화가 크게 달라졌을텐데 안타까울 따름이다. <엽기적인 그녀>에서 보여준 엔딩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는데 <클래식>의 엔딩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클래식>이 보여주는 헤피 엔딩, 그것이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러나 해피 엔딩을 향해 달려가는 결말부는 어이가 없다. 60년대의 (절대 클래식하지는 않지만) 클래식한 분위기를 뽑아서 영화를 이끌어 간 것은 좋았다. 그런데 거기서 베트남 파병을 왜 끼어 넣느냐 말이다. 그리고 준하가 베트남 파병에 참가하는 것 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근데 전쟁신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는지. 그래, 주희에 대한 준하의 애절함을 드러내기 더없이 좋은 장면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진부하며 클래식한 분위기하고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그리고 전쟁에서 죽게 생겼는데 사랑에 목숨 걸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결말부의 아쉬움과 함께 또 하나 남는 아쉬움은 조인성이었다. 뭐, 조인성이 연기 잘 할 것이라고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근데 왜 대사를 국어책 읽듯이 하는지 모르겠다. 그것도 현재에 위치한 인물이 말이다. 조인성이 별로 등장하지도 않지만, 등장하는 장면마다 국어책 읽는 듯한 대사는 참으로 걸리적 거렸다. (이미지는 좋았는데... 쩝)
<클래식>은 80%의 완성과 20%의 아쉬움을 지니고 있는 영화다. 그러나 100%로 권해 주고 싶은 영화다. 첫사랑에서 느낄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개인의 문제이니 말할 필요도 없는 것 같다.
(영화평론가 유쾌한)
<클래식>, 감동보다 진한 아쉬움
이 글에는 영화 <클래식>의 줄거리와 결말이 상당부분 노출돼 있습니다. 이를 읽기 원치않는 독자분들은 주의 당부드립니다...<오마이뉴스 곽진성(jinsung007>
좋은 영화를 보고나면, 흔히 스쳐지나가는 것은 감동일 것이다. 하지만 영화 <클래식>의 끝에서 필자가 처음 접했던 것은 감동보다, 진한 아쉬움이었다. 물론 머릿속에선, 좋은 영화라는 사실이 인식되었지만 가슴은 감동을 느끼지 못했다.
좋은 영화, 물론 <클래식>은 이런 평가를 받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여러 장면들의 아름다운 전개, 그리고 주연들의 뛰어난 연기력, 그런 속에 어우러진 영화의 분위기는 관객들을 <클래식>의 매력 속으로 흠뻑 젖어들게 했다.
사춘기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주희(손예진)와 준하(조승우)의 만남, 그리고 시작되는 사랑은 그야말로 우리 사회에서, 잊혀졌던 순수한 사랑을 다시 보는 듯했다. 우연히 스쳐지나가는 사랑이 아닌, 필연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 하지만 그들만의 기록을 통해 전개되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참사랑의 의미를 알게해주기에 충분했다.
감동보다 진한 아쉬움, 클라이막스 여러 반전 장치의 실패
하지만 영화 <클래식>의 끝은 감동보다는 진한 아쉬움으로 남고 말았다. 그 이유로는 클라이막스에서 관객들을 감동시켜야할 여러 반전 장치들이 제역할을 못해, 실패로 되어버렸다는데 있을 것이다.
<엽기적인 그녀>에서 보여주었던, 필연이라고 밖에 할수 없는 차태현과 전지현의 만남, <엽기적인 그녀>에서의 반전 장치는 관객들에게 잊지 못할 감동을 주었었다. 역시 <엽기적인 그녀>를 만든 곽재용 감독은 그런 기법을 영화 <클래식>에서도 준비했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기대 이하였다.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로, 클라이막스 부분에서, 주희(손예진)가 준하(조승우)가 아닌 준하의 친구와 결혼한다는 사실은 이 영화의 가장 큰 반전 장치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 반전 장치가 결국 관객들의 뇌리에 반전을 이끌어 내는 데에는 실패했다. 왜냐하면 그 반전을 이끌어내는데 필요한 '왜?'라는 단서가 영화속에서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위에서도 언급한 곽재용 감독 전작, <엽기적인 그녀>에서는 이런 반전에 대해, 관객들과 영화 속 사람들이 같이 교감했기 때문에 큰 감동을 몰아왔던 것이다.
하지만 <클래식>에서는 그런 교감에 실패하고 만다. 그런 반전장치의 실패는 실컷 영화를 감동으로 지켜봤던 관객들을 허탈하게 만들었다.
두 번째로 반전 장치의 의미상실을 들 수 있다. 반전 장치의 가장 중요한 부분중 하나는, 준하(조승우)가 주희(손예진)에게 눈먼 사실을 속이는 연기 부분이다. 이 부분에서 감독은 관객과 주희(손예진)를 같이 속이고, 감동을 유발하려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런 반전 장치에 관객들은 호응하지 못했고, 또한 이런 준하(조승우)의 연기는 필요가 없는 부분이었다. 왜냐하면 준하(조승우)는 이미 결혼을 했으니까, 그리고 주희도 다른 남자와 결혼을 했으니깐, 결국 의미상실의 반전장치였을 뿐이다.
이 말은, 준하의 죽음을 통해, 그 당시 준하의 결혼이 거짓이었음을 밝히지만, 그 사실은 그 전, 눈먼 준하와 주희의 만남에서, 즉 준하의 거짓이 드러나는 부분에서 드러났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 준하와 주희가 헤어지는데 결정적 이유에 대해, 대사 한 번으로 처리한 결말은 문제가 있었다. 결국 그들이 다른 이와의 결말을 맺는 이유에 대해 관객들이 수긍할 수 없게 되는 것이었다.
또 세 번째로 지나친 감정조장이 결국 관객들에게 거부감을 줬던 것이다. 영화 속 인물들은 온통 울음바다가 되었지만, 관객들은 그들처럼, 그들의 울음에 전혀 교감하지 못한다. 오히려 거부감이 영화의 교감을 방해한다. 마지막, 지혜(손예진), 상민(조인성)이 그녀의 어머니와 그의 아버지의 못다한 사랑을 이룬다는 끝의 결말조차, 지나치게 감정을 조장하는, 억지 감동만을 조장하는 느낌이었다.
이런 일련의 아쉬움들은, 결국 필자에게 <클래식>이란 영화를 감동이 아닌, 진한 아쉬움으로 남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래식>은, 참사랑, 그리고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알게해주는 영화로써의 자격이 충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클래식>의 영화 속에서는, 필연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의 아픔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담으며 글을 줄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