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고모 -김혜선.
고모
ㅡ김혜선.
목욕탕 건너편 신작로 옆에 고모는 살았다
남자도 없고 아이도 없이
말라 버린 우물처럼 고모는 처음부터 늙어 있었다
사흘이나 닷새에 한번 술에 취한 고모가 뜨면
정당 샘가에 살았던 우리는 미모사 잎처럼 오그라들었다
아침이나 저녁이나 휘청거리며 와서는
귀가 먹어 어눌한 발음으로
자신의 아랫도리를 치면서 아우성쳤다
신발로 땅바닥을 치며 울고
칼을 들고 죽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그런 고모는 사촌의 아들 하나를 겨우 양자로 삼고 돌아가셨다
고모는 외상후울분장애를 앓았었다고
고모는 위안부였다
한참 동안 난리를 치고 돌아가는 고모는
모계를 잃은 발을 끌고
난청을 비추는 시커먼 거울이 있는 방으로 돌아가
악귀 같은 어린 군인에게 끝없이 뺨을 맞다가
맞다가맞다가맞다가................................
겨우
죽었다
♣ 그녀는 고모였다. 누이동생이었고 셋째 언니였다. 그래서 그녀는 이모였다. 그리고 딸이었다. 그것도 셋째 딸이었다. 아가씨였고 처제였다. 복숭아밭을 뛰어다니기엔 좀 민망했지만, 벌써 굳은살이 박인 발뒤꿈치마저 예쁜 그러나 아직은 어린 처녀였다. 착하다면 착하고 방정맞다면 방정맞은 감나무집 깨순이였다. 그녀는 위안부가 아니라 깨순이였다. 깨순이 옆에 순자가 와서 앉는다. 덕자가 와서 앉고 선희가 명숙이가, 그리고 그녀들의 아들들과 딸들이, 손자들과 손녀들이 소녀상 옆 빈 의자에 한참을 와서 앉는다. 사람 곁에 사람들이 앉고 앉는다. 채상우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