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20일(목)
* 시작 기도
주님...
시인은 악인의 형통함과 오만한 자를 질투함으로 거의 실족할 뻔하였다고 했습니다(시 73편).
내가 바로 그임을 고백합니다.
예수를 알지 못하는 자들이 자기들의 소원보다 더 많이 얻으며 잘 먹어서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살이 찌는 것이 그저 배가 아플 지경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꿈에 지나지 않으며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는 비로소 종말을 깨달았으니 우리의 이 땅에서의 인생은 꿈이요 하나님 나라의 삶이 진짜 현실임을 확신합니다.
이 하루도 그 주님의 품에서 생명을 누리게 하옵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밤새 오염된 나의 심령을 주의 보혈로 씻으사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이 하나님처럼 되고자 했던 자기주장의지를 십자가에 못 박사오니 나는 죽고 예수로 부요한 자 되게 하소서.
거룩한 불구자가 되어 영적 하루살이의 삶을 잘 살아내길 원하오니 나를 불쌍히 여기사 긍휼을 베풀어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행 13:1-12
제목 : 눈으로 보고 믿는 총독 서기오 바울의 신앙을 넘어서서...
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4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타고 구브로에 가서
5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회당에서 전할 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
6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인 마술사를 만나니
7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
8 이 마술사 엘루마는 (이 이름을 번역하면 마술사라) 그들을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
9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10 이르되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11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맹인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둠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
12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놀랍게 여기니라.
* 나의 묵상
바나바와 사울이 안디옥 교회에서 거둔 구제헌금을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하고 다시 안디옥 교회로 돌아왔다.
그 안디옥 교회에는 예언자들과 교사들이 있었다.
그들은 바나바, 니게르라고 하는 시므온, 구레네 사람 루기오, 유대 분봉 왕 헤롯 안티파스의 유모의 아들 마나엔 그리고 사울이었다.
이들이 금식하며 기도할 때, 성령께서 두 사람 곧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울 것을 명하셨다.
그것은 주님이 시키시는 일 곧 복음전도를 위하여 세우신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두 사람을 안수하여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로 파송하였다.
두 사람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실루기아에 내려가서 거기서 배를 타고 구브로로 갔다.
구브로의 동쪽 항구인 살라미에 도착한 이들은 여러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는데 수행원으로 마가 요한을 데리고 다녔다.
그리고 구브로 섬을 동서로 횡단하여 살라미에서 서쪽 맨 끝에 있는 바보에 도착하였다.
그곳에서 바예수(여호수아의 아들)라는 이름을 가진 마술사를 만났는데, 그는 자칭 선지자라고 하는 거짓 선지자이며 유대인이었다.
이 마술사 바예수가 총독 서기오 바울 곁에 늘 붙어 있었다.
서기오 바울은 매우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그는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원하였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인 마술사는 바나바와 사울이 총독 서기오 바울에게 복음 전하는 것을 방해하여 총독으로 하여금 예수를 믿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자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서 마술사의 눈을 쏘아보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며 모든 의의 원수인 너는 지금 당장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는 짓을 그칠 것이다. 보아라, 지금 주의 능력의 손이 네 위에 있어서 네가 소경이 되어 얼마 동안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자 즉시 안개와 어둠이 그에게 내렸고, 그는 앞을 더듬으면서 자기 손을 붙잡고 인도해 줄 사람을 찾았다.
총독 서기오 바울은 이 광경을 보고 주를 믿게 되었으며 주님에 대한 복음을 듣고 그는 놀라워했다.
구브로 구레네 출신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들은 자들이 안디옥에 와서 헬라인인 이방인에게도 복음을 전하였다.
그 결과 안디옥 사람들이 복음을 받고 예수를 믿게 되어 그 도시에 복음이 급속도로 전파되었다.
그리하여 안디옥 교회가 세워졌고 그 교회는 자기들만의 왕국으로 살아간 것이 아니라 구제헌금을 거두어 멀리 있는 예루살렘 교회를 비롯하여 아마도 주변에 있는 안디옥의 불신자들에게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로 인하여 그들은 그곳에 있는 불신자들로부터 ‘그리스도인’이라는 별명을 듣게 되었다.
이렇게 안디옥 교회가 복음 안에서 날마다 성장하여 이제는 명실공히 영적 지도자들이 세워지고 그들을 중심으로 성령께서 명하신 선교사를 파송하게 된다.
안디옥 교회의 영적 지도자들은 바나바와 사울 그리고 니게르라고 불리는 시므온, 이 사람은 아마도 북아프리카에 있는 구레네 사람일 가능성이 많으며 그렇다면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졌던 구레네 사람 시몬일 수도 있다.
또한 구레네 사람 루기오, 그리고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이 있다.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은, 헤롯의 유모의 아들로써 헤롯과 마나엔은 한 여인의 젖을 같이 먹고 자란 이들이다.
헤롯은 유모의 젖을 먹었고 마나엔은 헤롯의 유모가 자신의 어머니이기 때문에 그 젖을 먹고 자랐던 것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같은 젖을 먹고 자란 두 사람의 길이 완전히 달랐다는 것이다.
헤롯은 세례 요한을 죽이고, 예수님을 재판한 사람으로서 아주 치욕적인 이름의 대명사가 된 반면, 마나엔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자신의 인생을 내어놓은 복음 전도자로서의 영광스런 이름이 되었다.
이들 다섯 명 중에 성령께서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워서 선교사로 파송하게 하신다.
이들 두 사람은 안디옥 교회의 파송을 받아 전도여행을 떠나는데 그 첫 번째 장소가 바로 구브로라고 하는 현재 지중해에 있는 키프러스 섬이다.
구브로의 첫 사역지인 살라미에서 여러 회당에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였고 그곳을 떠나, 온 섬을 횡단하여 서쪽에 있는 항구도시인 바보에 도착하였다.
바보는 총독 관저가 있는 구브로의 수도이다.
이곳에서 총독 서기오 바울을 만나 그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가 예수를 믿게 되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한편 서기오 바울이 복음을 듣는 일에 크게 방해를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니라 그의 최측근에서 늘 함께 있던 거짓 선지자이자 마술사인 바예수였다.
그는 총독 서기오 바울과 가장 친한 친구이므로 그의 권력을 이용하여 마술이라는 것을 통해서 바보에 있는 사람들을 미혹하여 돈을 벌었을 것이다.
그런데 자기가 돈을 버는데 큰 몫을 하는 총독이 바나바와 사울이 전하는 복음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생업에 큰 타격이 될 것은 불을 보듯 뻔 할 터.
그래서 마술사 바예수는 총독이 복음을 듣지 못하게 방해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런 마술사의 계략을 알게 된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마술사의 두 눈을 쏘아보면서 성령의 능력으로 그를 심판한다.
이는 성령께서 바울을 통하여 심판하시는 것이다.
바울의 선포로 눈이 멀어 소경이 된 바예수는 혼자서 걸을 수가 없으므로 자신을 인도할 사람을 찾게 되었다.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본 총독 서기오 바울은 하나님의 역사임을 믿게 되었다.
그리고 바나바와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여 믿는 자가 되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심판하시지만 그 심판의 결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
첫째, 거짓 선지자요 마술사인 바예수도 유대인이요, 그를 성령으로 꾸짖은 바울이라 하는 사울 역시 유대인이다.
바울도 하나님을 위하여 한다고는 하였으나 사실상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였으며, 마술사 바예수 역시 총독이 예수를 믿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일을 자행한 것으로 봐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였다.
게다가 이러한 일의 결과 두 사람 곧 바울이라 하는 사울과 바예수라는 마술사 둘 다 눈이 멀어 소경이 되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이다.
바울이라는 사울은 소경이 된 3일 동안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였다.
그러자 그의 눈을 가리고 있던 비늘이 벗겨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다음날부터 나가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전하는 자가 되었다.
그러나 마술사 바예수는 똑같은 소경이 되었다.
성경은 이 마술사가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할 것이라고 한 것처럼 분명히 그가 죽을 때까지 소경으로 지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그가 바울처럼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주님의 배려임이 틀림없을 것이었다.
물론 바예수가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성경은 침묵하고 있다.
문제는 바예수가 회개하여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온전히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수도 있고, 사도행전 8장에 나오는 마술사 시몬처럼 예수를 믿었다가 다시 옛 습성이 나와서 옛날로 돌아가 버렸을 수도 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그는 그것으로 그 인생이 주님과는 전혀 상관없는 마술사의 거짓된 인생으로 마감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대적하고 방해하던 마술사 바예수에게도 심판을 통하여 회개의 기회를 주셨다.
물론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그 결과와 상관없이 주님께서는 오늘 나에게도 이런 기회를 주셨다.
그리고 그 기회를 생명으로 나아가는 기회로 선용할 수 있게 하심이 그저 놀랍고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총독 서기오 바울은 마술사 바예수가 바울의 꾸짖음으로 소경이 되는 것을 보고 놀라워했다.
물론 그것은 분명 놀라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것을 보고 예수를 믿었다면 이제는 그런 것을 보지 않고도 믿을 수 있는 성숙한 신앙인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오늘 나는 모태신앙인으로서 지극히 자연스럽게 교회에 나갔고 예수가 주님이심을 아무런 고민과 갈등 없이 고백하였다.
나의 신앙생활은 갈등이나 고민이 별로 없이 순탄하기만 하였다.
내가 원하는 대로 되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임을 감사하고 살았고,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크게 고민 없이 그것을 담담히 받아들이며 생활하였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나의 인생을 돌아보면 내 뜻대로 된 것보다 되지 않은 것이 훨씬 많았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와서 결과적으로 주님의 일하심은 나를 복음 전도자로 쓰기 위함이었음을 보게 된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일을 그대로 이루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 길을 바꾸고 또 바꾸어 여기에 이르게 하신 것이다.
복음을 알기 전까지는 그저 총독 서기오 바울의 신앙에 머물러 있던 자였다.
육신의 눈으로 보는 것에 놀라워하고 그런 신비한 일들이 있으면 그것을 통해서 과연 하나님이 살아계시는구나 하면서 믿는 자의 모습으로 살았었다.
그런데 나는 그 이상 올라가지 못하였다.
보는 신앙에서 보지 않고 믿는 신앙으로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나의 신앙의 눈은 언제나 만물 안에서 이루는 것이었다.
내가 원하는 것을 기도하면 이 땅에서 이루어주시는 것으로 나의 믿음이 온전한가 그렇지 않은가를 판단하였다.
나는 그렇게 믿음 없는 자로, 그러나 겉으로 다른 사람들이 볼 때에는 믿음이 좋은 자로 인정받으며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러다가 온전한 통합복음을 듣고 깨닫게 되었으며 내가 진짜 복음을 아는 것이 무엇인가를 확실히 알게 된 것이다.
믿음은 머릿속에 있는 지식이나 관념으로 믿는 것이 아니다.
내가 주님의 구속사건 안에 들어가 주님과 연합하는 실재가 진정한 믿음이요 참 복음임을 깨닫는다.
그리하여 지금도 주님이 주신 그 무덤 속에서 주님과 함께 하고 있다.
그러나 무덤이라서 어둡고 무거운 것이 아니라 주님의 생명으로 넉넉히 감당하며 이 자리가 주님의 생명으로 누리는 자리임을 믿는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주님의 생명이 오늘 나에게도 이처럼 기적 같이 찾아오게 하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주님을 믿는 것이 관념이나 지식이 아닌 진리 안에서 실재가 됨을 믿습니다.
오늘 주님과 함께 하는 이 자리가 비록 무덤일지라도 그 안에서 생명으로 살게 하시고 어떤 어두움도 넉넉히 뚫고 나갈 수 있게 하심도 복음을 통한 생명으로 인함이오니 주여, 이 종을 긍휼히 여기사 당신의 은혜를 덧입게 하소서.
주님을 더 깊이 알기 원합니다.
따라서 이 자리를 그저 습관적으로 앉는 자리가 아닌 내가 죽고 오직 예수로 사는 자리요 새 생명으로 살아나는 진정으로 나의 존재를 볼 수 있는 존재적 무덤이 되게 하소서.
이 무덤 안에서 상황적인 무덤도 넉넉히 감당하며 주님의 뜻을 이루어내는 승리의 자리, 찬송의 자리, 하늘의 기쁨이 넘치는 자리가 되게 하소서.
나는 없습니다.
오직 나는 주님 안에, 주님은 내 안에 계셔서 내가 드러나지 않고 주님만 드러나는 자리로 인도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