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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웨이퍼 한 장은 응고된 전기와 물이다
대학에 들어가 처음 들은 물리 시간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교수님은 첫 주에 정의나 공식을 적는 대신 이런 문제를 냈다. “태평양에 물 한 컵을 쏟았다고 하자. 그 물이 1년 동안 태평양 전체에 완벽하게 고르게 섞인다고 가정한다. 1년 뒤 아무 데서나 물 한 컵을 떠 올린다. 그 컵 안에는 당신이 처음 쏟았던 바로 그 물 분자가 몇 개나 들어 있겠는가?” 물리에서 페르미 추정이라 부르는, 어림만으로 자릿수를 때려잡는 훈련이다.
직관은 0이라고 답하고 싶어 한다. 한 컵의 물이 태평양이라는 무한에 가까운 바다에 흩어졌으니 다시 만날 리 없다고. 그러나 반대편에서 아보가드로 수, 1몰당 6×10²³개라는 괴물 같은 숫자가 달려든다. 물 한 컵은 약 250그램, 0.25리터다. 물 18그램이 1몰이니 한 컵에는 분자가 약 8×10²⁴개 들어 있다. 태평양은 가로세로 1만 km, 평균 깊이 약 4km로 어림하면 부피가 10⁸~10⁹ km³, 곧 10²⁰~10²¹리터 — 실제 값은 약 7×10²⁰리터다. 처음 쏟은 분자가 여기 고르게 퍼지면 1리터당 1만 개 남짓, 다시 250밀리리터를 떠 올리면 그 안에 처음 그 분자가 약 3천 개 들어 있다. 0이 아니라 수천 개다.
이 직관의 배신을 더 극적으로 보여 주는 숫자가 항하사(恒河沙)다. 인도 갠지스강의 모래라는 뜻으로, 옛사람들이 ‘셀 수 없이 많은 것’의 대명사로 10⁵²이라는 수에 붙인 이름이다. 그런데 막상 갠지스강의 모래알을 어림계산해 보면 — 강 길이 2,500km에 모래밭 폭과 두께를 후하게 잡아도 — 대략 <10²¹>개 안팎이다. '셀 수 없다'며 붙인 이름(10⁵²)이 정작 그 모래의 실제 개수보다 지수로 서른 자리 넘게 크다. 거꾸로 10⁵²은 지구를 통째로 원자로 분해한(약 3.6×10⁵¹개) 숫자보다 크다. 더 압권은 <물 18그램, 한 모금이 품은 분자가 6×10²³>개로, <갠지스강 전체 모래알(약 10²¹개)보다 천 배 많다>. 한 컵의 물에 든 물 분자 수가 갠지스강 모래알 개수보다 많으니, 태평양에 쏟은 한 컵이 수천 개로 되돌아오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나도 같은 식의 문제를 공대 신입생들에게 던진다. 전기과 학생에겐 휴대폰 배터리를 충전할 때 초당 몇 개의 전자가 흘러가는지, 토목과 학생에겐 남산을 덤프트럭으로 다 실어 나르려면 몇 대가 필요하고 기간은 어느 정도 걸릴지. 이런 계산을 하는 목적은 늘 하나다. 거대한 총량을 거대한 개수로 나누면 의미 있는 '1인분'이 떨어지고, 그 값은 자릿수 수준에서 놀랍도록 안정적이다. 권위 있는 단 하나의 숫자에 기대지 않고도, 나눗셈 한 번이면 사물의 본질이 드러난다.
반도체 웨이퍼 한 장에 응고된 전기와 물
이 나눗셈을 반도체 웨이퍼에도 해 보자. <반도체 웨이퍼>는 사실상 <전기와 물의 응고체>다. 증명하겠다고 권위 있는 단일 수치를 찾을 필요는 없다. 태평양 물컵 문제처럼, 그냥 나누면 된다. 반도체 회사의 1년치 전력·용수 사용량을 그해 웨이퍼 생산량으로 나누는 것이다.
TSMC를 보자. 이 회사는 대만 전체 전력의 약 8%, 어림잡아 연 25테라와트시(25,000,000,000kWh)를 쓴다. 같은 해 출하한 웨이퍼는 12인치 환산 약 1,200만 장이었다. 나눠 보면,
25,000,000,000kWh/12,000,000장=약 2000kWh/장
웨이퍼 한 장에 전기 2메가와트시, 곧 2,000킬로와트시다. 4인 가구가 몇 달에서 반년 가까이 쓰는 전기가 손바닥만 한 실리콘 원판 한 장에 들어가 있다는 뜻이다.
태평양 문제처럼 다른 길로도 가 보자. 반도체 전공정은 한 번 노광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마스크층을 수십 번 반복한다. TSMC가 공개한 단위 지표는 12인치 환산 웨이퍼 마스크층 한 층당 전력 약 37~40kWh. 첨단 로직이 50~80층이라면 한 장에 2,000~3,200kWh다. 앞에서 나눠 얻은 2,000kWh와 같은 자릿수다. 전혀 다른 두 경로가 같은 답으로 모인다. 학계 수치도 같은 동네에 있다. 한 평가 연구는 12인치(300밀리미터) 웨이퍼 한 장의 전력 수요를 메모리(DRAM) 약 690kWh, 로직 약 2,140kWh로 제시했다. 메모리는 가볍고 로직은 무겁지만 둘 다 어림한 자릿수 안이다. 이쯤이면 그 자릿수를 믿어도 된다. 12인치 웨이퍼 한 장 = 전기 수백 kWh에서 2~3천kWh.
물도 똑같이 따라온다. 면적당 평균값으로 환산하면 한 장에 물 약 6톤, 첨단 공정은 마스크층 수로 환산해 10톤 안팎이다. 그것도 <그냥 물이 아니라 이온 한 톨까지 걸러낸 초순수>다. 정리하면 이렇다.
그래서 <반도체 웨이퍼 한 장은 실리콘 원판이 아니다. 고품질 전력 2메가와트시급과 초순수 10톤 안팎이 수백 번의 공정 단계를 통과하며 새겨진, 응고된 에너지-물 복합체>다.
반도체 수출은 곧 전기와 물의 수출이다
한 걸음만 더 가면 결론이 보인다. 우리가 반도체를 수출할 때, 송장에는 칩이 적히지만 컨테이너에 실려 나가는 것은 그 칩 속에 응고된 전기와 물이다. 한 장에 2,000kWh·10톤이라면, 한 해 수천만 장을 찍어 내는 나라는 자국 전력망 수십TWh와 수자원 수억 톤을 칩의 형태로 바꿔 내보내고 있는 셈이다. 칩 수출 강국은 동시에, 보이지 않는 형태로 전기와 물을 가장 많이 수출하는 나라다.
우리 사정으로 오면 더 직접적이다. 삼성전자 한 회사의 전력 사용량은 2021년 기준 약 26TWh로 세계 ICT 기업 중 1위였다. 그 전기의 상당 부분이 반도체를 만드는 데 들어간다. 우리가 반도체로 벌어들이는 외화의 밑바닥에는, 국가 전력망과 수자원 시스템이 통째로 깔려 있다.
한국은 물이 부족한 나라가 아니다
여기서 흔한 오해 하나를 끊고 가야 한다. “한국은 물 부족 국가”라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1990년대 PAI라는 민간 연구소가 강수량을 인구로 나눈 값(1인당 1,000~1,700세제곱미터)으로 한국을 '<물 스트레스 국가'로 분류한 것을, 누군가 'UN이 지정한 물 부족 국가'로 잘못 옮기면서 퍼진 표현이다>. <정작 UN·FAO(유엔 식량농업기구)의 물 부족 지도에 한국은 들어 있지 않다>.
물리적으로 한국의 연평균 강수량은 약 1,300밀리미터로 세계 평균의 1.6배다. 절대량이 모자란 게 아니다. 문제는 시간과 공간의 분포다. 비가 여름 몇 달에 몰리>고, 그 상당량이 쓰이기도 전에 바다로 빠져나가, 실제로 활용하는 양은 수자원 총량의 4분의 1 남짓이다. 게다가 인구밀도가 높아 1인당 강수 총량으로 환산하면 세계 평균의 16~17% 수준으로 떨어진다. 즉 한국의 물 문제는 '없다'가 아니라 '고르지 않다'이다. 여름비를 가둬 두고, 재이용을 늘리고, 권역 간에 돌려쓰게 관망을 설계하면 감당할 수 있다. 태평양 컵 문제와 똑같은 구조다. 총량은 충분하고, 관건은 관리와 배분이다.
호남: 있어 보여도, 없는 것은 없는 것이다
마침 지금(2026년 6월 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광주·전남 반도체 클러스터 구상을 두고 “호남에는 RE100 전력과 충분한 물이 있다”는 주장과 “호남에는 반도체에 댈 물도 전기도 없다”는 주장이 맞선다. 물리쟁이의 어림으로 따져 보면, 두 주장 다 절반만 보고 하는 소리이고 진실은 하나다.
전력부터 보자. 전남의 전력자급률은 2024~2025년 기준 약 200~213%로 전국 최상위권이다. 영광 한빛원전이 연 최대 약 516억 kWh=52TWh로 국내 전력의 10% 가까이를 대고, 여기에 해남 솔라시도 같은 대규모 태양광과 서남해안 해상풍력이 있다. 그러나 이 '남는 전기'를 곧이곧대로 믿으면 안 된다. <자급률을 부풀린 날건달 태양광·풍력은 해가 지고 구름이 끼고 바람이 자면 그대로 주저앉는 간헐 전원>이다. <게다가 송전망이 못 따라가, 원전 네 기 분량인 4.2기가와트 용량이 계통에 물리지 못한 채 대기하고, 멀쩡히 만든 전기를 강제로 버리는 출력제어가 해마다 늘고> 있다. 반면 반도체 팹은 단 1초의 정전도 수백만 달러어치 웨이퍼를 폐기시키는, 24시간 365일 흔들림 없는 전기를 요구한다. <양으로는 남아도는 전남의 전기가, 질(안정성)로는 한참 모자란다>. 비가 오고 바람이 자는 날, 간헐 전원을 메워 주는 것은 결국 원전 같은 기저전력인데, 그 모자람을 채워 줄 안정성의 척추가 바로 전남 영광의 한빛원전이다. 그런데 이런 <한빛원전의 현황은 처참하다>.
물도 본질은 같지만 함정이 하나 더 있다. 정부는 영산강·섬진강 7개 댐(약 15억 톤)으로 하루 337만 톤을 댈 수 있다 하고, 전남도는 영산호·영암호·금호호(저수량 6억 3천만 톤)에서 장마철엔 하루 2,632만 톤이 그냥 바다로 빠진다고 반박한다. 맞는 말이지만, <장마철에 넘치는 물 즉 홍수까지 '가용 수자원'으로 셈하는 것은 회계 분식에 가깝다>. <반도체 팹 네 기가 하루 80만~120만 톤을 쓰려면, 기준은 물이 넘치는 장마철이 아니라 바닥을 보이는 농업용수가 많이 쓰이는 봄철 갈수기와 겨울>이어야 한다(봄 225mm, 여름 691mm, 가을 275mm, 겨울114mm). 전기가 24시간 365일 필요하듯 물도 그렇다. 다행히 물은 전기와 달리 쉽게 가둬 둘 수 있다. 그래서 '<댐과 저수지를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곧 답이다. 거기에 생태도 함께 들어가야 한다. 강물을 한 방울까지 짜내 공장에 몰아주는 계산은, 최소한의 하천유지유량을 지워 버린 가짜 셈일 뿐이다.
곡창지대인 호남에는 물이 많다. 모자란 것은 자원이 아니라 수자원 인프라다. 이재명 대통령의 표현대로, <수십 년간 호남을 농업 위주로 관리하며 농업용수를 대는 수준으로만 수자원을 키워 왔을 뿐, 대규모 산업용수를 끌어 쓸 공급망을 짓지 않았다>. 2022~2023년 광주·전남의 가뭄이 뼈아팠던 것도 빗물을 산업 규모로 가둬 돌려쓸 그릇, 즉 큰 댐이 없었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전라도에는 금강 수계와 섬진강 수계를 빼면 큰 댐을 지을 곳이 마땅치 않다>. 금강 수계의 용담댐 물은 하류 충청권 물이용에 직격탄이 되고, 섬진강은 동쪽이라 거리가 멀고 광양 쪽으로 흘러든다. 그러면서 <4대강 보인 영산강 보(승촌·죽산)는 십 년 넘게 정쟁의 볼모>였다. <허문다 했다가(2021년 해체 결정)>, 감사원이 그 경제성 분석이 부실하다고 지적하자 뒤집혔고(2023년 결정 취소), <정작 보는 헐리지도 제대로 쓰이지도 못한 채 어정쩡하게 서 있다>. <강 하나를 허무느냐 마느냐로 십 년을 싸우는 동안, 정작 지어야 할 갈수기 산업용수 인프라는 첫 삽도 뜨지 못했고 앞으로도 해결 불가로 본다>. 부족한 것은 물과 전기라는 자원이 아니라, 그것을 제때 제 곳으로 보내는 격자(grid)와 관망, 그리고 결단인데 그것조차 없이 분칠만 한다.
그리고 안정적 전원인 원전 이야기: 40년은 물리적 수명이 아니다
앞서 말했듯 호남의 전력에는 마지막 척추가 하나 있다. 영광의 한빛원전이다. 여천화학단지의 화력을 빼면 사실상 호남 지역에서 유일하게 가동되는 기저전원으로 날건달 재생에너지가 쉴 때 이 지역에 전력을 공급할 유일한 보루다. <한국의 산업화를 떠받친 것이 무엇이었나를 따지면, 값싸고 흔들림 없는 기저전력으로서 원전의 몫을 빼놓을 수 없다>. <반도체·석유화학·철강처럼 전기를 통째로 먹는 산업이 이 땅에서 자랄 수 있었던 것은 원전 덕분>이다. “<제조업 수출이 전기의 수출>”이라면, 그 전기의 상당량을 오랫동안 원전이 만들어 왔다는 뜻이다.
여기서 한 가지는 분명히 짚어야겠다. <원전의 “설계수명 40년”은 원자로의 물리적 수명이 아니다>.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는 그 40년이 원자력 기술의 한계가 아니라 초기 인허가 당시의 경제성·반독점 같은 행정적 고려에서 나온 기간>이라고 명시한다. 원자로의 진짜 수명을 정하는 것은 달력이 아니라 원자로 압력용기의 중성자 취화, 배관·케이블·콘크리트의 노화 같은 측정 가능한 물성 변화다. 그것은 감시하고 관리하는 공학의 문제이지, 40년이 차는 순간 땡하고 종이 울리면서 수명이 끝나는 마법이 아니다. NRC의 고령화 연구 결론도 같다. 대부분의 노화는 관리 가능하며, 40년 너머의 운전을 막을 기술적 장벽은 없다는 것이다.
세계가 가는 방향이 그 증거다. <미국은 상업 원전 96기 중 약 88기가 이미 운전 기간을 60년으로 늘렸고>, <이제는 80년짜리 2차 연장(SLR)으로 넘어가고> 있다. 터키포인트·피치보텀·서리가 80년 허가를 받았고, 미 에너지부 집계로 20여 기가 80년을 목표로 줄을 섰으며, <업계에선 100년 운전 논의까지> 나온다. 1972~73년에 켠 원자로를 2050년대까지 돌리겠다는 것이다.
<한국은 정반대 풍경이다. 최초의 원전인 고리 1호기는 이제 해체로 가고 있다>. 원전 해체라는 먹잇감 앞에서는 찬핵과 반핵이 유일하게 서로 손을 맞잡지만, 국가적으로는 큰 손해다. 한빛 1호기(영광, 950MW급)는 2025년 12월 22일 설계수명 40년이 차자 멈췄다. <물리적으로 고장 난 게 아니라 운영허가 기간이 끝났기 때문>이다. 이 원자로는 40년간 약 277테라와트시를 생산했다 — 쌍둥이 2호기와 합치면 광주·전남이 10년간 사 쓴 전력을 웃도는 양이다. 그 2호기도 2026년 9월이면 같은 운명이다. <한빛만의 일이 아니다. 고리 2·3·4호기가 이미 같은 이유로 멈췄고, 한울 1·2호기, 월성 2·3·4호기까지 줄줄이 대기 중이다>. <멀쩡히 돌 수 있는 원자로들이 '서류상 40년'에 걸려 차례로 꺼지고 있다>.
더 얄궂은 것은 제도의 설계다. 한국은 계속 운전이 불가능한 나라가 아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노후 원전 10기의 계속 운전을 추진 중이고, 2025년 11월엔 고리 2호기가 첫 승인을 받아 2034년까지 다시 돌릴 길이 열렸다. 문제는 그 길을 걷는 방식이다. 현행법은 계속 운전 10년을 허가가 난 날이 아니라 설계수명이 만료된 날부터 센다. 심사에 보통 1년 반에서 2년이 걸리고, 승인 전에는 설비 개선 공사조차 시작할 수 없다. 그 결과 고리 2호기는 10년을 연장 받고도 실제로는 7년쯤만 돌게 된다. <멀쩡한 원자로를 심사 기간만큼 세워 두고, 그 세워 둔 시간을 다시 수명에서 깎는 셈이다>. 탈원전 기조 속에 신청의 적기를 놓친 것이 이 공백을 키웠다. 한 장에 2메가와트시를 먹는 반도체 팹을 같은 전남 땅에 새로 짓겠다면서, 바로 옆에서 멀쩡한 원자로를 행정 지연으로 늙혀 죽이고 있는 것이다.
극단적 사례가 월성 1호기다. 국내 첫 가압중수로인 이 원전은 30년 설계수명이 끝나자 약 7,000억 원을 들여 노후 설비를 갈아 끼우고 2015년 원안위로부터 2022년까지의 계속운전 승인까지 받았다. 그런데 2018년 한수원 이사회가 “경제성이 없다”며 조기 폐쇄를 결정했고, 2019년 원안위가 영구정지를 의결했다. 이후 2020년 감사원은 그 폐쇄의 근거가 된 경제성 평가가 부당하게 낮게 산정됐다고 지적했고, 관련 자료가 삭제된 정황까지 드러나 형사재판으로 이어졌다. <수천억을 들여 새로 고친 국가 자산을, 채 돌려 보지도 않고 멈춰 세운 것>이다. <고친 차를 정비소에서 곧장 폐차장으로 보낸 격>이다.
오해는 말자. 안전은 흥정의 대상이 아니다. 한빛 1호기는 40년간 45번 멈춰 섰고, 2019년엔 저출력 물리시험 중 제어봉을 잘못 조작해 열출력이 제한치(5%)를 넘어 18%까지 치솟았는데도 곧장 정지하지 않은 사건이 있었다. 한빛 3·4호기에선 격납건물 콘크리트 공극이 무더기로 나왔다. 이런 원전의 계속운전에는 독립적이고 깐깐한 안전 심사가 반드시 앞서야 한다. 다만 연구로에서 중성자 빔 시설의 방사선 차폐를 직접 설계하고 다뤄 본 사람으로서 한마디 보탠다. 노화는 신비가 아니라 측정값이다. 압력용기가 얼마나 취화됐는지, 콘크리트 공극이 구조에 영향을 주는지는 숫자로 답이 나오는 공학의 문제다. <정작 방사선을 손으로 다루는 사람들이 '관리 가능하다'고 말하는 사안을, 40년이라는 행정 숫자를 물리 법칙처럼 외우면서 매뉴얼을 뒤적이는 이들이 가로막는 일이 너무 잦다>. 그러니 심사의 결론은 둘 중 하나여야 한다. 측정해서 기준을 넘으면 제때 돌리고, 못 넘으면 닫는다. 지금 한국의 병은 그 둘 중 어느 것도 아닌, 합격할 자산까지 심사로 늙혀 죽이는 우유부단이다. 미국이 80년·100년을 설계로 푸는 동안, 우리는 매뉴얼 한 줄에 적힌 40년이라는 숫자를 물리 법칙으로 떠받들고 있다.
닫으며
반도체는 응고된 전기와 물이다. 그것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파는 나라가, 정작 제 전기와 물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없는 것은 자원이 아니다. 여름비를 가둘 그릇, 남는 전기를 보낼 선, 멀쩡한 원자로를 제때 돌릴 결단 — 부족한 것은 언제나 설계와 용기였다. 물리쟁이의 첫 수업이 가르친 그대로다. 압도되기 전에, 일단 나눠 보라. 나눠 보면 답은 늘 거기 있다.
참고 자료 (수치 확인용)
- 항하사(恒河沙)=10⁵², 갠지스강 모래 비유 / 지구 전체 원자 수 약 3.6×10⁵¹: 동양 큰 수 단위 자료(나무위키 등). 갠지스강 모래알 수 약 10²¹·1몰 6×10²³은 페르미 어림.
- TSMC 2023 웨이퍼 출하 1,200만 장(12인치 환산)·대만 전력 약 8%·마스크층당 약 37~40kWh: TSMC 연차보고서 / S&P(2024) / TSMC 2024 지속가능보고서.
- 300mm 웨이퍼 전과정평가(DRAM 약 690kWh, 로직 약 2,140kWh): *Life cycle assessment of silicon wafer processing*(2012). 면적당 평균(장당 약 813kWh·5.8톤): KeAi 연구(2023).
- 삼성전자 2021년 전력 약 26TWh(세계 ICT 1위), 국내 풍력·태양광 21.5TWh: Statista / 그리니엄.
- 한국 강수량·물 스트레스(1인당 1,000~1,700㎥, 수자원 활용률 약 26%): 국토부·경향신문·아시아경제·FAO/PAI.
- 전남 전력자급률 약 200~213%·한빛원전 연 최대 516억kWh·계통연계 대기 4.2GW: 전남연구원/한국은행 광주전남본부/한전 통계.
- 호남 반도체 용수 논쟁(7개 댐 15억 톤·하루 337만 톤·담수호 6.31억 톤·장마철 2,632만 톤 방류·팹 4기 80만~120만 톤/일·대통령 발언): 서울경제·전자신문·한국일보·뉴스핌(2026.6).
- 영산강 보: 2021.1 죽산보 해체·승촌보 상시개방 결정 → 2023.7 감사원 경제성 분석 부실 지적 → 2023.8 결정 취소(미철거): 국가물관리위원회·정책브리핑·워터저널·경향신문.
- 한빛 1호기 만료 정지(2025.12.22)·누적 약 277TWh·45건 고장·2019 제어봉 사건(열출력 18%), 고리 2호기 첫 계속운전 승인(2025.11): 뉴시스·전기신문·여성경제신문·광주일보.
- 계속운전 기산점이 설계수명 만료일이어서 실질 가동기간 단축(고리2호기 약 7년): 전기신문(2025.12).
- 월성 1호기 약 7,000억 개보수·2015년 연장 승인 → 2019년 영구정지 → 2020년 감사원 경제성 과소평가 지적·형사재판: 한국경제·환경경찰뉴스·감사원.
- 미국 인허가 40년은 경제·반독점 고려(기술적 한계 아님)·60년 96기 중 약 88기·80년 SLR(터키포인트·피치보텀·서리)·100년 논의: 미국 NRC/World Nuclear News/POWER Magazine.
<Soo Joh Chae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