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 리뷰 2004년 2월부터 연재되었던, '철의 관, 일본의 전차' 첫번째 연재분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pp106~107
[전략] 중일전쟁의 막간, 시범적인 전차의 운용 사례들
앞서도 언급했지만, 중국의 전차운용은 우리의 통념보다 훨씬 빨랐다.
중국 전차의 역사는 1919년 중국의 군벌 장작림이 최초의 르노 전차를 손에 넣은 이래부터라 해야 할 것이다.
이들 전차들은 만주를 장악한 장작림의 봉천 군벌과 북경일대를 장악한 오패부의 직예 군벌과의 항쟁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었고, 중국 남부에 있던, 장개석의 국민당군도 장갑차량을 도입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장개석은 30년대까지 30여대의 르노 FT를 손에 넣었다고 한다.
특히 장개석은 독일의 군사고문 폰젝트의 권고 하에 1933년 이래로 5개년의 군 현대화 계획을 추진한 인물이다.
그러나 중국의 복잡한 외교문제는 각국의 군사고문단들이 철새처럼 전입전출을 반복하게 만들었고, 비중 있는 군사고문단의 국적이 옮아가는 것에 맞추어 무기 도입선도 오락가락 할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중국군의 전차들은 프랑스제 르노 경전차 시리즈, 영국의 수출형 빅커스 전차, 카텐로이드 경전차, 독일제 1호전차, 심지어는 소련제 T26까지 뒤섞인 잡동사니 덩어리들이 되고 말았다.
이들 전차들이 일본군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당연히 1937년 노구교사건으로 중일전쟁이 본격화 된 이후였다.
물론 이전에도 1931년의 1차 상해사변에서 중일 양국이 보유한 장갑차량이 전장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이때의 충돌은 양국이 보유한 빅커스사제 장륜 장갑차들 간에 벌어진 것이었고, 본격적인 전차의 출현은 아니었다.
이렇게 전차끼리 만날 일이 없었던 이유는 그때까지만 해도 전차의 적은 전차라는 오늘의 관념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이었으므로, 전차가 나타났다는 소식에 제일 먼저 대전차포부터 옮겼던 것이다.
그럼 당시 중국과 일본의 전차 사용 사례를 잠시 살펴보자
상해 조계의 전투에 투입되어 일본의 해군 육전대와 싸운 중국의 빅커스B형 전찬는 당시로서는 강력한 47mm포로 무장하여 그 능력을 인정받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전차는 일본군의 전차와 승부를 겨룰 기회도 없이, 보병포나 대전차포 사격, 보병의 근접공격에 격파 당했고, 그런 꼴을 당하기는 일본의 전차들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중일전쟁이 격화되고 한때 국민당 정부의 근거지였던 남경까지 일본군이 쇄도할 무렵에는 대규모 전차전이 일어날뻔한적도 있었다. 장개석이 공산당 탄압으로 관계가 소원했던 소련과의 외교를 급거 정상화 시켜 대량의 T26전차를 얻은 상태에서 기존의 독일, 영국, 프랑스제 전차, 장갑차량을 함께 뒤섞은 기계화 사단을 급조, 일본의 공세를 저지하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미 지휘부가 혼란상태에 빠진 국민당군은 이들을 제대로 통솔할 역량이 없었고, 이 부대는 그 전투력을 제대로 보일 기회도 없이 와해되고 말았다.[후략]
요약도 없이 그냥 책 내용을 그대로 옮겼습니다-0-
3줄 요약하자면
1. 중국군은 전차를 일찍부터 보유했다.
2. 상해사변에서 전차전이 일어날뻔 했으나 그런 거 없었다.
3. 닥닥 긁어 모은 중국군 전차 사단은 자방했다-_-;
중일 전쟁으로 노획한 중국군 화포를 이용해서 자신의 전차를 테스트한 일본군이 충격에 빠졌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니 잘 아실꺼고-_- 엽기적인(...) 성능을 자랑했던 일본군 전차들은 대규모 전차부대가 없는 중국군을 상대로 잘 버텼다고 하는군요. 하지만 워낙 비중을 두지 않은 내용이라-_- 예전에 일본의 아머모델링에서 우에다 신 선생이 일본군 전차사를 연재했었는데 거길 참조하시는 것도 괜찮을 듯 하군요(구할 수 있을지;;;)
첫댓글 중국군 특히 국민당이나 공산당의 전차전에관한 정보는 항상 궁금해하던 것이었는데, 오늘 비로서 그 의문이 풀렸습니다. 좋은 정보 준비해주신 김선생님께 머리숙여 최경례!
제가 한게 아니라서-_- 민망스럽군요-0- 어쨌든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중국군 화포가 독일제가 많으니 놀랄 수 밖에요. 88밀리라면 늘 연합군에서 감탄의 눈으로 보지 않았습니까. 어차피 중국군 37밀리도 독일제이고, 일본군 37밀리도 독일제 카피이니.
일본군은 자신들의 전차 장갑 기준을 당시 대새였던 37미리로 잡았었는데... 국산의 위력과 국민당군에게서 노획한 동급 포의 위력이 판이하게 달라서 충격을 먹었더랬죠-_-
아아..정녕 1940년대의 중국전선전차전자료는 구하기힘든게군요..ㅠㅠ 암튼 감사드립니다^^
보병이 옆을 소총 개머리판으로 때린 다음, 말걸어서 합동 작전(?)이 가능했다는 일화가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