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1077) - 친구가 베풀어준 산수(傘壽)잔치
어느덧 어수선했던 2023년이 저물어간다. 한 해 동안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해마다 이맘때 쯤 올해의 사저성어를 선정한 교수신문은 전국의 대학교수 1315명을 상대로 ‘2023 올해의 사자성어’ 선정투표를 진행한 결과 견리망의(見利忘義, 이로움을 보자 의로움을 잊다)가 30.1%(398명)로 최다득표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견리망의를 추천한 교수는 ‘지금 우리사회는 나라 전체가 마치 각자도생의 싸움판이 된 것 같다. 정치인은 국민들을 바르게 이끌기보다 자신이 속한 편의 이익을 더 생각하는 것 같다.’는 이유를 내세웠고 이 단어에 투표한 교수들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야 모두 공천권자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 사회 구성원 간의 신뢰가 무너지고 공동체가 나아갈 방향이 불확실해졌다.’ 등을 선정이유로 들었다. 견리망의(見利忘義)는 논어의 견리사의(見利思義, 이익을 보면 의를 생각한다.)에서 차용한 단어, 10여 년 전 강릉 오죽헌을 탐방할 때 경내의 비석에 새긴 이 사자성어를 보며 율곡의 성찰을 새겼는데 오늘날 이처럼 변형된 단어로 우리에게 다가올 줄이야!
교수신문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 견리망의
엊그제 서울의 고급호텔 뷔페식당에서 50년 넘게 이어온 동문(고등학교와 대학을 함께 나온 선후배)모임의 송년파티를 가졌다. 초대자는 오랫동안 저명회사의 CEO로 활동 중인 동창부부, 금년으로 산수(傘壽, 80세)를 맞는 죽마고우가 또래의 동기들과 함께 이를 자축하는 행사를 곁들여 주선한 것이다. 각자도생의 세태 속에서도 이웃을 살뜰히 챙기는 친구내외의 배려가 아름다워라.
송년파티에 참석한 노익장 회원들의 표정이 밝다
모임의 분위기는 화기애애, 두 시간 반 동안 푸짐한 음식과 즐거운 교제를 나누는 노년의 회원 모두 행복한 모습이다. 대화방에 오른 회원들의 반응, ‘잔치를 베푼 동문내외분, 감사드립니다. 산수를 맞은 회원들 축하드립니다.’ ‘너무너무 행복합니다. 모두모두 사랑합니다.’ 형제자매처럼 다정한 회원들이여, 남은 때 더욱 건승하시라.
동기들은 10년 전(2013년) 칠순을 맞이하였을 때에도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동문들과 함께 치른 칠순잔치’라 적은 당시의 기록을 살펴보자.
‘아름다운 강산에 벚꽃과 개나리가 활짝 핀 봄날, 창립 40년을 맞는 신성회(고등학교와 대학을 같이 나온 동문모임)에서는 금년으로 칠순을 맞는 동창들의 주선으로 1박2일의 남녘순례 길에 나섰다. 순례코스는 진주 촉석루, 고성 화석지, 쌍계사 벚꽃 길을 거쳐 지리산자락에 있는 00수련원에서 1박한 후 구례화엄사와 금산의 보리암을 돌아보는 여정이다.
오전 8시에 강남의 경부고속터미널을 출발한 우리 전용의 우등버스는 26명의 일행을 태우고 진주를 향하여 힘차게 달린다. 진주에 도착하니 12시가 지난 점심시간이다. 진주가 고향인 박00 회원이 어렸을 때 맛있게 먹은 추억을 살려 고장에서 잘 알려진 비빔밥집에서 점심을 대접하였다. 식당 가까운 곳에 촉석루가 있다. 촉석루에 올라 유려한 경관을 살피고 바로 아래쪽에 있는 의암(논개가 왜장을 껴안고 뛰어든 바위)에서 장렬하게 순절한 역사의 한 장면을 회상하였다. 촉석루에서 나오니 오후 2시, 일행은 고성군의 공룡박물관을 향하였다. 박물관을 돌아본 후 어린이들이 즐겨 타는 미끄럼방식의 내리막코스를 이용하여 주차장에 이르는 행로가 칠순 전후의 어른들을 동심에 빠져들게 한다.
숙소는 구례화엄사 인근에 있는 00수련원, 여장을 푼 후 식당에 모여 저녁을 들고 별도로 마련된 방에서 잔치를 벌였다. 이00 회원이 케이크와 명품 와인을 미리 준비, 오빠(?)들의 칠순잔치를 위하여 해외여행 때 마다 수시로 와인을 한 병씩 사 모았다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촛불을 끄고 케이크를 자른 후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는 일행들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흐른다. (이하 생략)
동기부부 5쌍은 그해 6월에 선경(仙境)으로 알려진 중국 운남성의 여강(麗江)과 상그릴라 일대를 여행하며 오랜 우정을 다지고 고희(古稀)의 소회를 함께 나누었다. 그때의 기록 한 부분,
‘이어서 옥수채 바로 아래쪽에 있는 동파만신원으로 향하였다. 이곳에 앉아 쉬는 동안 자연스럽게 노래 가락이 나온다. 국악을 배운 친구부인이 청아한 목소리로 '바람결에 실려 왔나, 구름 따라 날려 왔나, 아마도 나 이곳에 온 것은 임 보려고 왔네'라는 가사에 그 부군이 감격어린 표정이고 대중가요 '만남'을 합창하는 사이 '돌아보지 마라, 후회하지 마라'는 대목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흐른다. 오랜 벗들과 함께 선경을 돌며 맞은 칠십년 세월이 행복함으로 충만하여 심령 깊은 곳에서 나온 영혼의 울림인 듯. 자녀들아, 아버지는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살았노라.’
칠순여행 때의 동기부부들
10년 전 벗들과 함께 70년 세월이 행복함으로 충만한 것을 기쁨으로 회상하였는데 그 후 10년을 건강하고 충실하게 살아온 날들이 대견하다. 지금은 백세를 자연스럽게 운위하는 세태, 언제 다시 지나온 세월을 찬미하랴!
* 파티를 끝내고 지인의 장례식장으로 향하였다. 승객들로 붐비는 지하철에 오르니 젊은 여성이 재빠르게 자리를 양보한다. 부담을 줄까봐 일부러 시선을 피하였는데 선뜻 자리를 내주는 마음씨가 고마워라. 가방에 넣어둔 꽃송이(파티에서 달아준)를 꺼내어 건네주니 환한 표정, 이내 꽃을 화면에 담아 누군가와 통화하며 기쁨을 공유한다. 장례식장에서 고인의 영전에 바친 것은 국화 꽃 한 송이, 모두의 삶이 꽃처럼 아름답고 향기롭기를!
아름다운 향기를 품은 꽃 한 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