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어가는 중인가 미열이 오르는 중인가
건너가는 중인가 돌아오는 중인가
어렴풋이 돋아나는 중인가
희미하게 스러지는 중인가
빨강 우산이 무중력의 눈길을 밀어 올린다
컷과 컷 사이로 행복이라는 어리석음이, 찰칵
끝이 흐린 플래시를 터뜨린다
노란 택시가 틈과 그때의 방향을 몰고 가고,
순환구조형식이어서
어디에도 도착하지 않는다
눈송이와 빗방울이 길을 묻지 않듯
점, 점, 점
휘날리는 목적지들
왼쪽 귀를 간지럽히는 빗소리처럼
내 안에서 떠도는, 창문 밖의
온도들
*사진작가 사울 레이트(Saul leiter)의 다큐멘터리 중에서
-『내외일보/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2022.12.15. -
모든 움직이는 것에는 방향이 있습니다. 그게 직선일 수도 있고, 곡선일 수도 있고, 때로는 지그재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움직이는 모든 것이 목적지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와 막 헤어진 여자를 태운 택시 한 대가 빗속을 달려갑니다.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져 내리던 빗방울들이 차 유리창에 부딪혀 흘러내립니다. 소중한 이를 잃어버린 여자도, 땅에 닿기도 전에 흩어지는 빗방울도, 종일 손님을 태우고 떠돌아다니는 택시도 목적지를 상실한 채 그저 앞으로만 달리고 있습니다.
그때, 빨간 우산을 쓴 이가 택시 앞을 가로질러 갑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사진작가가 셔터를 누릅니다. 목적지를 상실한 점과 점들이 맞물려 하나의 장면을 이룹니다. 현대인의 일상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