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옹 (외 2편)
김행숙
볼 수 없는 것이 될 때까지 가까이, 나는 검정입니까? 너는 검정에 매우 가깝습니다.
너를 볼 수 없을 때까지 가까이, 파도를 덮는 파도처럼 부서지는 곳에서, 가까운 곳에서 우리는 무슨 사이입니까?
영영 볼 수 없는 연인이 될 때까지
교차하였습니다. 그곳에서 침묵을 이루는 두 개의 입술처럼. 곧 벌어질 시간의 아가리처럼.
타인의 의미
살갗이 따가워.
햇빛처럼
네 눈빛은 아주 먼 곳으로 출발한다
아주 가까운 곳에서
뒤돌아볼 수 없는
햇빛처럼
쉴 수 없는 여행에서 어느 저녁
타인의 살갗에서
모래 한 줌을 쥐고 한없이 너의 손가락이 길어질 때
모래 한 줌이 흩어지는 동안
나는 살갗이 따가워.
서 있는 얼굴이
앉을 때
누울 때
구김살 속에서 타인의 살갗이 일어나는 순간에
여행에 필요한 것들
충동적으로 여행을 떠났는데 길은 꼼짝하지 않고 자동차는 기었어.
엉엉 울었지.
이럴 때 너라면 차창을 내리고 뭐라도 좀 바꿔보겠니?
공기나 기분 같은 거. 음악 같은 거. 당신은 베란다에서 그렇게 한다.
해가 뜨겁군.
나는 고속도로 한 가운데 이 망할 고물자동차를 파킹하고 뚜벅뚜벅 걸어 나갈 거야.
뒤에서 들려오는 욕설은 이해할 수 없는 현대음악처럼
저녁에 내가 도착한 바닷가 마을은 메뉴판 외에는 읽을거리가 없네.
내 마음엔 백 가지 생선이름만 가득!
오로지 죽은 생선들로만! 그렇지만 내가 죽인 건 아니지. 내가 죽인 건 따로 있지.
저런, 이 모텔엔 빈방이 없다는군. 택시도 아닌데 합승을 청할 수도 없고. 그렇지만 내마음엔 백 가지 모텔 이름만 한가득!
하룻밤을 위한.
어떻게든 되는 일이 있고 어떻게도 안 되는 일이 있지. 어떻게든 나는 커튼을 걷으면서 아침을 맞았어.
이런, 해가 중천에 떴네.
내게 붙어 다니는 그림자는 꼭 붙어서 가장 짧고.
여행에서 우선 찾아야 할 것은 먹을 만한 식당과 잘 만한 모텔 같은 것들. 그렇다면 여행에서 꼭 필요한 문장은 몇 개나 될까?
그중에 하나는, "빈방 있어요?"(나는 진정한 빈방을 찾아서 세 시간을 달려왔어요! 쾅 데스크를 치며.)
그중에 하나는 터미널에서. 또 식당에서 사용했다. 또 그중에 하나는 지도에 없는 곳에서.
또 그중에 하나는 당신의 베란다에서,
당신은 곧 알 수 없는 충동에 휩싸인다. 당신의 고물자동차는 고속도로 한 가운데서 사라졌는데 말이다.
—시집 『타인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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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행숙 / 1970년 서울 출생. 고려대 국어교육과 및 같은 대학원 국문과 졸업. 1999년《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사춘기』『이별의 능력』『타인의 의미』. 현재 강남대학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