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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2 : 5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 하 ) - 고전 2 : 6 이 세상의 지혜
3]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전도하라 - 김남준 목사( 열린교회)
(고전 2: 3-5)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들어가는 말
본문을 통해 짐작컨대, 사도는 자기의 생각과 자기의 뜻을 따라 살아가고 있는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구원을 이루셨다는 사실을 믿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복음은 이 세상 사람들의 지혜에 호소해서 그 사람들의 지적인 동의를 받아내기에는 너무나 미련하고 어리석은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사도는 자신이 말하듯이 말에 능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두려워했고 떨었습니다.
사실 십자가에는 사람을 설득시킬 수 있을 만한 놀라운 논리와 지식이 없습니다. 십자가를 통한 구원 계획은 그 자체로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이나, 인간에게는 가리워진 지혜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지혜와 안목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지적으로 설득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 십자가의 복음은 지혜로운 헬라인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었고, 표적을 구하던 유대인들에게는 달갑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도는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면서도 이 복음을 증거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증거해야만 하는 이유가 사도의 마음속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도에게는 논리로 입증하고 깨달은 것보다 더 확실한 복음의 체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복음을 이해할 수 없고, 그렇다고 자신의 마음을 찢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이 진실이란 것을 보여줄 수도 없지만 복음을 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체험이 없는 복음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선조들의 복음이고 교회의 복음이지 우리 자신의 복음은 아닌 것입니다.
구원의 역사
그런데 바울이 복음을 전했을 때, 지혜를 구하고 이적을 구하던 헬라인과 유대인들이 그 십자가의 복음을 듣고 변하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도무지 설복되지 않을 것 같던 사람들이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의 사건과 복음의 의미에 관한 단순한 진술들에 무릎을 꿇고 엎드러졌던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이 없다고 굳게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논리로 설복시키는 것은 불가능하기도 하려니와 무가치합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논리로 설복시키려고 하는 마음을 갖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구원의 역사는 지적인 설복과 뛰어난 논증을 통해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말에 아주 능한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하나님이 안 계시다고 주장하는 무신론자들의 의견이 완전히 꺾일 수는 있지만, 그런다고 해서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신앙이 심겨지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반대로, 미련해 보이기만 하는 단순한 복음의 증거가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기도 합니다. 그래서 한쪽에서 복음의 미련함을 사람들이 규탄할 때에 바로 그 옆에서는 터져 나오는 지혜로운 생수의 복음을 마시며 기뻐하고 인생의 문제를 해결 받는 사람들이 있기도 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구원이 하나님의 손에 있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구원이 하나님의 손에 달린 일이라 할지라도, 복음전파는 우리 손에 있는 일입니다. 열매를 맺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주는 구원할 자를 구원하시고 고칠 자를 고치시고 거꾸러뜨릴 자를 거꾸러뜨리십니다. 그러나 그냥 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통해 복음이 전파되게 하신 후에 일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열매를 보며 교만해 하거나, 열매 없음을 인해 전도에 회의를 느껴서는 안됩니다. 그저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성과에는 상관없이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을 최선을 다해 전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그 복음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지혜를 버리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나타난 신령한 지혜에 눈뜨게 되는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면, 더욱더 이 복음을 많은 사람들에게 더 빨리 증거해야겠다는 다급한 심령을 가져야 될 것이며, 사람들이 그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저항하면, 사람들이 어서 빨리 무지에서 깨어나 복음을 받아들이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서 복음을 전해야 할 것입니다.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그런데 오늘 우리들이 묻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과연 어떻게 해서 인간의 말로는 도저히 설득될 수 없던 그 십자가의 도가 지혜 있는 사람들에게는 신령한 지혜를 가진 하나님의 비밀로, 능력을 구하던 사람들에게 구원의 능력으로 인정되어졌을까요? 그 대답은 바로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 때문이었습니다. 성령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복음이 전파되어도 단지 잘 정리된 지식의 말씀만으로는 영혼의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순전한 하나님의 말씀이 증거될 때, 성령이 나타나셔서 그 마음 가운데 역사하셔야만 주의 놀라운 말씀이 가슴속에 심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 가운데에는 자신이 어떻게 예수를 믿게 되었는지 그 심리적 작용을 순차적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이 심겨진 것이 인간의 논리로 심겨진 것이 아니라, 신령한 은혜와 신령한 방법으로 심겨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복음은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전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성령 주시기를 매우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때때로 핍박을 받기도 하고, 아무 성과 없이 돌아오기도 하지만 자신의 마음속에서는 놀라운 성령의 충만함을 경험하곤 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체험하는 비결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의지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필요함을 절박하게 느끼며 자신을 정결케 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부어주십니다. 그런데 인간이라는 존재는 환경이 조금만 안락해져도 성령이 절박하게 필요하다고 하는 느낌을 잊어버리기 일쑤입니다. 성령을 찾지 않으면 안 되는 환경에 자기를 두어야지만 결핍을 느끼고 간절히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먹고 마시고 놀기만 하는 사람에게는 성령의 필요를 절박하게 느낄 이유가 없습니다. 성령이 지혜를 안 주셔도 내일 굶지 않고, 좋은 옷을 입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자신의 신세가 초라하게 변하기 전까지는 하나님을 붙들만한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복음 사역을 위하여 수고하는 사람들은 내일 먹을 양식이 있건 없건, 절박하게 성령의 필요함을 느낍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없으면 당장 눈 앞에서 죽어가는 한 영혼을 살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누리며 영혼을 섬겨본 사람은 이것을 이해할 것입니다. 우리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듣는 이의 영혼을 건드리고 상처만 내고 오는 것이 아니라 화살처럼 날아가서 쾅하고 꽂혀서 도저히 뽑히지 않게 깊숙이 박힙니다.
그래서 성령의 능력을 경험한 사람들은 늘 성령과 더불어 일하기를 원합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의 놀라운 계시의 세계에 대한 체험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지식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위로부터 내리는 능력과 성령의 능력을 의지했습니다. 그는 언제나 매 순간 순간마다 하나님이 자기를 붙잡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 속에 자신을 두었습니다. 매 순간 순간, 자기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를 수 없는 사명 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사람의 인정과 칭찬에 귀를 기울이는 대신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을 향하여 목마른 마음을 가졌습니다.
열매맺기 위하여
여러분! 여러분이 만약, 제법 그리스도의 복음을 많이 전파해서 꽤 여러 사람을 예수 믿게 만든 사람이라면 여러분은 그런 스스로를 대견하게 생각하는 대신, 그 애쓰고 수고한 모든 순간들 위에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셨다면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엄청난 열매를 거둘 수 있었을텐데 하는 거룩한 후회를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살아있는 신앙이며, 성령의 역사를 기다리는 마음입니다.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기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간절한 마음을 품고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도 나의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이 아니라, 매 순간마다 나를 붙드시고 내 말을 사용하셔서 저 듣는 사람의 마음 가운데 복음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시고 예수가 누구인지를 깨닫게 하고 그의 십자가의 못 박혀 죽으심이 어떠한 사랑인지를 알게 하시는 성령의 증거가 되게 해 주십시오"
우리의 복음전파에 성령께서 항상 동행해 주신다면 얼마나 놀라운 일들이 일어날까요? 이렇게 되면 당장 그 복음을 전하는 우리 자신부터, 우리의 믿음이 사람의 지혜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능력으로 심겨진 것이라는 것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할 때 사람들이 끝까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해도 우리는 찬송할 이유를 찾게 될 것입니다. '나도 저럴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성령과 그 능력으로 내 마음에 이 놀라운 은혜의 복음을 심으셨구나'하고 말입니다. 또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그 사람들이 그 복음을 믿고 받아들이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때도 우리는 하나님을 찬송할 이유를 찾을 것입니다.
'바울같이 지식에 부하지도 못하고 아론과 같이 말에 능하지도 못한 나같이 무능한 죄인의 어눌한 증언을 통해서 저 사람의 마음속에 구원의 복음을 심으시는 하나님의 성령의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하고 말입니다. 즉, 성령에 의뢰하며 마음을 다하여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결과에 상관없이 하나님을 향한 찬송이 있는 것입니다.
사도는 오직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서만 사람들이 실존적으로 십자가의 사건을 느낄 수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바울로 하여금 목숨을 버려도 복음 선포하는 일을 그칠 수 없게 만들었던 원동력이자 신적 강제력이 되었습니다. 성령이 강력하게 역사하실 때, 우리가 전파하는 복음은 사람들의 마음을 찌르고 굳은 살을 뚫고 들어가, 영혼 깊은 곳의 파문을 일으키는 능력의 도구가 됩니다. 따라서 복음 전파를 위한 교회의 기도제목은 단순합니다. 순수한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과 충만한 생명의 능력이 늘 교회에 넘치기를 구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기도제목에 하나님께서 하실 모든 일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교회가 이 세상의 지혜를 따라가지 않고 그리스도 예수의 피묻은 복음을 붙들기를, 그래서 우리 모두가 세상 끝날까지 변하지 않는 십자가의 구속의 사실을 붙들고 복음 전파에 도구가 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맺음말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이 죄인들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강력한 도구가 되기 위해서는 성령의 능력이 불붙듯 부어져야만 하지만, 그전에 먼저 복음이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죄인들에게 전해지는 일들이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알고, 믿게 된 것은 그 일을 하기 위함입니다.
온 세상에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는 것을 꿈꾸십니까?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백성들이 진실로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자기가 누구인지를 깨달아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기를 기다리십니까? 복음의 증거와 능력이 없이는 결코 이 일들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의 능력과 나타남을 사모하며 복음을 전하십시오. 우리는 이 복음을 증거하고 전파하기 위하여 여기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2. 세상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지혜 ( 2 : 6 - 9 )
6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요 7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8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9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6-9절은 오직 참 지혜인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구원의 도를 깨달을 수 있다.
세상의 지혜도 귀하다. 우리의 삶에 많은 도움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해도 우리의 영혼을 구할 수 없다. 구원에 대한 지식은 우리의 삶을 변화하게 만든다.
구원의 지식이 없는 사람이 성경을 읽으면 메마른 책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기도하는 심령으로 읽으면 시인의 간증처럼 꿀송이보다 더 달고 생동하는 호흡임을 느끼게 된다.
고전 2 : 6 이 세상의 지혜 -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요 (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의 없어질 관원의 지혜도 아니요. )
사도 바울은 온전한 자들 가운데서는 지혜에 대해 말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그가 말하는 지혜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다. 그가 말하는 지혜는 하나님의 지혜이다.
1]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성경은 ‘온전한 자’나 ‘온전함’에 대해 많이 말한다.
* 고전 14: 20 -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라.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라.
* 엡 4: 13 -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 히 5: 14 -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 빌 3: 15 -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 골 1: 28 -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 골 4: 12 -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너희에게서 온 에바브라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 너희로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기를 구하나니
* 마 5: 48 -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 약 1: 4 -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 약 3: 2 -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온전한 자’란 구원의 복음에 대한 바른 지식과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주의 계명에 순종하는 자, 즉 신앙 인격에 성숙한 자를 가리킨다고 본다.
2] 지혜를 말하노니
바울은 이미 지혜의 부당성을 언급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지혜를 언급한다.
헬라어 본문에서는 '지혜를'(*, 소피안)이 문두에 나와 강조되고 있다.
바울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지혜'는 '온전한 자'들이 깨닫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온전한 자'(*, 텔레이오이스)에 대해 혹자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어린아이(3: 1)와 비교되어 영적인 이해에 있어서 성숙한 자를 가리킨다고 한다(Morris).
그러나 본문의 문맥상, 구원받지 못한 자와 대조되는 구원받은 자들 즉 성령에 의해 깨우침을 받는 자들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바울이 전하는 십자가의 도를 미련한 것으로 단정한 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갓 난 아이 된 자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아예 중생하지 못한 자, 즉 이 세상의 지혜 있는 자(1: 20-23)이다.
따라서 십자가의 도를 지혜로 간주하는 자들은 성령에 의해 깨우침을 받은 모든 믿는 자를 가리킨다(Hodge, Mare).
바울은 본문을 통해 진정한 의미에서의 지혜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옴을 시사해준다.
3]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요
'이 세상의'에 해당하는 헬라어 '투아이오노스 투투'(*)는 보다 정확히는 1: 20과 같이 '이 세대'를 뜻한다.
그리고 '통치자'(*, 아르콘톤)은 본 절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든 사람'을 가리킨다.
통치자라는 <아르콘톤>은 보통 지배자를 가리키는데, 여기서 통치자의 지혜란 세상의 제도 속에서 사람을 다스리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원리 등을 말한다.
사람들은 인류가 남긴 모든 사상과 지식이 언제까지나 존재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모든 것의 종말이 이르게 될 주님의 최후 심판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존재하던 모든 것들은 하나도 남지 않고 없어질 것을 알아야 한다.
혹자는 이 '통치자'가 사단이나 악귀 등을 가리킨다고 한다(Origen, Marcion).
이 견해는 타당성이 희박하다.
바울이 이 단어를 사단의 개념으로 자주 사용하지만, 모두 단수형을 사용하였다.
* 롬 8: 38 -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 골 2: 15 -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더욱이 행 3: 17에서는 '통치자들'이 무지(無知) 중에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음을 언급했고 본장 8절에서도 '이 세대의 통치자'(*, 톤 아르콘톤투 아이오노스)들이 무지로 인해 주를 십자가에 못 박았음을 언급한다.
* 행 3: 17 -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하였으며 너희 관리들도 그리한 줄 아노라.
또한, 앞 절에서부터 계속하여 하나님의 지혜와 대조하여 사람의 지혜를 언급하므로 본 절에서 갑자기 사단을 언급하는 것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다.
그러므로 '통치자'란 '이방 세계나 유대 세계의 지도자 일반'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바울은 본문에서도 자신이 전파하는 지혜는 세상의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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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상의 모든 희망은 언제나 오늘 부터 입니다.
언제나 함께하는 마음과 좋은 인연에 감사드립니다.
건강 하시고 행복한 날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