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
/W.S 머윈
이 연필 안에는
한 번도 씌어지지 않은 단어들이
웅크리고 있다.
한 번도 말해진 적 없고
한 번도 가르쳐진 적 없는 단어들이.
그것들은 숨어 있다.
그곳 까만 어둠 속에 깨어 있으면서
우리가 하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밖으로는 나오지 않는다.
사랑을 위해서도, 시간을 위해서도, 불을 위해서도.
연필심의 어둠이 다 닳아 없어져도
그 단어들은 여전히 그곳에 있을 것이다.
공기 중에 숨어서.
앞으로 많은 사람이 그 단어들을 연습하고
그 단어들을 호흡하겠지만
누구도 더 지혜로워지지는 않는다.
무슨 문자이길래 그토록 꺼내기 어려울까.
무슨 언어일까.
내가 그 언어를 알아차리고
이해할 수 있을까.
모든 것들의 진정한 이름을 알기 위해.
어쩌면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진정한 이름을 위한 단어는.
오직 한 단어일지라도.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전부일지라도.
그것이 여기 이 연필 안에 있다.
세상의 모든 연필이 이와 같다.
W.S 머윈
이 시의 원제는 <아직 씌어지지 않은 것>
카페 게시글
시수필인생
연필/W.S 머윈
상현 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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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04 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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