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21일(금)
* 시작 기도
주님...
안성 사랑의교회 수양관에서 복음생명캠프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특별히 다음세대를 위하여 사역하는 선교사들이 많이 참석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영의 눈을 열어주시어 참된 복음을 알고 통합복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과 연합한 자들이 되게 하소서.
그 복음이 온 천하에 온전히 증거 되어 다음세대가 다른 세대가 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여호수아가 죽고 그를 아는 장로들도 다 죽은 후에는 다음 세대인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였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오늘의 다음 세대는 다른 세대가 아니라 주를 아는 세대가 되게 그들은 복음의 꼴을 먹이는 선생들이 깨어 있게 하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밤새 오염된 나의 영혼을 주의 보혈로 씻어 맑히시어 덮으심으로 은혜로 채워주소서.
나는 정말이지 주님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할 수 없는 자입니다.
이 종의 영에서 터져나오는 부르짖음을 들어주소서.
상한 심령으로 외치는 부르짖음이 주님께 상달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주님과 연합한 심령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행 13:13-31
제목 : 예수점쟁이요 예수무당으로 살아왔던 자가 이제는...
13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14 그들은 버가에서 더 나아가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
15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에 회당장들이 사람을 보내어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만일 백성을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 하니
16 바울이 일어나 손짓하며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과 및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들으라.
17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을 택하시고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된 그 백성을 높여 큰 권능으로 인도하여 내사
18 광야에서 약 40년간 그들의 소행을 참으시고
19 가나안 땅 일곱 족속을 멸하사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기까지 약 450년간이라.
20 그 후에 선지자 사무엘 때까지 사사를 주셨더니
21 그 후에 그들이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40년간 주셨다가
22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23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24 그가 오시기에 앞서 요한이 먼저 회개의 세례를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전파하니라.
25 요한이 그 달려갈 길을 마칠 때에 말하되 너희가 나를 누구로 생각하느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있으니 나는 그 발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26 형제들아 아브라함의 후손과 너희 중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거늘
27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그들 관리들이 예수와 및 안식일마다 외우는 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도다.
28 죽일 죄를 하나도 찾지 못하였으나 빌라도에게 죽여 달라 하였으니
29 성경에 그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 후에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
30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신지라.
31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에게 여러 날 보이셨으니 그들이 이제 백성 앞에서 그의 증인이라.
* 나의 묵상
바울을 비롯하여 함께하는 사람들 곧 바나바와 마가 요한이 구브로의 바보를 출발하여 지금의 터키 남서부에 있는 밤빌리아의 버가에 도착하였다.
이곳에서 마가 요한은 선교여행팀을 이탈하여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바울과 바나바는 버가를 출발하여 더 위쪽으로 올라가서 비시디아 안디옥에 도착하였다.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 들어가 앉아서 회당장이 지명한 한 사람이 모세오경과 선지서의 글을 읽는 것을 들은 후에 회당장이 바울과 바나바에게 사람을 보내어 백성에게 권면할 말이 있으면 하라고 하였다.
그래서 바울이 일어나서 손짓으로 회중을 정돈시키고 복음을 전한다.
유대인들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 여러분들은 내 말을 들어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께서 우리 조상들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애굽에서 나그네로 살던 우리 조상들을 귀히 보시고 그들을 그곳에서 출애굽 시키셨습니다.
그들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행한 악한 행동을 하나님은 참으시고 가나안 땅에 사는 원주민 일곱 족속을 멸하셔서 그 땅을 우리 조상들에게 기업으로 주기까지 약 450년이 걸렸습니다.
그 후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사무엘 때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사사들을 세워주셨습니다.
백성들이 왕을 구하자 하나님은 베냐민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40년간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하지만 그를 버리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면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보니 그는 내 마음에 꼭 드는 사람이다. 그가 나의 뜻을 다 이룰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 사람, 다윗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메시야를 세우셨는데 그 사람이 바로 예수입니다.
그가 이 세상에 오실 때 요한이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의 세례를 선포했습니다.
요한은 자기의 사명을 다 마쳐갈 무렵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그리스도는 내 뒤에 오실 것이다.
나는 그 분의 신발끈을 푸는 것조차 감당할 수 없는 자이다.
아브라함의 자손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 형제들이여, 하나님께서 이 구원의 복된 소식을 우리에게 전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과 그 지도자들이 예수와 함께 안식일마다 읽는 선지자들의 글을 읽고 심지어 외우면서도 이를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예수를 정죄하여 죄인으로 만들었는데 그것은 결국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을 성취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죽일만한 죄를 하나도 찾지 못하였음에도 빌라도에게 죽여 달라고 요청하였는데 그것은 구약성경에 예수를 가리켜 기록된 말씀을 다 성취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십자가에 죽은 예수를 나중에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지만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갈릴리에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갔던 모든 사람들에게 여러 날 동안 나타내 보이셨는데 그들은 지금 백성들 앞에서 예수님을 증언하는 증인이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유대인들과 하나님을 믿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다.
그것은 유대인들이나 하나님을 믿는 이방인들이 믿고 있는 사실 곧 그들이 믿는다는 그 내용을 전면 부인하는 내용이다.
유대인을 비롯한 하나님을 믿는 이방인들은 예수님의 죽음은 자신의 죄로 인하여 십자가에 죽은 자요, 그처럼 나무에 달려 죽은 자는 하나님께 저주 받은 자라는 사실이 그들에게는 믿음이었다.
이는 그들의 눈으로 보았을 때 분명 사실이었다.
예수님은 진짜 나무 십자가에 달려 죽었으며, 그런 자는 하나님께 저주 받은 자라는 사실이 율법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신 21:23b)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그런데 이들은 현상만 볼 줄 알았지, 그 이면에 있는 진리는 볼 줄 몰랐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이 쉽게 저지르는 실수 아닌가?
우리의 눈에 보이는 대로 믿으려는 것, 보이는 것만 믿으려는 속성 말이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이 영원한 것이다.
(고후 4: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지금 바울은 유대인들이나 유대교 신앙을 가지고 있는 이방인들에게 눈에 보이는 사실만 보지 말고 눈에 보이지 않는 이면에 있는 진리를 보라고 역설하고 있다.
곧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이나 지도자들이 예수를 바르게 알지 못하고 그를 정죄하여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은 결국 너희들이 믿는 구약성경의 선지자들이 그 성경에서 예언한 말씀을 성취하는 것이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27)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그들 관리들이 예수와 및 안식일마다 외우는 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도다.
(29-30) 성경에 그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 후에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신지라.
이들은 예수를 알지도 못하였을 뿐 아니라 구약성경에서 예수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도 알지 못하였다.
(사 53:4-7)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유대인들은 여기서 말한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이나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을 가리켜 예수라 생각하지 않고 이사야라고 생각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것을 보고 자기의 죄로 인하여 죽는 것이며 그는 하나님께 저주 받은 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는 마땅히 받을 형벌을 받는 것으로 치부한 것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녔으며 나름 예수를 잘 믿는다고 자부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느 믿는 사람들이 그렇듯이 내 생각대로 믿고, 내가 원하는 대로 생각했던 자이다.
물론 유대인들처럼 예수님 자신의 죄로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생각은 아니었지만, 나의 죄로 인하여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사실을 진리로 인정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예수님을 날마다 십자가에 못 박는 일을 감행하였다.
사실, 나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 예수를 구주로 믿는 자의 모습이지 않은가?
그런데 나는 나를 못 박는 것이 아니라 날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되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또 다시 못 박아 죽인 일이 도대체 얼마나 되는지 그 수와 양을 헤아릴 수조차 없다.
이처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또 못 박고 그 일을 마치 밥 먹듯 자행한 자로써 나는 죽기에만 합당한 자이다.
주님 앞에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으며 두 손으로 그저 입을 막고 주님의 심판 아래 거할 뿐이다.
이제 나는 주님의 심판을 거부하지 않는다.
아니 할 수도 없다.
그것은 지극히 옳은 일이요, 그것이 공의이기 때문이다.
내가 죽어야 교회가 살고, 내가 죽어야 주님이 살며, 내가 죽어야 하나님 나라가 온전히 세워질 수 있다.
나는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과 같이 하나님께로부터 버려진 카드였으나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신실하심으로 창세전 언약에 근거하여 심판을 통하여 나에게 참 생명이 주어졌다.
그 생명이야 말로 나를 나 되게 하시며, 나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 수 있게 하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죄 가운데 거함을 부인할 수 없다.
주님의 심판은 언제나 옳으시다.
그 심판 아래 거함이 복임을 한 번 더 깨달으며 감사로 나아간다.
나를 아주 버리지 않으시고 다시 생명으로 회복시켜 주신 그 은혜가 나를 주님의 나라로 나아가게 한다.
오늘도 주님과 함께 연합하여 그 나라를 누리게 하심이 얼마나 복인지 모른다.
내게 말로 다할 수 없는 감격과 감동이 넘친다.
주여, 내 잔이 넘치나이다.
주님의 마음에 합한 다윗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된다.
나 또한 주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살기 위하여 오늘도 겸손히 나를 죽이고 오직 예수로 부요한 자가 되어 잠잠히 주를 찬양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나의 눈에 잔뜩 끼어있던 비늘로 인하여 주님을 곡해하고 예수님을 우상으로 섬겨왔음을 고백하나이다.
나는 예수 점쟁이처럼 살아왔으며 예수무당으로 살아왔나이다.
이제 주님의 심판을 통하여 내 눈에 씌워졌던 비늘이 벗겨지고 주님을 온전히 보고 알게 하여 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주님은 만물 위에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주님을 나는 끊임없이 만물 안으로 끌어내리려 했나이다.
이를 통하여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려고 얼마나 몸부림을 쳤는지요?
그러나 이제 내 뜻, 내 생각을 이루려는 자가 아니라 주님의 심판 안에서 주의 뜻을 깨닫고 그의 나라와 그 의를 이루기 원하오니 이 종을 사용하소서.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