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기념관에서 만난 전쟁의 진실은?
천안함 침몰로 나라의 분위기가 뒤숭숭한 속에서도, 봄을 맞이한 노란 개나리와 연분홍빛 진달래가 활짝 피어났다. 벚꽃들이 봄바람에 흰 눈보라처럼 떨어져 내리는 봄날에, 나는 용산구에 소재한 전쟁기념관을 찾았다. 넓은 야외 전시장에는 상부의 명령이 떨어지면 당장이라도 적진을 향해 출격을 할 것만 같은 F-4C 전폭기를 비롯하여, 40mm 4연장 함포와 각종 탱크들이 막강한 화력을 자랑하며 불을 품을 것만 같다.
평일임에도 이곳엔 단체 관람을 온 초.중.고학생들이 6.25전쟁 당시 사용되었던 각종 무기들과 장비들을 구경하고 단체 사진을 찍기 위해 몰려 있었다. 외국인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 6.25전쟁에 참전했음 직한 미국인 노인들과 중국관광객들이 저마다의 모국어로 무엇이라고 떠들고 있다. 여기저기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나는 기념관 건물로 들어갔다. 구석기시대부터 시작된 돌도끼부터, 중세의 칼과 창 그리고 현대의 총과 대포 등 전쟁에 사용된 각종 무기들이 시대별로 전시되어 있다.
기념관의 1층부터 시작하여, 2, 3층까지 온통 아군의 시체와 적군의 시체가 뒤엉켜, 진득한 전쟁의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적군을 많이 죽인 사람은 영웅의 대접을 받고 있었다. 특히 6.25전쟁과 관련해서 전시관은 1, 2, 3관으로 구분되어 있다. 북한의 남침과 관련한 영상물과 전투 상황,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 서울 수복과 압록강까지 진군, 중공군의 개입으로 1.4후퇴, 그리고 안타까운 휴전 협정까지의 과정이, 국어를 비롯해 영어, 일어, 중국어 등 다양한 언어로 볼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그러나 1.5의 시력을 지닌 나의 눈이 어두운 탓일까? 북한이 남침을 하게 된 배경을 찾을 수 없었다. 아마도 북한도 이와 비슷한 전쟁기념관을 만들어 놓고, 똑같이 6.25전쟁의 근본적인 이유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들의 입장에서 서로의 군인들이 민간인들에게 잔악한 학살과 전쟁으로 인한 참담한 생활상을 보여주고 있으리란 생각을 하니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한 명의 여중생이 사진 촬영을 하고 있던 나에게 달려와서, 악수를 청한다. 나는 어리둥절해 있는데, 그녀의 다른 친구들 2명이 우리 두 사람을 키득거리며 쳐다보고 있다.
사진을 열심히 찍고 있는 나와 그녀가 악수에 성공하면, 서로 무슨 내기를 했나보다. 내가 그녀와 악수를 하자, 그녀는 “고맙습니다. 저는 당신의의 팬이 되겠어요.”란 말을 남기며 웃으며 친구들과 함께 달아난다. 전쟁기념관에 와서도, 전쟁의 참상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못하는 14~15살의 어린 소녀들의 모습이었다. 아까부터 한미주둔 미군병사로 보이는 사복차림의 백인 청년 2명이 나와 자주 시선을 부딪친다. 그 친구들 중에 한명의 손에는 푸른 문신이 있다. 그 백인 청년과 인터뷰를 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나름대로 3시간 동안 꼼꼼하게 기념관을 돌아보고 나오는 나의 다리가 뻐근해 진다. 무엇이 자꾸만 빠진 것만 같은 가슴의 허전함과 갈증도 일어난다. 카메라의 전원스위치를 끈다. 그리고 기념관 건물 밖으로 나오다가 정면에 국방부 건물이 눈에 띈다. 높은 건물 위에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나는 계단을 따라서 내려오다가 왼쪽에 큰 동상을 하나 발견한다. 기념관에 들어설 때 보았던 동상이었다. 총을 멘 전투복 차림의 군인이 누군가를 얼싸안고 있는 동상이었다. 도대체 누구를 얼싸 안고 있는 것일까? 나는 그 동상 가까이에 다가간다. ‘형제의 상’이었다. 나는 안내문을 읽기 시작했다.
- 6.25전쟁을 상징하는 ‘형제의 상’ 직경은 1.8m이고 높이는 11m로서, 상부, 하부, 내부로 구성되어 있다. 상부의 청동상은 6.25전쟁 당시 한국군과 북한군의 형제가 원주 치악 고개 전투에서 극적으로 만나는 순간을 재연한 것이다. 총을 어깨에 메고 철모를 쓴 장교는 형이고, 그 형에게 얼싸 안긴 북한군 병사는 그의 동생이었다.........
나는 다시 카메라를 서둘러 꺼내어 전원스위치를 켠다. 그리고 잽싸게 셔터를 누른다. 마치 그 동상이 금방이라도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허전했던 그 이유를 찾은 것이었다. 남북한의 정치인들의 추상적인 이념대립의 논리에, 사랑하는 부모. 형제의 가슴에 총부리를 마주하고, 서로의 목숨을 겨누었던 참상을 이 청동상은 웅변해 주고 있었다. 지금도 이념과 체제의 논리를 내세워 100만 명의 남북한 이산가족들은 부모와 형제가 생이별을 하고 있다. 그들도 이 청동상의 형제처럼 극적인 만남을 학수고대하는 있는 것이다.
불현듯 천안함 침몰로 희생된 국군장병들의 모습이 나의 머릿속을 스쳐간다. 전쟁이 없었다면, 휴전선이 없었다면, 아니, 이념을 내세우는 강대국과 정치인들이 없었다면, 저 차디찬 서해안의 바닷물에 나의 사랑하는 아들, 동생, 형, 오빠의 시신을 찾지 못해서 통곡하는 슬픔은 없었을 텐데........ 아직도, 적대적인 서로의 이념이, 서로를 맹목으로 불신하고, 부모와 형제들이 평화롭고 다정하게 얼싸안고 서로 껴안아야 될 그 화합의 축제의 날을 지연시키고 있다.
어느 소설의 제목 <마술의 손>처럼, 나의 손이 마술을 부릴 수만 있다면, 북한의 대남강경세력들과 남한의 대북강경세력들을 섬세하게 손가락으로 골라내어, 저 먼 우주로 보내서, 자기들 마음대로 실컷 싸우든 말든, 우리들은 평화롭고 행복한 만남의 축제와 향연을 벌였으면 싶다. 나는 저녁노을과 함께 ‘형제의 상’을 한참동안 바라보고, 아쉬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겨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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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예 저도 감사합니다. 읽어 주셔서요. ^^
어...마술의 손...제 별명과 비슷해서 끌리는데요
끌림 이라는 단어 저도 참 좋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