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전 돌아다니다가 처음본거 같아서 ...
사진도 있었지만 능력부족으로여.. 글만 올립니다...
국내외 주변인물 릴레이 인터뷰
지난 22일(한국시간) 미프로야구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 5차전을 TV로 시청하던 국내 스포츠팬들은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8,9회 무실점 완벽투로 애리조나에 3-2의 승리를 안기며 감격의 월드시리즈 진출을 확정지은 김병현이 경기직후 동료선수들과 부둥켜안고 환호하는 장면이 잠깐 TV에 비추더니 이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국내 시청자들은 동양인 최초로 월드시리즈에 진출하게 된 '이날의 히어로' 김병현을 찾느라 TV화면 구석구석을 눈이 빠져라 찾았으나 그의 모습은 더이상 TV카메라에 잡히지 않았다. 대부분 동료선수들이 카메라 앞으로 뛰어나와 부둥켜안고 즐거워하던 그 때, 김병현은 조용히 마운드를 내려와 벤치로 걸어가고 있었다.스포트라이트 한가운데 있다가도 쑥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제발로 걸어나가는 메이저리거, 그가 바로 김병현이다. 어쩌면 이날 일은 김병현의 독특한 캐릭터를 읽을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전세계 스포츠팬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대망의 월드시리즈에 당당히 선 '무등산의 키작은 야구소년' 김병현,그는 과연 어떤 인물일까. 스포츠서울닷컴의 e매거진팀은 어린시절부터 중,고교,대학시절을 거쳐 현재까지 가장 가까이서 그를 지켜봤던 주위 사람들의 입을 통해 '인간 김병현'의 탐험에 나섰다.
아버지 김연수씨
김병현의 아버지 김연수씨는 인터뷰를 몇 번이고 사양했다. 언론에 나서지 않는 것이 김병현을 위하는 길이라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번 부탁 끝에 어렵사리 이뤄진 인터뷰에서 김연수씨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요즘 온종일 걸려오는 언론사들의 인터뷰 요청을 정중히 사양하면서 하루를 보냅니다. 보이지 않게 뒷바라지하는 것이 가족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도움이라고 생각합니다. 병현이가 메이저리그에 간지도 3년이 됐네요. 어려서부터 워낙 말수가 적고 나서지 않는 성격이라 보내 놓고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야구에 대한 집중력만큼은 아버지인 저도 놀랄 정도여서 믿음을 갖고 응원했는데 기대 이상으로 빨리 이뤄내 대견합니다. TV를 보다 경기중 수줍음을 타며 뒤로 물러날 때면 아직도 저 버릇 못고쳤다 싶지요. 바라는 건 좀 더 적극적인 선수가 되었으면 하는 점입니다. 병현이가 지금보다 더 잘하게 된다고 해도 묵묵히 제 일 열심히 하는 모습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늘 격려해 주시는 국민들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광주일고시절 야구부 허세완 감독
현재 충장중학교 야구부 감독을 맡고 있는 허세완 감독은 '한국형 핵잠수함' 김병현의 언더핸드 투구폼을 만들어낸 주인공이다. "처음엔 타격도 좋고 어깨도 강해 유격수를 시키려 했지만 공을 뿌리는 능력이 뛰어나 계속 투수를 시켰습니다. 대신 진학할 당시 오버스로에 가까웠던 병현이의 투구폼을 언더핸드로 바꾸도록 지도했지요. 그랬더니 금방 자기 폼으로 만들어 위력적인 공을 던지기 시작하더군요. 병현이는 꾸준한 노력에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승부근성이 있었습니다. 병현이가 3학년 때인 96년 대통령기대회 대전고와의 결승전이 있던 날이었어요. 팔꿈치가 이상한 것이 분명해 그만 던지라고 했는데도 끝까지 해 보겠다며 전력 투구하더니 무려 18개의 삼진을 잡아내 7-0의 승리를 만들어 냈었답니다."
광주일고시절 야구부장 이봉규 교사
"병현이가 가장 어려웠던 시절은 어쩌면 고3때였던 것같습니다. 당시 초고교급 투수로 명성을 날리자 상대팀 타자들이 어찌나 경계를 하던지. 일단 몸쪽공이 들어온다 싶으면 기를 쓰고 몸을 갖다대 데드볼을 만들곤 했지요. 저는 그때 병현이가 심리적으로 많은 성장을 했으리라고 봅니다. 지난번 애틀랜타와의 마지막 경기 때 병현이 아버님과 마주앉아 소주잔을 기울였는데, 참 벅찬 감회가 밀려오더라구요. 앞으로 심리전에도 능한 최고의 마무리투수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봉규씨는 현재 광주 지원중학교에서 야구부장을 맡고 있다.
광주일고시절 고3 때 담임교사 서자원씨
고3 1년 동안 김병현의 담임을 맡았고 현재 광주여고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서자원씨는 '제자 김병현'을 이렇게 떠올렸다. "돌이켜 보면 병현이는 과묵하면서도 인사 잘 하고 싹싹한 그런 아이였어요. 대회를 마치고 오면 항상 병현이를 교실 앞으로 나오게 해 결과를 설명토록 했습니다. 쑥스러움을 많이 타긴 하지만 친구들과 관계가 좋았던 병현이는 스스럼없이 경기에 대한 얘기를 풀어놓았지요. 그러면 반친구들은 환영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고, 이내 아이들은 병현이를 둘러싸고 이야기꽃을 피웠어요."
성균관대시절 야구부 유상호 감독
지금은 일선에서 물러난 유상호 감독은 고교졸업 당시 김병현을 성대 야구부로 스카우트하기 위해 열과 성을 다했던 그 때를 떠올렸다. "병현이는 광주일고에 있을 때부터 늘 스카우트하겠다고 벼르던 선수였습니다. 입학이 결정된 뒤 병현이 아버님과 학교 당국에 얼마나 감사하던지요. 대학야구시절 병현이는 야구하는 것외에는 음악듣고 잠자는 것 밖에 모르는 사람좋은 친구였어요. 틈만 나면 잠을 청하다 보니 별명이 '잠보'였답니다. 지금도 병현이가 고국을 찾으면 꼭 집으로 찾아와 하룻밤을 함께 잡니다. 병현이가 미국 갈 때 '이제 넌 내 개인의 제자가 아니라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다'라고 해 주었던 얘기를 잊지 말아 주길 바랍니다."
성균관대시절 야구부 김병조 코치
"병현이는 워낙 매사에 진지하고 말수가 적은 성격이었습니다. 팀내 최고실력이었지만 창고청소를 도맡아 해내던 막내시절을 보면 대인관계가 무난해서 어딜 가서든 적응 잘 할 것으로 믿었습니다. 올 초 우리학교 야구부가 대학리그 우승 후에 떠나기로 했던 미국 전지훈련이 테러사태로 무산됐어요. 병현이를 만나러 간다고 후배들이 퍽이나 좋아했고 병현이도 통화할 때 무척 고대하는 눈치였는데 아쉽습니다." 김병조 코치는 지금도 성균관대 야구부에서 제2, 제3의 김병현을 키우기 위해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다.
뉴욕 메츠 서재응 투수
"병현이는 내게 동생이면서 친구같은 존재입니다. 병현이와 함께 만나면 미국땅에서 느끼는 외로움을 서로 달래주고 메이저리그 타자들에 관해 이런저런 분석도 하지요. 병현이는 술도 잘 못마시고 착하고 여린 심성을 갖고 있어서 처음엔 걱정스럽기도 했어요. 그리 남자답지 못하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웬걸, 마운드에 서면 완전히 달라지더군요. 위기상황에 등판하면 마음 조일 법도 한데, 당당하게 버티고 서서 다부지고 강인한 근성을 발휘하지 뭡니까. 그 모습 잃지 않는 한 앞으로도 더욱 발전하리라 믿습니다."
스포츠서울 양성동 특파원
"김병현은 식당에 갔을 때 누가 혹시 김병현 아니냐고 물으면 절대 아니라고 대답할 정도로 수줍음을 많이 타는 성격입니다. 하지만 김병현 특유의 승부근성을 보며 전형적인 외유내강형 선수라고 생각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 하나 알려드릴게요. 김병현은 거리를 가다가도 아이들만 보면 어쩔 줄을 몰라할 정도로 아이들을 좋아한답니다."
스포츠서울 강명호 특파원
"위기상황에서 등판하는 경우, 평소 나서지 않는 성격에 얼마나 긴장될까 싶었습니다. 기자회견 때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하는 대답이 언론용 멘트인 줄 알았어요. 하지만 얼마 후 저는 그것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내 옆을 스치며 마운드로 올라갈 때 들리는 숨소리와 렌즈를 통해 보이는 그의 표정이 그 모든 것을 말해 주거든요. 나의 카메라 속, 작지만 큰 세상에 비친 그의 모습은 '작은 거인'입니다."
스포츠서울 문상열 특파원
"국내선수들이 미국 진출 후 언론을 대하는 태도가 참 많이 달라집니다. 미국선수들의 취재형태를 보며 국내 특파원들을 사무적인 자세로 대하기 시작하죠. 그런데 김병현은 국내에서나 미국에서나 차이가 없습니다. 오히려 경기가 끝난 후 기자들을 위해 잠시 훈련을 접고 부랴부랴 인터뷰에 응한 뒤 훈련을 재개할 정도로 타인을 배려합니다. 그의 진지함과 성실함에 체구는 작지만 마운드의 거인이라는 느낌이 들곤 하지요."
현지친구 대니얼 김
한 때 뉴욕 메츠 구단에서 근무하기도 했던 대니얼 김은 김병현과 자주 얼굴을 마주하는 형,동생 사이로 현재 스포츠마케팅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98년부터 병현이를 알게 돼 현재까지 절친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변함이 없는 사람이에요. 미국에 처음 왔을 때부터 널리 알려진 지금에 이르기까지 나를 대하는 태도에 조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자기관리에 얼마나 철저한지 함께 식당에 가도 콜라를 마시지 않을 정도로 몸에 해가 되는 일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 병현이는 사진 찍는 것을 싫어하는 스타일이라, 메이저리거라기보다 그냥 수수하고 평범한 동네친구라는 느낌이 더 강해요."
연세대 야구부 이현곤 선수
국가대표 선수이기도 한 연세대 이현곤 선수는 김병현의 광주일고 1년 후배. 그는 '선배 김병현'을 이렇게 회고했다. "병현선배는 무엇보다 운동을 굉장히 열심히 하는 선수였습니다. 존경할만한 선배였지요. 학교를 다니면서 함께 운동을 했지만 가까이 할 수 없는 그런 카리스마도 지니고 있었어요. 자신이 좋아하는 최신 가요를 한 번 들으면 질릴 때까지 그 곡을 계속 듣는 버릇도 있었습니다. 3학년이 되어 주장을 할 때는 후배들에게 엄격할 때는 엄격하게, 자상할 때는 한없이 자상하게 대했습니다. 언젠가 팔꿈치를 다친 이후로 매일 팔굽혀펴기를 열심히 하던 모습도 기억납니다. 병현선배의 몸관리는 철저함 그 자체였거든요."
스포츠서울USA 성제환 기자
"처음 봤을 때 구수한 사투리에 기자들을 보고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모습이 참 소박한 '촌놈'이구나 싶더군요. 아직 미국물을 먹지 않아서 그러려니 하고 생각했었지요. 하지만 승수를 쌓아가며 인정받는 메이저리그 투수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상황에서도 김병현은 자신이 특별하다거나 주위 사람들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듯했어요. 정말 좋은 의미로 그는 한결같은 촌놈이랍니다."
김병현은 아직도 멋지게 팀을 승리로 이끈 직후 카메라 앞으로 달려가야 한다는 '자기PR'의 원칙에조차 익숙하지 않다. 어쩌면 스스로의 몸값을 어떻게든 올려야 하는 프로선수로서 모자라는 부분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를 성원하는 많은 팬들은 스타가 된 후에도 그 이전과 다름없이 묵묵히 자기 일에 충실한 '아름다운 촌놈' 김병현의 모습에 많은 박수를 보내고 있다. 작은 체구의 소년 김병현이 꿈의 무대 월드시리즈 마운드에 설 수 있게 된 것이 그 한결같은 과묵함, 성실함과 무관하지 않으리라는 믿음 때문이 아니겠는가.
첫댓글 제2의 전성기가 왔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