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생활에 대하여
불교는 사람을 가리켜 '감정이 있는 중생(有情衆生)'이라 하는데
바로 애정에 의지한 생활을 한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며 감정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일상행활에서 감정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요?
사람들은 자기와 친근하면 친근할수록 정을 더 주기 마련입니다.
그래도 아마 남을 사람하는 것보다는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이 앞설 것입니다.
그래서 유가儒家에서는 "내 어른을 공경하듯 남의 어른을 공경하고
내 아이를 보살피듯 남의 아이를 보살핀다고 했으며 내 마음처럼
남의 마음을 해아려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유가의 관념에 사랑은 가까움(親)과 소원함(疏)이 있다 했습니다.
사랑은 가까운 것에서 남의 어린 것을 보살피며, 자기의 부모, 아내,
자녀 및 친척, 친구 등 자기의 혈연에서 확대해 나아가
자기와 상관없는 사람들까지 사랑하는 것입니다.
도와 덕이 많은 사람일수록 사랑하는 마음도 더욱 크고 넓으며 심지어
가깝고 멂의 차별이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모든 사람이 나의 동포이고,
모든 것이 가슴을 열어 놓아 주객이 일치된 상태이며,
불교의 모든 중생에 대한 차별 없는 절대 평등의 자비로운 마음입니다.
부처님과 같은 시대의 사람인 데바닷다Deadatta는
부처님의 제자로 더욱이 부처님과는 사촌 형제입니다. 뒤에 마음이
뒤틀려 부처님을 배반하고 수시로 부처님을 모함하여 해를 입혔습니다.
어떤 때는 자객을 보내고, 어떤 때는 미친 코끼리를 풀어 부처님을
밟아 죽이려 하고, 심지어 부처님이 지나는 길에 사람을 매복시켜
바위 덩어리를 굴려 부처님을 압사시키려 하기도 했습니다.
계속해서 갖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흉악한 독심을 품고서 반드시 부처님을 죽이려 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조금도 문제 삼지 않고, 심지어 제자들에게 타이르길
"너희는 데바닷다를 존경해야 한다. 그는 나의 선지식이다.
우리는 그로 인하여 더욱 굳고 강해지며, 우리는 그로 인하여
더욱 불도佛道를 떨쳐 일으킬 수 있으니 그는 우리가 불법을
펼치는데 극복해나가야 할 좋은 인연이다" 하셨습니다.
암흑이 없으면 광명의 귀함을 나타낼 수 없고, 죄악이 없으며 착함과
아름다움의 가치가 나타나지 않으며, 악한 일을 많이 한 나쁜 사람이 없으면,
착한 사람을 존경할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비도덕적인 행위가 없으면
바로 도덕과 숭고함을 나타내 보이지 못합니다.
도덕이 있는 사람은 비단 그와 친근한 이들을 사랑할 뿐 아니라
심지어 그를 모함하여 해를 입히는 이들까지도 마찬가지로 사랑합니다.
부처님의 감정은 그의 자비를 널리 펼쳐 적까지 사랑합니다.
부처님의 감정은 원망이 없고 사사로운 감정이 없는 자비로 우리는 부처님의
제자이니 만큼 감정을 정화, 승화시켜야 하며, 크게 넓혀 우리의 감정
생활을 도덕에 맞게 하여 마치 범람하는 황하와 같은 많은 욕망의 물이
범람하지 않고 잘 흘러가도록 이끌어주고 진정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가장 좋은 것은 남을 기쁘게 하는 마음으로 사랑하고
지혜로운 마음으로 마음을 다스리는 태도입니다.
이는 불자의 몸으로 마땅히 주의 하여야 할 것입니다.
보통중생 보통부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