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만치에서 119번 버스가 오고 있어요 / 박 영

[호랑거미와 어머니]

저만치에서 119번 버스가 오고 있어요

반송에서 자갈치까지 오가던 버스가 있었지요

열리고 닫히는 차문으로

새벽이 고개 내밀고

점심의 나른함이 굴러 떨어지기도 하고

저녁이 되면 고단함이 차문에 매달려 곡예를 했어요

사람들로 꽉 찬 버스 안에는

하루 이야기가 주먹밥 같이 뭉쳐져 있었지요

버스는 맛있게 삼키고 뱉어 내었어요

울퉁불퉁한 길을 잘 달리던 그 버스가 사라진 후

골목 불빛도 새 길을 찾아 흩어졌어요

뚱뚱한 호호할머니 등짐 지고 걷듯

뒤뚱뒤뚱, 한 번씩 급정거를 해 가며

저만치에서 119번 버스가 오고 있어요

가뿐히 올라타죠 그리고 차창 밖 풍경을 바라보며

넋 놓고 앉아 있다 보면 잠시 졸기도 할 거예요

종점이라는 고함에 놀라 눈을 비비면

좁은 골목들이 질서정연하게 놓여 있는 반송마을이지요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 크게 켜고

내 앞을 스치고 지나는 누구라도 붙잡고

어디 가세요, 인사하고 싶어요

순덕이 아세요, 혜경이 아세요

물을 거예요, 물어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