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4일 아침 사마르칸트에서 일찍 출발한 우리는 오전 열시에 우즈베키스탄 의 작은 국경도시 데나우에 도착해서 호텔을 물색 했으나 데나우는 작은 도시고 관광객이 많지 않은 곳이라 숙박업소가 많지 않다, 이곳의 유일한 호텔 데나우 호텔은 값은 비싸고 시설도 좋지않아 차라리 시간이 충분하기 때문에 국경을 일찍 넘어가기로 했다.
그래서 우리는 예정보다 이틀 먼저 우즈베키스탄에서 타지크스탄으로 가는 국경 으로 향했다. 비자가 걱정되었다. 한국에 있을 때 인터넷으로 받은 우리비자 타지크스탄 비자는 6월6일 부터 유효하다. 오늘이 6월 4일 이기때문에 비자 날짜보다 이틀이 빠르다. 따라서 비자의 입국일보다 이틀먼저 온걸 문제삼아 오늘 입국을 거부 할수가 있다.
타지크스탄의 국경 출입국관리소에 비자가 찍힌 우리 여권을 내밀었다. 직원은 우리 비자를 가지고 한참을 드려다 보드니 여권을 가지고 안으로 들어간다. 혼자 결정못하고 상사와 상의하러 가는 듯, 잠시후에 나오드니 별 말없이 입국 스탬프를 찍어준다 다행이다 다시 우즈베키스탄의 데나우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
두샨베는 인구 800만 타지키스탄의 수도로 도시인구는 80만명이다. 도시 이름은 타지크어로 "월요일"을 의미하는데 이는 월요일에 개장하는 시장이 있는 마을이 급성장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직물 산업과 식료품 산업 단지가 들어서 있으며 교통의 요지이다.
도착 다음날인 6월5일 두산베시내의 바자르와 공원을 구경하면서 파미르고원 가는 차량을 알아본 결과 파미르고원의 남서쪽 끝에 있는 호르그까지 가서 파미르고원을 통과해서 파미르의 북쪽에 있는 무르갑으로 가는 차량을 빌리는 게 싸게 먹힌다는 걸 알았다.
타지키스탄이라는 이름은 원래 이곳의 토착민인 타지크족에서 유래한 것이다.
타지크족은 페르시아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인도,이란어파에 속하는 언어를 사용한다. 현재 타지크족은 같은 종교를 믿는 이슬람교도이기도 하고 비록 터키어를 사용하지만 이웃에 접해 있는 우즈베크족과 가깝다..
타지크어는 페르시아어와 같고 아프가니스탄에서도 같은 말을 쓴다. 다만 이란에선 아랍글자로 표기하고 타지크에서는 키릴문자로 표기한다.
타지크스탄은 타지크족이 전체 인구의 2/3을 차지하며, 이외에 우즈베크족이 상당수 있다. 다른 중앙아시아의 국가와 마찬가지로 낮은 사망률과 높은 출생률로 인해 급속한 인구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대부분의 주민은 키슈라크라고 부르는 촌락에 거주한다.
하지만 이곳 두샨베는 작지만 깔끔한 도시로 잘 정돈된 모습이다.
타지키스탄은 중앙아시아의 공화국들 가운데 가장 개발이 덜 진행된 국가 중 하나이다. 목화재배가 주를 이루는 타지키스탄의 농업은 아무다리야 강과 시르다리야 강의 물을 이용한 광범위한 관개시설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미국 중앙정보부의 자료에 의하면 타지크스탄이 중앙아시아 국가중 최빈국에 해당한다. 타지크3200불, 키르기즈 3700불, 방글라데쉬 4200불, 파키스탄 5400불, 우즈베키스탄 6900불 투루크메니스탄 18200불 한국 39500불, 일본 42900불, 미국 59800불, 필리핀 8400불, 1인당 국민소득이다. 최근 3만1천불이라는 한국 GDP와 다른 이유는 물가수준을 반영했기 때문이다.
타지크스탄은 1930년대에 건설되기 시작한 운하망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확장되면서 목화재배뿐만 아니라 목축·원예·양잠 등이 새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과일·야채·곡물이 계곡에서 넓게 재배된다. 목화재배에 화학비료와 살충제를 과다하게 사용해 환경오염과 국민들의 건강문제가 발생했다.
타지키스탄은 광물이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다. 석탄과 원유 채굴 및 천연 가스 추출이 중공업의 범주에 들며, 금속가공, 직물과 전력설비 및 케이블 제조, 질소 비료를 생산하는 화학공업이 이를 보완한다. 수입한 원자재로 알루미늄을 생산한다.
경공업으로 면화가공, 견사제조, 편물·신발·의류제품 생산 등이 있으며, 식료품 가공과 카페트 제작, 향수에 사용되는 제라늄 기름 등의 생산도 경공업의 한 부분이다.
소비에트 정권 치하 동안, 타지키스탄 공산당(CPT)이 소련공산당의 최고권력에 따라 독재권을 행사했다. 1991년 독립 이후 CPT가 지배하는 정부구조가 붕괴되었고, 공산주의자들과 그 반대파인 비공산주의자들이 정부 주도권을 둘러싼 투쟁을 벌이게 되었다.
신헌법은 강력한 단원제 입법기관을 규정했고 직선제 대통령 선거를 보장했다. 사법제도로 1994년 도입된 몇 개의 고등재판소가 있다. 타지키스탄의 교육수준은 소련의 영향으로 20세기 들어 크게 높아졌다.
소련은 비(非)종교교육을 도입했고 학교를 설립했다. 7∼17세 사이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무상의무교육이 실시되고 있다. 전문화된 중등교육과 고등교육기관들이 있고, 이슬람 전통과 관련된 교육 또한 널리 이루어지고 있다.
타지크인은 한때 중앙 아시아를 지배했던 이란 종족의 후손으로 페르시아 제국과 알렉산드로스 대왕 및 그 후계자들의 제국에 속해 있다가 7∼8세기에 아랍인들에게 정복된 후 이슬람화되었다. 여러 세기에 걸쳐 이주해온 투르크계 주민들의 영향도 곳곳에 스며 있다. - 부하라를 근거지로하는 사만왕조의 지배자 이스마일 사마니 상-
15세기에서 18세기 중반까지는 우즈베크인의 부하라 칸국 통치 아래 있었다. 그무렵 아무다리야 강 남쪽에 거주하던 타지크인들은 아프가니스탄인들에게 정복되었다. 그후 러시아가 타지키스탄 대부분의 지역을 점령했으며,
1917년 러시아 혁명 후에는 타지키스탄의 여러 지역이 투르키스탄 소비에트 사회주의 자치공화국과 부하라 인민 소비에트 공화국에 편입되었다. 그러나 이 두 공화국은 1924년에 신설된 타지크 소비에트 사회주의 자치공화국에 합병되었고,
타지크 자치공화국은 행정적으로 우즈베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 속해 있다가 1929년 소비에트 연방의 한 공화국으로 선포되었다
첫댓글 역사는 무한하고 인생은 너무 짦네. 맘껏 즐기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