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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족 관계와 부양의 문제
"이제부터 넌 죽어서도 이 집안 귀신인 거야!"
결혼 생활에 관한 상담을 하던 한 여성이 몸서리를 치며 털어놓았다. 시어머니가 폐백 자리에서 웃으며 하신 말씀이었다. 덕담처럼 건넨 것이었지만 그 순간 결혼을 후회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나는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하고 싶어 결혼했는데 왜 그런 얘기를 들어야 하는지, 낳고 키워준 아버지 어머니는 어쩌라는 것인지 오만가지 생각에 머릿속이 하얘졌다고 한다.
놀랍게도 어르신들의 이런 사고방식을 멀지 않은 과거의 법이 뒷받침하고 있었다. 요즘도 호적이란 말, 본적이란 표현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2005년 민법을 개정하면서 폐지된 호주제에서 나온 말들이지만 워낙 오랫동안 써왔던 탓이다.
호주제는 한 가정을 그 집안의 가장 나이 많은 남자 어른을 기준으로 묶는 제도였다. 여성은 결혼하면 태어난 집안의 호적에서 배우자인 남성 집안 호적으로 옮겨졌다. 쉽게 말해 아버지에서 시아버지 밑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남편이 장남이라면 계속 그 상태로 머물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남편 밑으로 묶었다.
혹시 남편이 일찍 사망하면? 아들이 호주가 됐다. 이런 식이다 보니 이혼이라도 하거나,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를 낳기라도 하면 어느 집안 호적으로 들어가야 할지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었다. 21세기까지도 남녀차별은 공식 제도였던 셈이다.
다행히 현재의 법은 달라졌다. 일단 민법에 따르면 누구까지를 가족으로 보는지 한번 보자. 1차로 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다. 2차로 직계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혈족 및 배우자의 형제자매다. 직계혈족이란 자신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자녀들을 가리킨다. 방계혈족은 형제자매와 그 형제자매의 그 자녀들, 그리고 부모님의 형제자매들 등을 가리킨다.
헷갈리는데 꼭 그런 식으로 용어를 써야 하나 싶을 수 있다. 이유가 있다. 저 표현들은 양성 중립이다. 시아버지, 시어머니, 장인, 장모라는 표현들은 이미 남편, 아내에 따라 달라지는 양쪽 집안의 위치가 들어 있다. 그에 반해 배우자의 직계혈족이란? 구별이 없다. 여기에 더해 가족의 범위를 1차, 2차로 나누어 놓은 이유가 있다. 2차의 경우 생계를 함께할 때만 가족이다. 그러니까 시어머니라도 가족이 아닐 수 있고, 친정어머니라도 가족일 수 있다.
호적 대신 도입한 가족관계등록부에는 기본적으로 본인을 기준으로 부모, 배우자, 자녀에 대한 정보가 들어있다. 배우자의 부모, 예를 들어 한때 호주였던 시아버지는 없다. 호적을 만들었던 곳인 본적 대신 개인별로 가족관계에 대한 각종 사항을 기록할 관청을 정하기 위한 등록기준지만이 존재한다. 단순히 말이 바뀐 것이 아니다. 사회의 최소 단위인 가족을 어떻게 볼 것인지 개념이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가족은 남녀를 중심으로 한 최소한의 단위다. 그런데 자녀가 생기고 그들이 다시 가족을 이루면서 인연의 그물은 급속도로 커진다. 수십 명의 손자녀를 둔 할아버지 할머니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 단계 넓은 범위로 친족을 이루는 것이다. 혈연관계로 맺어진 혈족을 넘어 혼인으로 인한 배우자, 그 배우자의 혈족까지 친족에 들어간다. 세상에서 흔히 친인척이라고 부르는 관계다.
혈족은 딱히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같은 조상 아래 같은 성을 쓰는 사람들이다. 인척은 사돈이라고 부르는 각자 상대방 배우자의 혈족이다. 인척을 친족의 범위에 포함한다는 사실은 법적으로도 혼인은 남녀만의 결합이 아니라 가족과 가족의 결합이라는 뜻이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이인데 혼인으로 친족 관계에 놓이는 것이다. 아무래도 누구까지를 그렇게 보아야 할지 한계를 정할 필요가 있다.
인척은 어디까지나 혼인의 주인공인 남녀를 중심으로 따진다. 남편이나 아내의 혈족과 자기와의 관계를 보는 것이다. 편의상 아내 입장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자신의 혈족과 혼인한 배우자(올케, 자형, 매부, 고모부, 숙모), 남편의 혈족(시부모, 시누이, 시동생), 남편의 혈족과 혼인한 배우자(동서) 까지를 포함한다.
아무래도 혼란스러울 수 있으니 인척이 아닌 경우를 따로 기억하자. 혈족과 혼인한 배우자의 혈족은 아니다. 그러니까 아내의 형제자매 입장에서 봤을 때 남편의 형제자매를 가리킨다. 이들끼리는 법적으로 아무런 사이가 아니다. 이렇게 본 이유가 있다. 겹사돈이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A집 형제와 B집 자매가 두 쌍으로 혼인했을 때를 가리킨다. 되느냐 마느냐 말들이 많았지만 1990년 민법을 바꿔 법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게 한 것이다.
인척은 혼인을 고리로 이어진 관계다. 혼인 취소, 이혼으로 그 고리가 끊어지면 자연스레 남남으로 돌아가는 것이 당연하다. 부부 중 한 사람이 사망하면 어떻게 될까? 곧바로 남이 되는 것은 아무래도 서운하다. 남은 한 사람이 재혼하면 앞선 혼인의 인척 관계가 비로소 없어진다.
그런데 이렇게 얽힌 사람들이 늘어나면 생기는 문제가 있다. 위, 아래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우리네 문화 아니던가. 아버지 혹은 할아버지의 형제자매들이 많은 집에서는 어떤 사이인지 헷갈릴 수 있다. 명절에 친지들이 많이 모이는 집이라면 도대체 나와 어떤 관계인지 종잡기 어려울 수 있다. 위, 아래 혹은 얼마나 가깝고 먼지를 헤아리는 셈법으로 촌수를 쓴다.
기본적으로 피로 맺어진 사이들이니 같은 세대가 촌수의 기준이다. 위, 아래를 따지기 위한 것이니까 옆으로 직접 가지 않고 위, 아래로 몇 칸인지 세는 것이다. 아버지의 형제를 예로 들어보자. 나부터 아버지로 올라가며 1촌, 아버지에서 할아버지까지 2촌, 할아버지로부터 다시 내려오는 3촌이다. 아버지 형제니까 위로 1칸, 옆으로 1칸 하는 식으로 세지 않는다. 촌수를 아예 호칭으로 삼아 삼촌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 삼촌의 자녀는 1촌 더 내려오니까 사촌이라 부르는 것이고.
그렇다며 이 촌수는 몇 촌까지 따질 수 있을까? 딱히 제한은 없다. 신화라고는 하지만 우리는 단군의 후예 아니던가. 크게 보면 대한민국 전체가 친족이다. 역시 어느 정도 범위를 정할 필요가 있겠다. 민법은 혈족은 8촌, 인척은 4촌까지를 법의 효력이 미치는 친족으로 하고 있다.
인척의 촌수는 배우자의 촌수를 따른다. 배우자에게 삼촌이면 본인에게도 그대로 삼촌이다. 구별하기 위해 아버지 형제는 그냥 삼촌, 어머니 형제는 외삼촌으로 부르지 않나. 앞으로는 이런 구별도 없어지면 좋겠다. 아무튼 딱히 가깝지 않은 관계일 때 '사돈의 팔촌'이라고 하는데 나름 법적으로도 근거가 있는 셈이다. 사돈의 팔촌끼리는 서로 아무 사이도 아니다.
우리는 오래도록 농사를 짓는 민족이었다. 아버지에서 아들로, 그 아들의 아들로 같은 땅을 일구며 세대를 이어갔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 함께 사는 사람들이 단순한 이웃을 넘어서는 경우가 많았다. 혈연으로 혼인으로 묶인 친족이기도 했다. 마을 주민 대부분이 같은 성씨를 쓰는 집성촌에 대해 들어봤을 것이다. 친족인 동시에 하나의 생활, 경제 공동체였던 것이다.
그런 문화적 특성은 법과 제도에도 남아 있다. 앞서 혈족의 8촌, 인척의 4촌까지 법의 효력이 미친다고 했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가 부양의무다. 민법 제974조는 직계혈족과 배우자 사이, 그리고 그 밖의 친족끼리는 생계를 같이 하는 경우에 부양의무가 있다고 한다. 공동체의 구성원들끼리 서로의 생활을 돕는 의무이자 권리이기도 하다. 법원을 통해 그 구성원더러 먹여 살려 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 것이다. 일종의 재산인 셈이지만 친족이라는 신분에서 나온 것이라서 제삼자에게 팔거나 할 수는 없다.
부양의무는 다시 두 가지로 나뉜다. 우선 미성년자인 자녀에 대한 부모의 의무, 혼인한 배우자들끼리의 의무가 있다. 이것은 무조건적이며 한계가 따로 없다. 최소한의 생활 유지는 기본이고, 내가 누리는 만큼 자녀도 배우자도 누려야 한다는 것이 원칙이다. 소고기를 먹든 풀을 뜯어 먹든 함께해야 한다.
그 밖의 친족에 대해서는 2차적 부양의무를 진다. 여기서 2차라는 뜻은 일단 나부터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여유가 있어서 다른 사람을 부양할 능력이 있을 때 도우면 된다. 그것도 부양을 받을 사람이 스스로 일을 해서 생활할 수 없을 때 한해서 말이다. 함께한다기보다 여력이 있어 돕는 것이다. 도와줘야 할 필요가 있을 때 '할 수 있다면' 하라는 것이다.
이런 원칙들을 몇 가지 실제 상황에 대입해보자. 여기 못난 아버지가 있다. 혼인 생활을 시작하고 아이를 낳은 지 얼마 안 돼 다른 여인에게 마음을 주었다. 아내와 핏덩이 자식을 버려둔 채 집을 나갔다. 그 이후로 수십 년 연락조차 하지 않았다.
홀로 남은 아내는 마트로 식당으로 온갖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재혼도 하지 않고 자식만 바라보고 살았다. 아버지 얼굴조차 모르고 자란 자식은 국내 굴지의 기업에 취업했다. 고생했던 어머니에게 효도하리라 결심했는데 뜻밖의 충격적인 사실과 마주쳤다.
입사 서류를 준비하며 가족관계등록부에서 살아 있는 아버지의 이름을 본 것이다. 유복자인 줄로만 알고 자랐는데 충격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아버지로부터 연락이 온 것이다. 축하한다며 늦게 연락해 미안하다며 그런데 먹고살기가 너무 힘드니 좀 도와달라고.
딱 '아침 드라마'에 나올 법한 이야기다. 아버지는 직계혈족이다. 앞서 본 민법 제974조에 따라 함께 살지 않아도 부양을 청구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억울하지 않은가? 아버지 역할은 단 한 번도 했던 사실이 없는 사람인데, 설령 아버지에게 부양을 청구할 권리가 있더라도 속된 말로 '퉁쳐야' 할 상황 아닐까?
유감스럽지만 그렇지 않다. 과거에 어린 자녀에 대한 법적인 의무를 이행했는지, 도의적으로 아버지라 일컬을 수 있는지를 따지지 않는 것이 부양의무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 위안이라면 이런 경우 법원은 2차적 부양의무 정도로 친다. 지급할 액수도 한 달에 10만 원 남짓으로 판결하는 것이 보통이다. 물론 그마저 아까운 마음이 들 수도 있겠지만 친족의 무게란 그런 것이다.
이런 경우는 어떨까? 공무원 남편과 전업주부 아내가 있다. '백세시대'라는데 야속하게도 50대 중반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다행히 생활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부업을 시작했고 남편이 남긴 공무원 유족연금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남편의 부모님이 어느 날 생활비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사망한 아들을 공무원으로 키웠던 덕분에 잘살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배경엔 그걸 부추긴 남편의 형제들도 있었다. 솔직히 야속했다. 아직은 대학에 다니는 자녀들 뒷바라지도 남아 있었다. 서운한 마음에 재혼이라도 할까 싶지만, 그랬다가는 유족연금을 받을 자격이 없어진다.
법원은 고민하지 말라고 했다. 부부의 한쪽이 사망하더라도 당장 혼인으로 맺어진 관계가 끊기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망한 배우자의 부모는 어디까지나 인척에 그친다. 남편의 직계혈족이지 아내와는 그렇지 않다. 그러니까 법적으로 '시부모'는 부모가 아니다. 따라서 생계를 같이하는 경우에만 부양의무가 있다고 판결했다(대법원 2013. 8. 30. 2013스96). 역설적이지만 모시고 살지 않는 한 따로 부양할 법적인 의무가 며느리에게는 없다.
부양의무를 다루는 김에 드라마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던 이른바 '불효청구소송'도 짚어보자. 고령의 부모님이 "잘 모시겠다"는 자식의 말만 믿고 전 재산을 넘겨줬다가 막상 버림받다시피 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안타깝지만 현실에서도 종종 일어난다. 사업에 필요하다며 하나뿐인 집을 담보로 내줬는데, 부모가 집에서 쫓겨날 지경에 이르러도 나 몰라라 하는 막된 자식들.
사실 그런 경우는 법적으로 부양의무와 관계가 없다. 다 큰 자식들을 부모가 돌볼 이유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돈, 부동산 따위를 부모가 준다고 하면 법적으로 증여계약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 증여계약에 따라 일단 주고 나면 되돌려 달라고 요구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다. 법적인 부양의무를 청구할 권리야 여전히 있지만 넘어가 버린 수억, 수십억 원대의 재산과 비교할 수는 없다.
이런 일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꼭 조건을 달아야 한다.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혹은 받은 날로부터 몇 년 동안 매달 얼마씩 주겠노라는 식으로 딱 부러지게 말이다. 가능하면 계약서 형태로 만들어 공증사무소에서 공증도 받아놓자. 그렇게 해야 약속을 지키라고 하거나 아니면 약속을 어겼으니 재산을 돌려 달라고 할 수 있다. 부모 자식 사이에 야속하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나중에 법정에서 피눈물 흘리는 것보다야 백배 천배 낫다.
<출처: 법률방송 >
짓궂은 하늘의 장난을 한번 상상해본다. A씨는 자수성가한 사업가다. 고생 끝에 부를 이뤘지만 일에 매달려 가정을 이루지는 못했다. 어느 날 그의 집에 도둑이 들어 귀금속과 고액권 뭉치를 훔쳤다. 하지만 철저한 보안장치 덕에 도둑은 금방 잡혔다. 피해 물품을 되찾기 위해 경찰서에 간 길에 범인을 만났다. 희한하게 낯설지 않은 느낌이 드는 젊은 청년. 그리고 또 한 사람 뜻밖의 얼굴과 마주쳤다. 젊은 날 한때 뜨겁게 사랑했던 여인이었다.
헤어질 무렵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둘 다 몰랐다. 여인은 남자를 찾지 않고 홀로 낳아 키웠다. 존재조차 몰랐던 아들을 경찰서에서 만난 것이다. 힘들게 일하는 어머니를 돕는답시고,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어리석은 짓을 저지른 것이었다. 게다가 피해 액수가 높아 중한 벌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어찌하면 좋을까? 불행 중 다행히도 A씨에게 방법은 있다.
형법은 일정한 범위의 친족 사이 재산 범죄에 대해서는 끼어들지 않겠노라고 선언하고 있다. '친족상도례'라는 특별한 규정이다.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 동거가족이나 그 배우자 사이에 절도, 사기, 횡령, 배임을 저질러도 형벌을 면제한다. 그 범위를 넘는 친족이라면 고소가 있어야 처벌한다. 재산만이 문제 되는 범죄들이니만큼 친족끼리의 알아서 해결하라는 것이다. 다만 강도나 손괴처럼 폭력을 동반한 범죄들은 제외한다.
위 이야기 속 범인은 A씨의 혼인 외 자식이다. 그럴 경우 '인지'만 하면 친자식으로 대우받고, 그 효력은 태어났을 때로 거슬러간다고 앞서 밝혔다. 법원은 범죄를 저지른 이후에 인지했을 때도 마찬가지라고 봤다. 부자지간의 일이기에 절도죄를 저질렀더라도 형사처벌을 하지 않는다(대법원 1997. 1. 24. 96도1731). 핏줄로 얽혀 있다는 사실만 있으면 그만이고 그런 사이라는 것을 당사자들이 알고 있었어야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용돈이 궁하다는 핑계로 부모님 지갑에 손을 댔던 적이 있다면 괜스레 안도의 한숨을 쉴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주의해야 한다. 특별한 예외 규정이니만큼 아주 엄격하게 적용한다. 친구 부모님의 물건에 손을 댔다면 친구만 용서받는다. 부모님 물건일 줄 알고 훔쳤는데, 부모님이 친구로부터 빌린 물건이었다면 역시 용서받지 못한다. 엄격하게 친족 사이에서만 친족의 재산에 대해서만 적용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런 일도 있었다. 할아버지의 예금 통장을 훔쳤던 손자가 있었는데, 현금자동지급기로 가져가서 잔액을 자기 계좌로 이체했다. 손자 때문인 줄 꿈에도 몰랐던 할아버지는 돈이 없어졌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어떻게 됐을까? 통장을 훔친 것은 절도죄라서 친족상도례 적용 대상이다. 하지만 현금자동지급기를 조작해 돈을 빼돌린 것은 '컴퓨터등사용사기죄'이고, 피해자는 은행이다. 처벌을 피할 길이 없었다(대법원 2007. 3. 15. 2006도2704). 못난 손자가 할아버지 눈에 피눈물 흘리게 만든 것이다. 그러니 혹시라도 친족상도례 생각하며 못된 짓 꿈꾸지 말자. 어설픈 지식은 독약이나 마찬가지다.
발행일 : 2018. 07. 03.
저자 양지열 법무법인 가율(대표 변호사), 시사평론가
사람이 사랑해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가족 간의 여러 분쟁으로 이혼을 하거나 재산 다툼을 하고, 죽음으로 유언과 상속을 남기기까지 법은 사람과 평생을 함께 산다. 대중과 호흡하고 소통하는 데 능한 양지열 변호사는 높게만 보이는 가족법의 문턱을 다양한 사례와 솔루션을 통해 낮추어, 독자들에게 현실적으로 도움을 주고자 한다. 지은 책으로 〈이야기 민법〉, 〈이야기 형법〉, 〈법은 만인에게 평등할까〉, 〈그림 읽는 변호사〉, 〈헌법 다시 읽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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